1992년 만우절

분명히 어디엔가 1992년의 만우절에 대한 글을 쓴 것 같아서 재활용하려고 찾아봤는데 없더라구요. 분명 싸이월드 게시판에 쓴 것 같은데… 뭐 기억을 더듬어서 다시 쓰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죠.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니까.

1992년 4월 1일, 저는 수원 어느 남녀 공학 고등학교의 2학년 학생이었어요. 이성교제가 아직도 불량학생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1990년대의 남녀공학이라니, 괜찮지 않았냐고 하실 분들도 있겠지만, 이 남녀공학이라는게 돈 많으신 분들이 사립고등학교를 새로 세우기 위해 발버둥치던 그 시절 정부로부터 허가를 받기 위해 택해야했던 고육지책이라는 걸 제가 설명한다면 아마 생겼던 입맛이 도로 쏙 들어가는 걸 느끼실 수 있을거에요. 그 당시 공학이 아니면 설립허가가 나지 않았으니, 어쩔 수 없이 공학으로 세웠지만 건물이 가운데 복도를 중심으로 완전히 남자반 여자반으로 딱 갈라지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에 이성간의 왕래라는 것은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수박 겉핥기 식이었죠. 교사양반들은 어떻게든 교내의 이성교제를 막으려 발버둥들 치셨고, 뚱보 nerd였던 저는 졸업앨범을 받고 나서야 제가 다녔던 학교에 이렇게 얼굴도 모르는 여학생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죠.

그런 공학 아닌 공학에 학생들끼리 장난 삼아 만든 전통 아닌 전통이라는게 있었으니, 그건 만우절날 반 바꾸기였어요. 그래도 운 좋게 남녀 같은 수로 학생을 받는 학교라서, 만우절 아침이면 교원회의(와 예배)에 모든 교사들이 참석, 할렐루야를 읊으시는 동안에 남학생 반과 여학생 반이 각자의 반을 바꿔서 앉아 있는 장난을 치는 것이었어요. 언제나 다른 학년들은 이날 심심치 않게 재미를 봤지만, 저희 학년을 맡은 양반들은 학교에서조차 쪼잔하고 깐깐하기로 소문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이 날 하루 한 시간 정도 장난을 치는 것마저 용납하지 않으셨더랬죠(고3 째는 소풍도 안 갔다니까요. 보통 봄 소풍은 가고 가을 소풍은 건너 뛰는데 저 때는 아예 봄 소풍도 안 갔죠. 그래서 얼마나 많이들 대학에 가서 그 양반을 뿌듯하게 했는지 모르지만…).

그러나 학생들은 그 해에도 계획을 세워서, 아침 시간에 반을 바꿨어요. 그리고선 회의를 마친 담임들이 교실로 돌아왔는데, 영어 담당이었던 저의 담임은 사람이 한 편 좀 어벙하지만 그래도 나쁜 사람은 아니라서 그냥 웃으며 한 시간 잘 놀다 가라고, 여학생들에게 웃어주고 교실을 다시 나갔죠(그러니까 저는 남자반에 남아있었구요). 그러나 그렇다고 세상에 평화가 찾아오는 것은 아니라서, 곧 오른손에 몽둥이를 든 여자반 선생이 머리가 벗겨진 부분까지 빨갛게 분노로 달아올라 문을 벌컥 열고 여학생들을 다 끌어 낸 뒤, 남학생들을 복도에 엎드리게 하고는 무차별로 구타를 가했답니다. 복도에 나가보니 그 좁은데 열 네개 반 천 여명의 학생이 쏟아져나와 신나게 두들겨 맞고 있더라구요. 참, 그것 한 시간도 봐줄 아량이 없는 사람들이 무슨 속알머리로 학생들을 가르치는지… 역시 다른 학년들은 멀쩡했지만, 제가 속했던 2학년들은 전부 신나게 맞고 벌을 섰다는 뭐 그런 슬픈 만우절의 얘기죠. 역시 고등학교는 지옥이었어요. 특히 시도 때도 없이 넘쳐댔던 화장실을 생각하면… 아, 제가 나온 고등학교는 군부정권에 기대던 분이 설립한 곳이었는데 재단이 보유하고 있던 모 동굴에서 수 천년 걸려야 손가락만하게 자랄까 말까 한 종유석을 1초만에 댕강 잘라다가 팔아먹다가 무슨 시사 고발 프로그램에서 걸려서 말이 많았었죠. 도서관 학과를 나온 양반이 국어와 문학을 가르쳤는데, 50분 수업 내내 학생들로 하여금 수백페이지에 이르는 교과서를 단체로 읽는 것으로 문학의 맛과 낭만을 가르쳐 주시기도 했고, 반에서 제일 과체중이라고 반장을 시켜 놓고는 학기말인데 어머니가 학교에 인사도 안 오시냐고 핀잔을 주던 교련 선생이 담임이기도 했던, 아주 멋진 학교였어요. 또한 교사들이 없어 무법천지인 야간 타율학습 시간에 싸우다가 의자로 찍혀 눈 가장자리가 터진 아이를 산 꼭대기의 학교에서 걸어 30분이 걸리는 인근 병원 응급실로 데려갔다가 학교에서 조용히 처리할 수 있는 문제를 크게 만들었다고 싸대기를 날리던 멋진 선생(=엄마 인사 안 오시냐고 핀잔 주던 교련 선생)이 있던 그런 학교였죠. 파리에서 그 색깔 옷을 입은 여인네가 아름다워 교복을 같은 색깔로 만들도록 했는데 하필 그 색이 살구색(야쿠르트 아줌마 제복 색)이어서 여름만 되면 여학생들을 단체로 야쿠르트 팔러 내돌렸던 사람이 교장이었던, 그런 학교였어요. 그래서 하나도 그립지 않아요. 지옥이었다니까요.

 by bluexmas | 2008/04/01 12:15 | Life | 트랙백 | 덧글(6)

 Commented by zizi at 2008/04/01 12:39 

건물 구조상 남학생, 여학생이 만날 수 없었던 ㄷ자형태의 제 모교와 설계가 비슷했던 모양이에요. 졸업할때까지 나머지 반은 걸을 일이 없었지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거 괜히 일그러진 환상(?)만 키우고 별로란 생각이 들어요.

(여러모로 저도 고등학교때는 별로 그립지 않답니다.)

 Commented by 보리 at 2008/04/02 01:29 

고등학교는 언제나 뭔가 원시적이고 원초적인, 인간의 모든 (부정적인) 본능들이 적나라하게 들어나서 뒹굴고 있는 곳 같아요. 학생들도 선생님들도 비슷한 수준으로… 제 경우는 선생님도 선생님이었지만, 집단으로서의 학생들도 참으로 무시무시한 수준이었죠. 어리버리한 선생 하나 잡기는 너무나도 쉽게 해버리는… 저도 되돌아가기 싫은 곳이에요.

 Commented by blackout at 2008/04/02 06:57 

저는 어찌어찌 중고등학교가 다 남녀 합반이었거든요. 다른건 모르겠는데, 확실히 선생한테 맞는 경우가 적었던것 같아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08/04/02 13:15 

zizi님: 네 저희는 일자형 복식 건물에 가운데가 교무실이고… 뭐 그랬어요. 저는 일그러진 환상 같은 것 조차도 없었던 것 같아요. 이제는 가물가물해지려고도 하구요…

보리님: 알고보면 꽤나 많은 집단들이 그렇지 않을까요. 애들을 진짜 짐승처럼 때리던 선생들을 생각해보면…

blackout님: 특목고는 원래 그렇지 않던가요?

 Commented by blackout at 2008/04/03 05:12 

특목고라서 안 맞았는지, 공학이라 안 맞았는지 가물가물 하지만…중학교는 확실히 일반중학교였는데, 일년에 한두번 정도 맞은 기억밖에 없거든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08/04/03 11:39 

좋은 동네에서 좋은 학교를 나오셨나봐요. 중고등학교는 다 닭장 같아서…닭을 채찍으로 때리고 밤에 잠도 안 재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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