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방학 후기(2)

피곤하더라구요.

뭐 피곤하다는 상태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의식에 달라붙은 하나의 그림자나 거머리와 같은 상태일테니까 피곤하다는 말을 입에 담는다고 해서 지금 겪고 있는 어떤 상태가 누군가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상태는 아니었을거에요. 누구나 다 피곤하니까, 사는게 따지고 보면 피곤한 거니까, 뭐 그런 생각의 연장선 상에서 따져본다면 그다지 있어 보이는 핑겟거리도 아닌, 피곤한 상태.

그래도 정말 피곤하더라구요.

뭐랄까, 육체적으로 피곤한거야 그렇다 치더라도, 정신적으로 피곤한 상태가 제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인내심의 벽을 얇게 만들 정도에 이르렀다는 걸 알고 나니까 걱정이 되더라구요. 여러가지 불편한 상황들이 원인이 되어 느껴왔던 피곤하고 불편한 감정들로 인해 지금까지 그럭저럭 꾸려왔던 일상의 틀이 조금씩 허물어지는 걸 느끼게 되니까, 그 원인이 뭔가 따져보기 이전에 일단은  조금이라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일들을 잠시 접고 육체적인 에너지라도 회복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죠.

그러자면 일단 블로그부터 닫아야만 했어요.

뭐, 블로그든 싸이 홈피든 뭐든 자기를 표현할 수 있는 매체를 꾸준히 꾸려나가는 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많은 사람들이 그냥 잡담이라도 늘어놓는 블로그를 만들어도 그렇게 오래 끌고 나가지 못하고 닫는 이유는, 아무래도 그 행위 자체를 자기 일상으로 편입하는데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겠죠. 그것도 아니면 대체 쓰거나 보여줄 거리가 없어지거나. 아니면 게으르거나 끈기가 없거나…

그러나 저라는 사람은 그런 부분에서 겪는 어려움은 없어요. 사실은 그 반대로 블로그라는 것에 대해 너무 생각을 많이 하는게 요즘은 문제로 인식되고 있었다고나 할까요… 영화를 보든, 음식을 만들든,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거나, 뭐 그것도 아니면 출퇴근을 위해 운전을 하거나, 그 어떤 경우에도 저는 뭔가 쓰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요. 그게 뭐 나쁜 건 아닌데, 저라는 사람의 삶 자체가 블로그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도 아니고, 그래야 되는 것도 아닌데, 제가 어쩌면 지나칠 정도로 제 의식을 이 부분에 할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죠. 저는 직장인이고, 그건 어떤 조직의 일부가 되어서 일을 하고 보수를 받아야 된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에 정말 가급적이면 제 몸과 마음을 거기에 최선을 다 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렇게 되지 않으면 일이 잘 안 되어서 뭐 회사가 안 돌아가고 어쩌고를 따지기 이전에 저 자신이 스스로에게 짜증이 나니까.

뭐 그래서 말하자면, 일단 블로그에 대한 관심을 적당히 끊어줄 필요를 느꼈던 거에요. 안 그러면 가끔은 도피하고 싶은 현실이, 또 선천적으로 타고난 말과 글에 대한 욕심이 저를  컴퓨터 앞에 앉게 만들테고, 그러면 그만큼 제 일상을 일상답게 제대로 돌아가게 만들기 위해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들에 소홀하게 될테고, 그래봐야 스스로에게 짜증밖에 더 낼까요… 말이 많았는데, 한 마디로 얘기하자면, 너무 쓰고 싶어서 닫아야만 했던 거죠. 그리고 일단 그 시간에 잠이라도 많이 자는게 현재의 상황에서는 더 도움이 될 것 같았거든요. 뭐 Slightly Happier Return이라고 했지만, 저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어요. 오히려 짜증의 절정을 달리고 있다고나 할까요… 그냥, 행복을 느낀다는 건 저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보다는 저 자신의 의식구조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니까, 한참동안 잠 많이 잤으니 그전보다 조금은 행복해진 것 아닐까, 생각하게 된거죠. 그 밖에는 아무 것도 달라진게 없어요. 위에서 얘기한 것처럼, 제가 가지고 있는 인내심의 벽이 눈에 띄게 얇아지고 있는 게 변화라면 변화일 수 있겠지만…

그래서, 블로그를 닫아 놓은 2주 남짓한 기간에는 잠을 잤어요. 보통은 주중에 여섯시간 이상 자 본 적이 별로 없는데, 블로그에 쏟을 시간에 잠을 잤더니 여섯, 일곱 시간은 잘 수 있더라구요. 그리고 나머지 시간에는 봄맞이 대청소를 했구요. 워낙 혼자 살아서는 안될 크기의 집에 혼자 살았더니 남는 공간이 많아서 쓸데없이 물건들을 아무데나 늘어놓는 나쁜 버릇이 생긴데다가 별로 가구가 없어서 집의 전체를 수납공간화 했거든요…그걸 다 치우고, 여기로 이사오면서 게으른 탓에 버리지 않았던 온갖 쓸데없는 물건들을 버리고… 1/3 밖에 못했는데, 그짓거리를 계속하고 있었죠. 언제 짐을 싸서 떠나야 될지 모르는 팔자라서, 거기에 맞게 쓸데없는 물건들을 다 버리고 있는데, 제일 큰 골칫거리는 저의 몸무게가 세 자리를 육박할 때 즐겨 입었던 옷들이죠. 아까워서 놔뒀는데 이젠 정말 처리를 해야될 것 같아서 열심히 분류를 하고 있었죠. XL 사이즈의 옷들을 보고 있노라면 생각하기 싫은 옛날이 떠올라서 끔찍해요. 그게 싫어서라도 이젠 제 손에서 떠나 보내야만 할 것 같아요.

아, 오늘도 다 쓰지 못한 봄방학 후기는 또 내일로 미뤄야 되겠어요. 조금 전에 딴 포도주나 마시려구요… 사실은 쓰고 싶은 얘기가 줄줄이 엮여 있는데 한 번에 죽 쓰지를 못하고 있거든요. 그럼 이게 뭐 연재가 되는 것일까요? 봄이 다 지나갈 때까지 쓰는 봄방학 후기?

 by bluexmas | 2008/03/23 11:50 | Life | 트랙백 | 덧글(3)

 Commented by Josée at 2008/03/24 09:15 

아읏 블로그 닫으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ㅇㅅㅇ 봄방학 잘 보내셨길 🙂

 Commented by 도로시 at 2008/03/24 19:38  

블로그 갖고 계신 분이라면 어느 정도 공감하실 거 같네요.

가끔은 너무 소모적이란 생각들면서도 또 다른 의미를 찾게 되는 공간이니..

닫혀 있는 동안 마음 참 휑하던데, 암튼 개학이 무척이나 반갑다니깐요~ 😀

 Commented by bluexmas at 2008/03/25 11:38 

Josée님: 아읏 올만에 답글 남겨주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ㅇ ㅅ ㅇ 잘 지내시죠? 🙂

도로시님: 아이구, 마음까지 휑하셨다니, 앞으로 더 열심히 꾸려나갈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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