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onement(2007)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만 찍으면 남이 되는 세상이다보니 ‘옛날 영화를 보러갔다’ 라는 문장도 점 하나면 찍으면 ‘옛날, 영화를 보러갔다’ 로 바뀌어 대체 옛날에 만든 영화를 보러갔다는 건지 옛날 언젠가 그 때 만들어진 영화를 보러 갔다는 건지 참으로 헛갈리게 됩니다.

그렇다면 ‘옛날, 옛날 영화를 보러갔다’ 라는 문장은 또 어떨까요?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이었는지, 아니면 직후였는지 지금은 잘 기억-혹시라도 저와 이름 두 자를 나눠쓰는 그 분이라면 기억하실지도 모르겠는데… 아직도 제 블로그가 링크되어 있는지 참으로 궁금하군요-나지 않지만 이십 오 년도 훌쩍 넘은 옛날, 그것보다 더 옛날에 찍은 영화를 보러 갔더랬습니다. 뭐, 다들 아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라는 영화였죠. 그런 영화를 애들끼리 보러 갔을리는 없고, 가족이 다 같이 갔었는데 뭐 그 나이에 1, 2부로 나뉜 영화는 정말 말도 안 되게 지루했고 거의 졸다시피 했던 것 같지만, 목화밭이니까 뽕이 아닌 목화를 따는 흑인 노예 아낙네들과 불에 휩싸인 마을, 이런 장면들의 기억은 아직도 희미하나마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거기에다가 늘 밀가루로 만든 식빵을 사곤 했는데 그날따라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아버지는 보리 식빵을 사기를 원했다는 기억도 함께(대체 이런 건 왜 기억하고 사는 걸까요?-_-;;;)… 어쨌든 오랜 시간이 흘러 저는 마가렛 미첼의 출생지이며 그 영화의 배경이 되는 도시, 아틀란타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녀의 생가 겸 박물관이 회사에서 걸어 10분도 안 되는 거리에 있어서, 점심 먹고 산책을 하다가 지나칠때면 꼭 영화, 아니 사실은 보리 식빵의 기억에 잠기곤 합니다.

…사설이 너무 길었습니다.

정말로 이 영화 Atonement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같은 영화와 그 정서적인 궤를 같이 하는지는 솔직히 영화를 보아왔던 기반이 너무 없는 관계로 섣불리 단정지어 결론 내릴 수 없는 상황이기는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영화는 그 소재(세계 제 2차 대전)와 분위기, 색감, 그리고 연기 그 모든 것들이 요즘에 찍은 영화 같지 않은 느낌을 주고, 그 느낌은 굉장히 긍정적입니다.

이 글을 스포일러로 만들고 싶지 않기 때문에 줄거리를 읊어대는 만행은 생략하겠지만, 영화는 자신도 어떤 것인지 정확하게 정의 내릴 수 없는 어린 소녀의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후에 짝사랑을 기반으로 한 질투임이 확인되지만-이 전쟁이라는 인류 최악의 사회적 상황과 얽혀 결국 주위의 사람, 그리고 자기 자신의 삶마저 비극으로 만드는 과정을 아주 약간은 지루하다고 말할 수 있는 빠르기로 보여줍니다. 그러나 그렇게 느린 전개는 시간이 지날 수록 영화를 이루는 모든 요소(대본, 음악, 카메라워크, 연기…)들을 보다 더 완벽에 가까도록 치밀하게 엮어내기 위한 의도적인 장치가 아니었을까 생각될 정도로, 영화 속에서 그 모든 요소들이 흠잡을 데 없이 촘촘하게 짜여 그저 주말이니까 보아왔던 그렇고 그런 영화들보다 한층 더 나은, 영화라는 미디어의 장점을 백분 활용한 공감각적 감동을 전달합니다(이렇게 쓰고 나니 정말 말하고 싶었던게 이것이었는지 살짝 헛갈리기 시작합니다…-_-;;;).

누군가가 ‘호들갑 떨지 마라, 그런 영화는 차고 넘친다’ 라고 말하면 뭐 무식한 저로서는 별로 할 말이 없지만, 영화가 보여주는 디테일은 저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것이었습니다. 특히, 예고편에서 선봬 저로 하여금 오랫동안 이 영화를 기다리게 했던 Dunkirk 탈출 직전 해변에서의 롱테이크는 전쟁이라는 재앙으로 인해 육체적, 정신적으로 훼손된 인간 군상의 다양한 모습을 너무나도 생생하게  한 번에 담아내, 보는 이로 하여금 전율을 느끼게 합니다.

영화의 주인공은 사랑하는 선남선녀 Cecilia(Keira Knightly 분)와  Robbie(Ian McAvoy)지만, 실제 영화를 이끌어가는 작중 화자는 벌어지는 모든 사건들을 가능하게 만든 Cecilia의 동생 Briony입니다. 영화가 시간을 뛰어 넘어가며 전개되기 때문에 세 명의 배우가 각기 다른 나이대를 연기하는 가운데 영화 초반의 분위기를 결정짓다는 측면에서 가장 어린 소녀의 역을 맡은 Saoirse Ronan의 연기가 가장 뛰어나다는 생각입니다.

줄거리를 들먹이지 않으려다보니 두서가 별로 없는 듯한 글이 된 느낌인데 어쨌거나 저에게는 보았던 2007년의 영화들 가운데 다섯 손가락 안(물론 순위 따위는 매기지 않습니다)에 들 수 있을만큼 좋은 영화였습니다.

 by bluexmas | 2008/01/27 14:33 | Movie | 트랙백 | 덧글(6)

 Commented by 재인 at 2008/01/27 14:38 

이 영화 저도 보고 싶었는데. 리뷰를 읽고 나니 꼭 봐야겠단 생각이 드네요 🙂

 Commented by intermezzo at 2008/01/27 20:38 

앗, 이 영화….키이라 나이틀리 팬이라서 ^^ 보고싶었는데…

그에 반해 매코보이에 대한 비호감으로;;;;(비커밍 제인을 보고 대실망한 탓이 급니다;; 배우 개인도 그렇지만 영화자체에 대한 실망이 대단했었던지라…) 스킵했어요. 그런데 그렇게 괜찮단 말이죠~ +.+

 Commented at 2008/01/28 09:36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08/01/28 10:53 

우리나라에서도 개봉했나요? 뭘 고르셨는지는 몰라도 어째 별로였을 듯…

원래 막내들이 다 그렇죠 뭐.

 Commented at 2008/02/08 00:39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spodery at 2010/10/24 01:24 

저도 무지 재밌게 봤던 영화에요

고등학생때 영화감상부?? 동아리 활동으로 봤는데

저빼고 모두 잠들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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