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verfield(2008) DLP- 괴물 조연, 공포 주연

뭐 그렇게 많은 괴물영화를 보지는 않았지만, 상식적인 차원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통상적인 괴물영화의 요소는 다음의 다섯가지 정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1. 괴물의 탄생설화(?): 뭐 설화까지는 아니어도 일단 괴물이라는 존재가 비상식적으로 커야 영화가 흥미로워지기 때문에, 이렇게 큰 괴물의 존재에 당위성을 줄 수 있는 배경설정이 필요하게 됩니다. 여러가지 것들이 있겠지만 보통 돌연변이를 생각하게 되죠. 뭐 귀여운 미니라 엄마 고지라도 그렇고(거의 모든 고지라의 친구 및 적들이 다 돌연변이죠…), 우리나라 영화 괴물의 괴물도 그렇고… 과학적인 당위성 여부를 따져볼 때 정말 말이 되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일단 그러한 배경이 필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2. 배경이 되는 큰 도시: 괴물이랍시고 돌연변이의 은총을 입어 우렁찬 울부짖음 또는 금상첨화로 불 내지는 방사능 입김이라도 뿜으면서 짜잔, 하고 출현했는데 인적 드문 캘리포니아 해변을 느긋하게 산책한다거나 중부 시카고 교외의 애꿎은 옥수수밭쯤이나 불태우고 다닌다면 괴물 체면도 안 살고 영화 자체도 뽀대가 안 나는 법, 괴물은 무조건 큰 도시 근처에서 나타나 도시로 잠입, 미친듯이 때려부수고 집어던지고 불태워야만이 흥행할 수 있는 법입니다. 배경이 복잡하면 특수효과비도 그에 비례해 많이 들겠지만, 다 초기 투자라고 생각하면 아쉽지 않은법입니다. 게다가 가장 비중 큰 주연-괴물-의상이랑 메이크업 비는 안 드니까 그래도 좀…

3. 위기 속에서 싹 트는 사랑: 뭐 미리 싹터 있던 사랑이든, 아니면 원래 싹수도 없었는데 괴물이 미친듯이 때려부수고 집어던지고 불태워서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다보니 곧 죽을 것 같은데 사랑이라도 진하게 원없이 해봐야겠다, 라고 마음 먹어서 예전에 소개팅 30분 하고 헤어진 여자랑 엮이든, 사랑은 괴물영화에 인간적인 요소를 부여, 영화 자체를 한 층 더 극적으로 만들고,

4. 영웅, 특히 민간인 영웅의 출현: 여기에서 언급하려는 영웅 탄생의 강력한 동기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괴물의 탄생설화가 인간의 부주의로 빚어진 공해가 초래한 돌연변이라면, 그에 장렬하게 맞서는 영웅의 탄생설화는 미친듯이 때려부수고 집어던지고 불태워서 공포분위기를 조성해서 억지로라도 꽃피워진 사랑… 영화 시작전에만해도 밤에 술 먹을 여자친구도 없는 도시 한복판 외로운 늑대와 같았던 주인공(통상적으로 남자…뭐 성차별하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사랑에 눈이 멀어 다윗이 골리앗을 무찌를 때 썼던 물매돌로라도 괴물 일개 소대 쯤은 잡을 수 있다는 전의를 불태우며 괴물굴로 씩씩하게 진입하게 되는 것입니다.

5. 그리고 행복한 결말: 뭐 물매돌이 약발 받았는지 아니면 다른 무슨 필살기를 썼는지 알 수는 없지만(디테일이 공개되지 않을 수록 영웅의 능력은 한층 더 부각되는 바… 굳이 뭘로 죽였는지 자세히 설명해 줄 필요가 없죠. DVD 서플먼트에라도 감독판쯤으로 끼워 넣어 판매를 촉진시키려 한다면 또 모를까)), 괴물은 밤새 일어난 전투로 죽고, 주인공은 폐허에서 날리는 바람에 긴 생머리가 날리는 팔등신 여친을 팔에 부여 안고 뜨는 해를 바라보며 감상에 젖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장렬한 음악과 함께 엔딩 크레딧.

…그러나 한참 동안이나 티저 예고편 및 광고로 사람들의 호기심을 끝까지 자극시킨 뒤 최근 개봉한 Cloverfield는, 괴물영화라고는 해도 위에서 언급한 다섯가지 요소들 가운데 1,2,5번이 빠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전형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괴물영화의 틀에서 제 생각에는 꽤 많이 벗어난다는 느낌을 줍니다.

그렇지만 위에서 말한 세 가지 요소가 빠졌다고 해서 이 영화가 재미가 없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저는 그 티져광고의 덕인지 이 영화를 굉장히 재미있게(그리고 사실은 슬프게) 봤는데, 그것은 1,2,5번이 빠진 자리를 공포감이 확실하게 메꿔주기 때문입니다.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대부분의 괴물영화는 참으로 괴물영화답게 괴물이 주인공이다 다름 없어왔습니다. 뭐 스토리도 좋고 사랑도 좋고 다 좋지만, 거의 대부분 사람들은 맨하탄과 같은 대도시를 하루 이틀이면 때려부술 수 있을만큼 무지막지하게 큰 괴물, 그러니까 생명체를 감상하기 위해 괴수영화를 보고, 또 감독들은 CG에 돈을 쳐발라서 조금 더 실제와 같이 디테일이 살아있고 움직임이 부드러운 가짜괴물을 만들어 관중들의 이런 욕구에 부응하면서 또 돈도 벌어주는 것입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괴물에게는 의상도 메이크업도 필요없고 따라서 코디네이터도 필요없으니까요. 게다가 뭐 간신히 극적 당위성을 제공할만큼만 있으면 되는 등장인물들조차 찢어진 옷에 더러운 얼굴이면 충분하니까… 거기에 영웅과 사랑이 곁들여진 해피엔딩이라면 뭐 더 바랄게 있겠습니까…만, 클로버필드에서 괴물은 거의 대부분 그 존재가 빚어내는 파괴와 살육으로 공포감 조성에 기여할 뿐, 그 모습을 절대 관중들이 기억할만큼 드러내지 않습니다. 생각보다 지루한 전반부가 대강 마무리지어지면서 조짐이 이상해지고 파괴가 일어나지만, 파괴가 한참동안 일어나고 나서야 괴물은 얼핏 모습을 보일 뿐이지, 다른 영화들처럼 물에서라도 쑤욱 올라와서 그 거대한 자태를 한 번 뽐내주고서야 때려부수기를 시작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영화가 빚어내는 공포감이란 보통 괴물 영화의 그것보다 한층 더 질이 높다는 느낌입니다. 마치 어둠 속에서 눈을 가리고 비명과 냄새만으로 벌어지는 살육의 현장을 상상할 때 더 무서운 것처럼, 보일듯말듯 빌딩 숲 사이로 마치 부끄럽다는 듯 자태를 감추려하는 괴물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벌어지는 파괴 현장으로 인해 한층 더 순도 높은 공포분위기를 아주 효과적으로 조성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떼로 나오는 괴물의 새끼들에게는 무엇인가 세균전적인 요소마저 가미되어 물린 사람들이 눈코입으로 피를 질질 흘리다가 터져서 죽음에도 불구하고 그 장면을 절대로 직접 보여주지는 않기 때문에(사람이 터져서 죽지만 그것도 장막 뒤에서 벌어지므로 관중들은 실루엣만 볼 수 밖에 없습니다), 관중들은 이미지와 정보의 무차별 주입이 횡행하고 있는 인터넷 시대에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시각적 상상력의 나래를 마음껏 펼치면서 공포에 몸서리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여기에 뭐 블레어 위치도 언급되고 있는 캠코더를 표방한 화면 구성은 그 공포감을 강화시키는데 역시 한 몫 크게 합니다.일단 캠코더라는 것이 영화 등장 인물에 의해서 촬영되는 것처럼 설정되어 있기 때문에, 많은 부분에서 제 3자의 시각, 내지는 인간적으로 불가능한 시각(예를 들어 괴물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장면…이 영화에서도 괴물을 내려다보는 장면이 나오지만, 그것도 주인공이 정말로 헬리콥터를 타고 하늘에 올라갔을 때에만 선보입니다)들이 거의 배제되어 있고, 이는 감각적인 현실감을 한층 더 높여주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영화에는 영웅도 없습니다. 중간중간 등장인물이 주인공으로부터 빌려찍는 캠코더의 테입에 원래 녹화되어 있던 내용이 현재의 상황과 교차되면서 한층 더 극중 줄거리의 긴장감-사랑이 얽힌-을 고조시키지만, 다른 괴물영화를 비웃기라도 하듯, 그 험난한 여정을 뚫고 뚫은 주인공들과 해피엔딩을 꿈꾸는 관중들에게 영화는 가차없이 죽음의 펀치를 날려버립니다. 그것도 괴물인지 괴물을 잡으려고 애쓰는 군이 터뜨린 포탄 때문인지 무너지는 돌더미에 깔리면서 외치는 단말마의 ‘I love you’/’I love you too’만을 남기면서… 오, 그리고 그 순간에 장엄한 음악을 타고 올라오는 엔딩크레딧, 그리하여 이 영화가 기존 괴물영화에 대한 조롱, 또는 antithesis는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하게 만들면서 한 시간 반밖에 안되는 이 다른 종류의 괴물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이 영화의 주인공은 괴물도, 그리고 개죽음 당하려고 캐스팅된 선남선녀들도 아닙니다. 바로 괴물로부터 빚어져 선남선녀를 죽을때까지 괴롭히는, 그 맨하탄 공기를 가득 메우는 공포인 것입니다.

아직도 여운이 가시지 않아서 몇 가지 덧붙이면, 한참동안이나 대체 무슨 영화-물론 뭐 아주 모를만한 것도 아니기는 했지만-인지 짐작할 틈을 안 주는 티져예고편처럼, 영화촬영에도 보안이 따라서, 배우들은 거의 쪽대본을 받다시피하고 그것도 장면을 찍은 직후 바로 회수되었으며, 또 자체에도 복사 방지를 위한 워터마크 처리가 되어 있었다고…심지어 여러번 바뀌었다가 정착된 Cloverfield라는 제목조차 사실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이 지명이 맨하탄 Central Park가 쑥대밭이 되고 난 다음의 이름이라는 걸 알게 되지만, 뭐 Cloverfield나 Carrotfield나 아무런 차이가 없었겠죠.

 

 by bluexmas | 2008/01/24 11:51 | Movie | 트랙백 | 덧글(3)

 Commented by conpanna at 2008/01/24 11:56 

으아~ 저도 이거 이번 주말에 보려고 하는데!!

그래서 내용은 스킵했어요.. 영화 본 담에 와서 읽어봐야지~

 Commented at 2008/01/24 12:03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08/01/26 12:25 

conpanna님: 재미있게 보셨어요? 뭐 의견이 참 많이 갈리네요 이 영화도…

비공개님: 그렇게 읽어주시면 저야 너무 보람있죠… 전 사실 영화에 대해 아는게 없어서 그냥 책 읽고 쓰듯 쓰는데 그걸 읽으시고 영화를 보러 갈 마음도 생기시다니 제가 참 흐뭇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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