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t (2006)-뜨거운 실제감으로 그려낸 식당 주방에서의 체험기

대학교 새내기 시절 첫 여름방학에, 남의 돈 먹는게 대체 얼마나 힘든지 몸소 체험을 해본답시고 육체노동알바를 찾다가 집 근처에 있는 전통사탕 제조공장(그 회갑연, 돐잔치 등등에서 사진의 뒷배경을 장식하는 각종 음식탑들 가운데 하나를 맡는)에 취직을 했었습니다. 솔직히 말이 좋아 전통사탕이지 그저 설탕을 녹인 물에 색소를 섞고 식혀 늘려서 모양을 빚는게 전부였는데, 정말이지 한여름에 밖으로  나가면 바람이 시원하게 부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열기가 가득찬 공장은 그야말로 불지옥이었습니다. 김일성이 죽었다고 호외가 날리던 1994년의 어느 여름 한낮, 공장 밖은 36도 였지만 안은 40도가 넘었더랬습니다.

우리나라에 ‘앗 뜨거!’라는 그다지 뜨겁지 못한 제목으로 번역,출판된 것으로 알고 있는 Bill Buford의 Heat가 긴장감과 박진감으로 가득차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이유는, 음식 만들기라는 열과 시간과의 싸움을 똑같은 열기의 상세함으로 그려내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예외는 있겠지만, 음식을 만드는 과정의 대부분은 열을 가해 재료의 성질을 바꾸는 화학적 변화입니다.  그 화학적 변화에 시간이라는 또 다른 중요한 변수가 맞물려 돌아가면, 사실 음식 만들기가 일종의 고통으로 탈바꿈하는 장소가 바로 식당 부엌일 것입니다. 작가가 30, 40대에 식당 부엌의 맨 밑바닥부터 시작해서 어느 위치에 오르기까지의 기술과 요령을 터득하는 과정과 또 그 과정에서 본 유명 요리사 Mario Batali의 개인사 및 연결된 사업 발전사 등등은 책 전체 흐름이라는 마차를 이끄는 두 마리의 말이 되어, 어느 한 쪽이 지칠때쯤 박차고 나와 흐름과 긴장감을 잃지 않는데 큰 공헌을 합니다.

이렇게 열이 음식 만들기에서 너무나도 큰 비중을 차지하는 까닭에, 그 열이 빠진 부분, 그러니까  작가가 이태리 터스칸 지방에서 백정 견습을 받는 과정을 기술한 책의 후반부는 그가 Mario Batali의 식당에서 견습하는 부분에 견주어 볼때 그 긴장감이 현저하게 떨어집니다. 그래서 저는 너무나 신나게 앞 부분을 읽다가 뒷부분에서 맥이 빠져 책을 끝내는데 조금 어려움을 겪었습니다(아무래도 원어민이 아니다보니 영어책을 너무 긴 기간동안 드문드문 읽으면 기억의 흐름이 끊기는 것을 느끼기 때문에 언제나 손에 잡은 책은 가능한 빠른 기한내에 읽으려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호흡이 늘어짐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전혀 새로운 직업세계에서 눈을 뜨는 과정에서 저는 일종의 대리만족과 같은 기분을 느꼈습니다. 사실 저도 음식 만들기와 그에 관련된 지식을 접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보니, 가끔은 이런 쪽으로 직업을 가졌더라면 지금쯤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궁금할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 서술된 것과 같은 끝없는 단순작업의 반복과 그에 따르는 지루함의 고통 등등을 저도 현재의 직업에서 충분히 겪고 있기 때문에, 아마도 다른 직업을 가지기 위해 그 과정을 반복하는 일은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여간 얘기가 약간 삼천포로 빠졌는데, 작가가 그렇게 거들먹거리지 않는다는 점만으로도 저는 Kitchen Confidential보다 이 책을 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책의 마지막에 작가가 프랑스로 갈 것을 밝히는데, 정말로 프랑스에 가서 계속된 체험을 하고 또 그걸 책으로 엮어내면 또 한 권의 흥미진진한 책이 나오지 않을까, 막연한 기대가 됩니다.

 by bluexmas | 2007/11/27 12:52 | Book | 트랙백 | 덧글(6)

 Commented by turtle at 2007/11/27 14:16 

Kitchen Confidential보다 이 책을 저도 더 재미있게 읽었어요. 말씀하신대로 이탈리아에 간 부분부터는 좀 긴장감이 떨어지는 경향이 있었지만, 그건 또 그 나름대로 기행문 읽는 느낌이 들어서 나쁘지 않더군요. 워낙 제가 이탈리아 음식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랬던 듯도 하지만요. 🙂

 Commented by bluexmas at 2007/11/28 12:24 

저도 사실 그 뒷부분마저 재미있게는 읽었어요. 굳이 어느 한 나라의 음식을 집중적으로 만들어봐야 한다면 이태리 음식에 도전해보고 싶거든요. 항상 저의 머릿속에는 이태리 음식이 간단한 조리과정으로 재료의 맛을 살린다고 들었거든요. 미국에 나와있는 이태리 요리책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것은 Marcella Hazan이라는 사람이 쓴 책이 있는데, 거의 Julia Child에 맞먹는 내공을 가졌다고 하더라구요.

 Commented by turtle at 2007/11/29 08:13 

Marcella Hazan이란 이름 기억해 둬야겠네요. 🙂 언제 서점에 가면 한 번 살펴 봐야겠어요.

이탈리아 음식이 간단한 조리과정으로 재료의 맛을 살린다는 건 정말 맞는 이야기 같아요. 물론 그만큼 신선하고 좋은 재료를 손에 넣을 수 있어야겠지만 말이에요. 가령 영국 같은 곳에선 참 성취하기 어려운 목표(?)일 것 같거든요. 여하튼, 전 이탈리아만 여행하기를 두 번 정도 했는데, 갈 때 마다 말씀하신 것 같은 요리를 맛볼 수 있어서 정말이지 행복했답니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파스타 중 한 가지를 베로나 강가의 어떤 작은 식당에서 먹었는데 오로지 바질과 토마토만 넣고 만든 파스타가 그렇게 신선하고 맛있을 수 있다는 걸 그 때 처음 알았어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07/11/29 12:52 

Wikipedia에서 검색해보시면 좀 더 자세한 정보를 얻으실 수 있으니 참고하세요^^ 저도 내년 초쯤에 책 한 번 사서 보려구요. 제가 예전에 어디에서 읽은 얘긴데, 이태리 어느 식당들 가면 크게 한국말로 ‘피클없음’ 이라고 붙여놨다던데, 진짜일까요?-_-;;; 저는 딱 한 번 배낭여행의 마지막 기착지로 이태리에 들러 베네치아와 밀라노, 그리고 로마를 들렀는데, 마지막날 마지막으로 들른 판테온 근처의 젤라테리아에서 카메라를 도둑맞아서 마음이 아팠었죠. 저도 언젠가 로마 말고 다른 도시에 가서 그런 파스타 같은 것들 먹어보고 싶더라구요(내년은 생파스타 도전의 원년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저도 궁극적으로는 그렇게 간단하면서도 맛있는 음식을 만들고 싶구요.

 Commented by Eiren at 2008/05/06 11:51 

Bluexmas님의 추천을 받고 도서관에서 빌려놓았는데, 오늘 드디어 책을 다 읽었습니다. Kitchen confidential을 읽지 않아서 비교할 수는 없지만 정말 재밌게 잘 쓴 책이더군요. 고급 음식점의 주방의 긴장감 넘치는 일면이라고는 라따뚜이에서 본 것들밖에 없어서[;;;;] 장면들을 상상하면서 읽을 수 밖에 없었지만 즐거운 상상이었어요.

말씀하셨던 부분의 이탈리아 기행 부분, 파스타 수련이나 도축 견습[이렇게 옮겨놓으니 어찌나 어색한지요;;],을 읽을 때는 조금 복잡한 기분이었습니다. 그런 좋은 계란, 좋은 쇠고기와 재료로 만든 좋은 음식을 먹기가 요원한 현실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나저나 책을 읽고 나니 왜 생파스타에 도전하고 싶으셨는지 이제야 이해가 가는군요. 한밤중에 읽기엔 참 괴로운 책이네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08/05/07 12:47 

재미있게 읽으셨어요? 작가의 경험과 발전을 모두 늘어놓는다는 측면에서는 그럭저럭 나쁘지 않지만, 그래도 어떻게 보면 너무 많은 내용을 담지 않았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구요. 사실 제가 음식을 계속 해 먹으려는 이유도, 싼 식당음식이라는 것이 한계가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 때문이죠. 식당 음식에는 재료 값보다 더 많은 것들이 얽혀서 가격이 산정되는 것이니 그런 걸 읽고 너무 기죽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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