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향의 계절

어찌하여 홈피의 스킨과 미니룸, 그리고 노래마저 굉장히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단장하게 되었지만 아마도 이것이 올해 크리스마스 준비로는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이다. 사실은 아무런 생각이 없다. 꼭 해야만 하는 것일까. 그래서 그저 쉬는 날이니까, 뭘 좀 하고 쉴까 계속 생각하고 있었는데, 대체 뭘 할거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의 수가 미친듯이 불어난다. 그리고 대부분 그렇게 물어본다. 크리스마스에 가족들 만나러 집에 갈꺼냐고. 나? 가족 없어, 그리고 여기가 내 집이야… 뭐 내가 고아도 아니고 왜 가족이 없겠냐만, 이제는 내가 꾸리는 가족이 1차적인 가족이 되어야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나에게 부모님과 형은 말하자면 2차적인 가족인 것이다. 그리고 어쨌거나 여기가 집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을테고. 그러나 사람들이 계속해서 물어보자 나는 비로소 느끼기 시작한다. 대체 어디에서 왔는지도 모르는, 대상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향수병이 도지기 시작하는 것을…. 아마도 그것은 불특정 다수나 불특정 장소에 대한 그리움일 것이다. 사람이 많은 거리와 뭐 연말 분위기와 그런 것들. 어쨌거나  지금은 갈 수 없는 상황, 오늘부터는 사람들이 물어볼때마다 녹음기처럼 같은 대답을 반복하기 시작했다. ‘지금 나가면 비자를 다시 받아와야 되는데 그러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하니까 지금은 어렵고 생일 전후인 3월 말에 나가게 될 것 같다’고. 그리하여 언제나 그렇듯이 나의 연휴계획은 ‘just hanging out’ 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연휴도 조용히 보내겠지만, 나는 그것도 그리 나쁘지 않고, 더 이상 동요되고 싶지 않으니까 더 이상 아무도 나를 부추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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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막 다니기 시작했던 재작년 겨울엔 정말 집에 가족 만나서 안 가냐는 물음을 하루에도 열 댓번씩은 들었던 것 같아요. 듣다가 듣다가 못해 저런 투덜거리는 글을 홈피에 끄적여 놓았던 것을 보면 나름 스트레스를 받았던 걸까요? 저는 뭐 누구나 누구처럼 5년 동안 한 번도 한국에 안 들어가는 부류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또 자주 들어가는 편도 아니었어요. 6년 동안 1년 반, 2년에 한 번 정도? 사실 해가 갈 수록 연락하는 친구들의 수도 점점 줄어들고, 또 저의 생활이 이곳에 맞는 형태로 바뀌어 가면서 가면 갈 수록 가야 되겠다는 욕구가 떨어지는 것을 느꼈죠. 게다가 뭐 직항이라고는 해도 왕복 30시간 가까운 비행과 안 먹어도 그만인 햇반 비빔밥은 그렇지 않아도 별 볼일 없는 욕구를 더 감소시켰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재작년에는 휴가도 별로 없고 해서 집에서 조용히 쉬었고, 작년에는 문제의 서부 일주를 다녀왔죠. 이를테면 딱히 할 일도 없는 낯익은 땅(그러나 가면 언제나 너무 많이 바뀌어서 낯설음을 느끼게 되죠)을 가느니 그냥 안 가본데 가는게 낫다고 생각했던거에요.

그러나 올해는 상황이 좀 다르네요. 사실 부모님이 연초에 왔다 가셨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 연말에는 부모님하고도 시간을 좀 보내고 싶고, 몇 안 남은 친구들도 보고 싶어지고…해서 올해 거의 쓰지 않은 휴가를 몰아 써서 연말에 서울에 가기로 했어요. 나름 이만하면 일찍 아닐까라는 생각으로 표를 알아봤는데, 원하는 기간에 거의 맞추지 못할 뻔 했더라구요. 뭐 그것도 사실 여행사와 대한항공의 짜고 치는 고스톱에 놀아나는 꼬라지라고 생각하지만(대한항공 홈페이지에서 500만원 부르던데요? 그것도 이코노미가… 500만원짜리 이코노미, 정말 완벽한 Oxymoron의 예제가 아닐까 싶어요-_-;;;)…

언제나 그렇듯 특별한 기대는 곧 실망을 낳는다는 걸 잘 아니까, 별 기대는 하지 않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음식들도 좀 먹고 찬 바람 맞으면서 걷고도 싶네요. 예전에 마장동에서 자취하던 시절에는 광화문에서 고가도로 따라 집까지 많이 걸어 다녔는데, 이제는 그 잘난 복개 청계천 덕분에 걷는 기분이 어떨까 잘 모르겠어요.

 by bluexmas | 2007/11/02 12:07 | Life | 트랙백 | 덧글(4)

 Commented at 2007/11/02 12:19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at 2007/11/02 13:34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poppy at 2007/11/03 00:44 

500만원???????????

-.- 완전 말도안되는군요.

저도 한국가서 닭똥집 마늘구이 먹고시퐈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07/11/04 12:12 

비공개 1님: 제가 500만원에 표를 산 건 아니랍니다(그랬다면 가지 않는 쪽을 택했겠죠?). 그냥 인터넷으로 표를 살 수 있게 했지만 여행사의 서너배 되는 가격에 표가 있지도 않은 상황이 어이없는거죠. 전 워낙 대한항공의 알맹이 없는 과잉친절 서비스를 싫어하거든요. 사실 저도 비공개님과 비슷한 가격을 주고 표를 샀어요.

비공개 2님: 대한항공 뭐… 마음에 안 들어요. 바뀐 유니폼 색깔도 너무 어이없구요. 전체적으로 낮은 서비스의 질을 젊은 여승무원으로 메꾸려한다는 생각이 늘 들거든요.

poppy님: 뉴욕에서 닭똥집 구하기 쉽지 않나요? 우리나라 수퍼마켓에 없으면 소호 안쪽 차이나타운엔 있을텐데… 아틀란타에도 있어요. 가끔은 미국 수퍼마켓에도 나오던데, 제가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 안 해 먹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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