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마 굴욕 사건

어제 지옥회상을 위한 문답을 하다가 보니 파마 굴욕 사건이 생각나더군요. 다시 뭔가 쓸까, 하다가 몇 년 전에 싸이에 올렸던 글이 있어서 재활용하기로 했습니다. 사실 싸이 글은 웬만하면 다른 곳으로 옮기지 않는 것이 저의 원칙인데, 읽는 분들만 재미있다면야 재활용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겠죠. 제 뒤에 올 세대들에게 더 푸른 지구를… 아, 이건 아니군요-_-;;; 하여간 지금의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편집을 좀 했습니다.

참, 사실 이런 글이 저의 진짜 분위기랍니다. 블로그에는 사실 가식이 넘쳐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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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마를 한 적이 있었다. 그것도 두 번 씩이나.

나는 어울리고 그렇지 않고를 떠나서 짧은 머리를 싫어한다. 이마를 드러내는 것도 싫다. 중고등학교 6년 동안 앞머리 3센치미터를 강제적으로 유지해야만 했기 때문에 대학교에 들어가고 나서는 절대 머리를 짧게 잘라본 적이 없고, 군대에서 또 3년간 짧은 머리를 강제적으로 유지하고 난 이후 지금까지 설사 불편하고 거추장스럽더라도 머리를 짧게 잘라본 적이-사실은 딱 한 번, 정말 딱 한 번 있다-없다.

중고등학교 시절, 나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눈에 잘 띄는 학생이었기 때문에 몰래 머리를 기를 수가 없었고, 또 머리가 너무 빨리 자랐기 때문에 3주에 한 번씩 이발관에서 머리를 밀어야만 했다. 이게 너무 싫어서, 대학에 들어가서는 머리를 한 10개월간 길러 괴물의 형상으로 화하고 난 뒤 그 때서야 머리를 잘랐었다.

하여간, 짧은 머리를 오래 유지하면 머리를 길렀을 때 머릿결이 변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나의 경우 머릿결이 너무 힘 없어 항상 머리가 푹 주저앉은 채로 다녀야만 했다. 이것을 보다 못한 미장원 누나가 처음 파마를 권했었는데, 이 때가 94년 가을이었다.

이때는 상당히 준수했었다. 아직도 기억 나는데, 그날은 토요일이었고, 나는 모 여대 소비자 경제학과 애들과 미팅을 갔다가 밤을 새우고 아침 첫 차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나는 마음에 드는 사람을 찾을 때까지 미장원을 옮겨 다니다가 찾은 이후에는 그 사람이 없어질 때까지 다니는 편인데, 이 때 다녔던 미장원은 지금도 홍대 맥도날드 건널목에 있는 헤어클럽이었다. 뭐 말했다시피 토요일 아침이라 다른 사람도 없어서 쪽팔릴 일은 별로 없었는데, 워낙 큰 머리에 파마 롤과 수건을 뒤집어 썼더니 머리가 파마 기계에 잘 들어가려 하지 않았었던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아주 큰 롤로 말아서 별 티는 나지 않았으며 사실 효과도 없어서 약간 돈이 아까웠었다.

문제는 두 번째였다. 홍대 앞에서 머리를 잘라주던 누나가 없어진 뒤-보통 옮겨가거나 독립하더라도 원래 있던 미장원에서는 절대 어디로 갔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손님을 빼간다고 생각해서인데, 아마도 업계의 불문율인듯-더 큰 물로 나가겠다고 이대 앞을 뒤지다가 지오다노 3층에 있는 주노에 발을 들여 놓게 되었는데, 이 때 머리를 잘라주던 남자가 정말 머리를 잘 잘라서 아마 군대 가기 전까지 이 사람한테 계속 갔었던 것 같다. 사실 머리를 잘 잘라주는 것은 좋았는데, 주노는 아무래도 여대 앞이라서 여자들이 너무 많고, 게다가 탁 트인 평면 배치를 가지고 있어서 갈 때마다 상당히 쪽팔렸었다.

그렇게 쪽팔림을 무릅쓰고 계속 가다가 95년 여름에 또 파마를 했는데, 지난번과 달리 이번에는 사람-대부분 여자-들이 무지하게 많아서 롤과 수건을 뒤집어 쓰고 돌아다니는 것 자체가 상당히 쪽팔리는 일이었는데, 설상가상으로 *아주 자잘한*롤로 말아서 처음 풀었을 때 거의 아줌마 수준이었다! 아직도 기억들 하는가, 미장원 가서 ‘아줌마, 파마 해주세요’했는데 ‘아줌마파마 해주세요’로 들어서 장정구로 이미지 업 했다는 슬픈 우화를…그게 바로 내 꼴이었다. 그것도 또래 여자들 한 가운데에서… 아 쪽팔려. 거울을 보자마자 ‘밀어주세요’를 외칠 뻔했으나 돈이 너무 아까워서 차마 그렇게는 못하고 두 손으로 다 감싸지도 못하는 머리를 부여잡고 나는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와야만 했으며, 그 이후 다시는 파마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이후에 깨달았는데, 내 머리는 파마를 해도 안되는 말종이었다. 그 후 머리를 잘 정돈하기 위해 수십종류의 스프레이와 젤을 써봤으나 한 시간 이상 가는 것이 없었으므로 나는 그 뒤로 젤과 스프레이를 사지 않게 되었다.

하여간, 이 길고 두서 없는 얘기의 결론인 즉슨, 머리 큰 남자는 절대 여자들 많은 미장원 가서 파마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기계에 머리 안 들어가면 얼마나 쪽 팔리는지…

 by bluexmas | 2007/08/29 12:13 | Life | 트랙백 | 덧글(13)

 Commented by blackout at 2007/08/29 12:58 

대학교때 친구(남)를 꼬셔서 이대앞에서 파마를 하게 했던 적이 있었어요…꽤 잘나왔었는데(뭐랄까, 크리드 리드 싱어같다고나 할까…) 도저히 집에 그모습으로 갈수 없다고, 막 고민하다가 그날 저녁으로 풀어버렸다는..ㅋㅋ

 Commented by basic at 2007/08/29 15:12 

머어. 파마하는 남자가 지금은 이상하지도 않겠지만. 그 당시에는. 패디큐어를 하고 있는 남자를 보는 것처럼 이상해보였겠죠;

 Commented by D-cat at 2007/08/29 15:20 

전 파마가 일주일을 못가서 항상 돈아까워서 울죠.

어렸을 때 처음 한 파마가 아줌마 파마여서 그 뒤로 근 20세가 넘을 때까지 파마를 한번도 한적이 없었답니다. ㅎㅎ

 Commented by 까만머리앤 at 2007/08/29 23:30 

저는 이번에 하도 머리가 지겨워서.. 뽀글이 대신 볼륨매직인가 뭔가를 했는데.. 변화가 없어서 슬픕니다. 그냥 스트레이트 할 걸 그랬어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07/08/30 13:02 

blackout님: 그 정도였다면 머리 잘 나온 거였을텐데 바로 풀렀다니 아깝네요. 저는 대두장발괴수였는데…-_-;;

basic님: 그 파마라는게 이상했다기 보다는 뒤집어 쓰고 있었던게 웃겼던것이겠죠 뭐..흐흐…

D-cat님: 저만 파마에 아픈 기억이 있는게 아니었군요. 그래도 아이들이 아줌마파마 하면 귀엽던데…^^;;

까만머리앤님: 제 블로그에 예전에 들르신 적이 있던가요? 닉은 낯익은데… 원래 앤은 까만머리나 빨강머리나 공통으로 양갈래 땋은 머리 아닐까요?^^;;;

비공개님: 전 머리가 그냥 줄줄 흘러내려요. 뭐 어찌하여 Volume Active이런 걸 써도 그렇게 효과가 없는데요?

 Commented by j at 2007/09/06 11:04  

bluexmas님 글을 왜케 재밌게 쓰세요 ㅋㅋㅋ 엄숙히 음악을 들으며 읽다가 마구 웃어버렸습니다 이대 주노 거기가 2호점이었던가요 저도 대학교 신입생시절에 몇번 갔던 기억이 나네요

아 정말 웃고갑니다 아줌마 파마라니ㅋㅋㅋ

 Commented by bluexmas at 2007/09/06 14:26 

으하 재미있게 읽어주시다니 저야 감사드릴 따름이죠. 이건 아주 오래전에 쓴 글이에요…

 Commented by conpanna at 2007/11/06 15:48 

퍄하하하..이게 바로 bluexmas님의 파마굴욕기였군요..

그래도 저같이 오빠를 놀려먹는 악랄한 동생은 없는 관계로 조용히 일단락 된거였겠죠? ^^

 Commented by bluexmas at 2007/11/07 15:02 

저에게는 그만큼 악랄한 형이 있습니다요-_-;;;

 Commented at 2008/01/30 04:48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08/01/30 15:54 

하하 슬픔은요…그냥 평범한 자학개그인거죠^^

 Commented at 2008/01/30 17:31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08/02/04 13:10 

그, 그런 것이었군요…-_-;;; 나도 슬퍼지려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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