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 떠돌이 bluexmas

 자리에 앉아서 일을 못한게 벌써 일주일이 넘었군요. 시작은 마감이 2주 정도 앞으로 다가온 모 프로젝트의 제안서를 Adobe InDesign으로 만드느라 프로그램이 설치된 책상들-Adobe는 기업용 라이센스를 주지 않기 때문에 회사 직원 모두가 프로그램을 가지기 어렵다죠. 그래서 많이 쓰는 사람들의 컴퓨터에만 선별적으로 깔아주더라구요. 그래서 포토샵도 저같은 무지렁이 평직원(?)은 LE 버젼을 깔아주는데, 이게 치명적으로 가이드를 쓸 수가 없어서 아주 낭패라지요-로 옮겨 다니며 일하는게 계기였는데, 제가 다른 책상에서 일하는 사이에 나머지 팀원들이 같이 거의 워크샵을 하다시피 사무실을 쓰면서 다른 계획안들을 짜내고 있어서, 저는 아예 그게 끝날때까지 출장이나 휴가 간 사람들의 컴퓨터를 학창시절 메뚜기질 하다시피 옮겨다니며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불편하냐구요? 아뇨, 정반대라고나 할까요… 몇 번인가 블로그에서도 얘기한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지금 머무는 곳이 임시 사무실이라, 사람들과의 물리적 거리가 거의 보장이 안 되거든요. 그래서 육체적으로도 불편하고, 또한 정신적으로도 눈치를 봐야 되는 등, 꽤나 불편한 상황이 벌어지곤 합니다. 특히나 저같이 성질 더러운 인간은 10분마다 한 번 씩 이거했냐, 저거했냐 물어보고 재촉하는 것보다 그냥 놔두면 시간내에 끝내주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사공님들께서 바로 60cm옆에 앉으셔서 제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작은 것 하나하나까지(뭐 엑셀 스프레드시트 스타일까지-라고, 과장을 좀 섞어 얘기하자면 그렇습니다-_-;;;) 고쳐주시는 상황은 솔직히 그다지 생산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그리고 또한 너무 거리가 가깝다보니 일과 관계없는 얘기를 해야되는 상황이 많이 생기는데, 이 경우 조직의 서열에 따라서 대화의 상호교환성 정도가 달라진다는 것은 다들 짐작하시겠죠. 예를 들어 사공님께서 얘기를 시작하시면 일손을 놓고 맞장구를 쳐 드려야 하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는데, 그 맞장구가 길어져서 저의 발화로 연결되면 사실 거기서부터는 상대방의 호응이 따르지 않는다는거죠. 물론 저도 지루한 반복작업 가운데 활력소와 같은 작은 대화들을 참 좋아하는 편이지만, 공통화제가 없거나, 있어도 일방적으로 듣고 맞장구 쳐줘야 하거나, 필요 이상으로 길어지는 대화는 그다지 즐기지 않는지라, 이런 상황들이 하루에 한 번 이상 발생하면 난처해지기 마련입니다.

거기에 제 자리를 떠나서 마지막으로 즐거운 이유는, 뒤통수로 내리꽂히는 에어콘 찬바람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죠. 이 찬바람이 얼마나 심한 정돈지, 제가 늘 미국애들한테’저 에어콘 바람 밑에 하루 종일 앉아 있으면 뒷머리가 다 얼어붙어서, 집에 갈때는 해동을 위해 에어콘을 꺼놔야만 돼, 아니면 머리를 돌려서 뒤에 무슨 차가 오는지 볼 수가 없다니까…’ 라는 농담을 하고 돌아다니거든요. 늘 덜덜 떨다가, 퇴근 무렵에 간식으로 요거트를 먹으면 반드시 따뜻한 물을 마셔서 장이 얼어붙는 것을 막아줘야 할 정도니까 얼마나 차가운지 짐작이 가실 듯…

하여간 그래서 요즘은 본의 아니게 일이 즐거운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회사를 다니는게 힘든 이유는 정말 일 때문이 아닌 것 같더라구요. 뭐 이 이야기는 운을 띄워 놓으면 끝이 없으니까 여기에서 접어야겠죠. 1년의 임시 사무실 생활도 9월 초면 이제 끝이라, 이렇게 마지막을 조금 마음 편하게 보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내일은 떠도는 김에 사무실에서 키우는 폐지 처리용 양이랑 염소들도 몰고 다녀야 되는 걸까요…

 by bluexmas | 2007/08/15 13:15 | Life | 트랙백 | 덧글(6)

 Commented by Eiren at 2007/08/15 14:18 

10분마다 한 번씩 작업 성과를 물어보는 상사가 있다면 성인군자라도;;[과장법 약간 섞어] 일 제대로 하기 힘들겠는데요;; 게다가 에어콘 찬바람의 위력!; 덥고 습한 것도 힘들지만 한여름에 덜덜 떨면서 일하는 것도 쉽지 않지요. 잠자리에서 만나는 양 한떼만 몰고 가도 폐지 처리는 간단히;;

 Commented by 플라멩코핑크 at 2007/08/15 19:28 

저도 에어콘바람이 너무 차가워서 얇은 긴팔 자켓이 필요할 때가 있을 정도라죠.

완전 에너지낭비… 게다가 같이 일하시는 분들 중에서는

유별나게 땀이 많은 분들이 많이 계셔서 그 분들이랑

전 에어콘 껐다 켜기 놀이를 해요.-_-; 혹 몰래 꺼버리고 딴청부리지만

결국 들켜버린답니다. T^T

 Commented by 카렌 at 2007/08/15 21:56 

도대체 회사라는 곳, 정말 왜 다니는 걸까요. 갑자기 철학적으로 궁금.

 Commented by 소냐 at 2007/08/16 04:00 

언제나 ‘무엇’을 하는가보다 상황이 ‘어떤’가 하는 게 저의 관심사라…

그러면 안되는 건가요 아니면 원래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건가요…

근데 그 ‘양과 염소’는 뭐에요?

 Commented at 2007/08/16 07:47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07/08/16 11:52 

Eiren님: 저한테 더 이상 양 대여 안 나간다는거 아시죠? -_-;;; 그래서 저는 지옥에 가서 염소를 모셔오곤 한답니다.

핑크님: 끌 수 있는 에어콘이면 낫죠. 제가 다니는 회사는 38층짜리 빌딩, 사무실은 24층… 중앙 난방식이라 통제도 저희가 못해요. 그래서 제 자리는 시베리아라죠.

카렌님: ‘회사’ 와 ‘철학’을 병치시키려고 하면 그때부터 사건사고 발생이라는거, 모르셨나요? 물과 기름보다도 더 안 섞이는게 회사와 철학이거든요. 회사는 습관으로 다니는 것이라고들 하더라구요.

소냐님: 저는 뭐 일은 저의 짭밥에서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는답니다. 문제는 언제나 어떤 상황에서 제가 그 일을 하게 되느냐는 것이죠. 늘 그게 문제인 것 같아요. 상황은 제가 조성할 수 있는게 아니니까요.

에, 그리고 양과 염소는…회사에서 키우는 애들이에요. 폐지를 먹여서 키운 다음에 연말 파티하는데 쓰려구요(믿거나 말거나-_-;;;;). 예전에 제가 썼던 글 가운데 ‘수면장려센터’ 에 대한 게 있었는데, 그 글 혹은 제 블로그 화면 왼쪽 이글루스 로고 위를 참조하시면…

그리고 염소는, 지금 지옥의 협찬을 받아 캐릭터 개발중이랍니다. 양을 빌릴 수가 없어서 악의 힘을 빌리고 있거든요.

비공개님: 아 슬퍼요, 그런 얘길 들으면… 그런 상황에 빠지면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하게 되는데 그건 정말 바람직한게 아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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