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바지랄의 끝은 어디메뇨

작년 말, 미국 서해안 일주 여행 중간에 샌프란시스코에 들렀는데, 호텔에 굴러다니던 가이드북을 집어 뒤적거리다보니 서부에서 가장 많은 청바지 재고를 보유한 AB Fits라는 가게가 바로 호텔 앞에 있다더군요. 여행을 떠나기 얼마 전부터 medium에서 light wash만 입는 제 취향에 맞는 색들의 청바지가 나오는 것 같은 Loomstate라는 브랜드를 한 번 시도해볼까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제가 사는 아틀란타 촌 구석에서는 취급을 안 해서, 미친 여행도 다니는 마당에 한 벌 질러 볼 생각으로 매장에 들렀습니다(이 매장에 들르게 되기까지는 정말 말도 안되는 드라마 같은 방랑을 겪어야만 했는데, 그건 언젠가 올릴 여행기에서 다루기로 하고 일단 통과). 우여곡절끝에 샌프란시스코를 떠나기 직전에야 들르게 된 매장은, 정말 서부 최고의 재고 보유가 구라는 아닌지 의심스러울 만큼 별게 없었습니다. 그래도 어쨌거나 뭔가 시도는 해보고 싶어서 31에 스키니가 아닌 것으로 달라고 그랬더니 별로 돋보이지도 않는 Paul Smith를 비롯해서 세 벌 정도를 집어주더군요. 그러나 짧은 제 다리를 감안해서 기장을 줄일 것을 감안해도 제대로 맞는 바지가 없어서 정말이지 서부 최고의 재고 보유는 구라인 모양이라고, 쓴 웃음을 지으며 가게를 10분만에 나서야만 했습니다. 그나마 골라 주었던 그 세 벌도 전부 요즘 유행하는 Dark 내지는 Gray Wash라서 체형상 웃옷을 바지보다 진하게 입는 편인 저의 취향과는 맞지 않았습니다. 아, 그리고 위에서 말한 loomstate는 제 사이즈가 딱 한 벌 있었는데 완전 스키니라서 도저히 입고 나갈 수 없는 것이더군요. 참고로 시도해보았던 바지들 모두는 $250 이상이었습니다 (아주 잘 맞아서 정신이 확 나가버리지 않는 이상 미친 여행중에라도 지르기 어려운 가격대죠 사실…).

그렇게 일찍 가게를 나오다 보니 생각보다 공항행 셔틀을 탈 시간이 남아서, 주변을 방황하다가 바로 옆에 있는 큰 GAP매장엘 들어갔는데, 여기에서 맞는 바지를 바로 찾았습니다. 그것도 세일해서 $35에… 그래서 저는 그때서야 깨달았죠. 아, 나는 $35짜리 하체를 가진 것이로구나…라구요(사실 샌프란시스코 가기 전 LA에서도 Beverly Heals에 있는 Barneys나 Saks에 들렀는데,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 스키니 아니면 다크 워시, 혹은 그 둘의 추악한 조합인 청바지의 기표를 빌린 타이즈, 고로 제가 입으면…OTL). 

Seven이나 Earl Jean처럼 이름만큼 말도 안되는 가격표를 자랑하듯 달고 나온 청바지 브랜드들 처음 접했을때는 설마 지금과 같은난장판이 벌어지랴, 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의 소위 Boutique 청바지 시장을 보고 있노라면 대체 저 많은 청바지 브랜드들이 뭘 내세워서 저렇게 비싼 청바지를 척척 내어 놓는지 이해가 안 갈 때가 많습니다. 물론 이제는 저 Seven이나 Earl Jean은 뭐 그냥 중저가가 되어버린 것이겠죠. 물론 그들도 따라잡기 위해서인지 $200대 청바지를 내 놓고 있는 것 같지만(솔직히 요즘엔 거의 관심 끊어서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물론, 청바지가 청바지답기 위해서 값이 싸야 된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 저도 어찌어찌해서 세일할 때 산 Paperdenim & Cloth와 Adriano Goldschmied의 바지가 각각 한 벌씩 있는데, 워낙 제 몸이 별 볼일 없으니까 fit은 논외로 한다고 쳐도 감은 정말 좋다고 느끼니까요. 무엇보다 오래 입어도 늘어지지 않는게, 저 위에서 언급한 GAP의 바지가 입은지 서너달(그것도 주말에만, 그러니까 실제로 입은 기간은 아주 짧은 것이겠죠)만에 늘어지기 시작하는 것을 감안한다면 $30짜리 바지 다섯벌 사서 석 달만에 축축 늘어지는 꼴을 보느니 그냥 $150짜리 한 벌 사서 오래 입는게 더 나을지도 모르죠(‘경제적’ 이라는 단어는 아무래도 어울리는 상황이 아닌 것 같으니까 쓰지 않겠습니다…). 실제로 뭐 이런 업종에 종사하신 분들은 더 잘 아시겠지만 이런 비싼 청바지들에 쓰는 감들은 보통 청바지들에 쓰는 것보다 좋을 수 밖에 없는 방법으로 직조(가장 많이 쓰이는 방법-어째 약간 부적절한 용어 같지만 통과-으로는 Selvage: 청바지 감의 끝 부분을 실로 처리해서 올이 풀리는 것을 방지하는 거라던데… 인터넷 어딘가에서 훔쳐온 사진을 참조하시고…, Ring Spun: 청바지 감을 일반 직조하는 방식보다 천천히 짜도록 해서 보다 길들은, 자연스러운 느낌을 주게 하는 방법 등이 있다고 하죠)한 것들이라서 일단 그 부분에서 돈 값은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fit인데…저는 남자니까 제 기준에서 말하면 일단 제가 동양인이기 때문에 미국에서 다른 옷을 입을때에도 맞닥뜨리게 되는 아주 미묘한 체형의 문제가 기본적인 핸디캡으로 작용하게 되는데, 거기에다가 원래 청바지라는 옷이 다른 옷 또는 바지들보다 체형에 민감하다는 것까지 감안한다면 정말 잘 맞는 부띠끄 진을 찾기란, 적어도 저처럼 별 볼일 없는 몸매의 소유자에게는, 하늘의 별따기보다도 더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실제로 심심할때마다 백화점에 가서 한 브랜드씩 골라서 종류별로 다른 fit을 찾아 시도를 해 봐도, 브랜드 전체에서조차 맞는다 싶은 느낌을 주는 한 벌을 찾기가 힘듭니다(여담이지만, 청바지 입어보는 것처럼 힘든 일도 없습니다. 길들지 않는 청바지는 뻑뻑해서 다리를 넣고 빼기도 힘들고, 또 요즘은 대부분이 button fly라서 단추를 잠그는 것도 너무 힘듭니다. 따라서 청바지 세벌 입어보기=윗몸 일으키기 50회에 맞먹는 체력 소모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거기에 일단 몸에 맞는 청바지를 찾았다 해도 기장(inseam)이 맞을 확률은 거의 없는데, 그것은 (미국을 기준으로 해서) 이런 브랜드들의 청바지가 비교적 소량 생산이기 때문에, 대량생산되는 보통 캐주얼 브랜드들의 바지처럼 같은 허리 치수에 다른 기장을 가진 바지를 거의 만들 수 없다는 것입니다(두 달 전인가 누군가 GQ의 패션상담코너에 물어봤더라구요. 거기에서 대답한 게 바로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소량생산 때문이라고…). 그래서 보통 34″ 내지는 36″ 의 기장을 가진 바지만 만들 수 밖에 없는데, 저는 기장이 32″ 니까 거의 5센치 이상을 잘라낸다면, 바지가 원래 재단될때 의도되었던 fit을 살릴 수 있는 것인지, 저는 알 수가 없더군요. 게다가 아직도 이런 시골 동네에서는 기장을 줄여달라고 그러면 밑단의 워싱된 부분을 그냥 잘라 버린 뒤 다시 붙이지 않아서 바지를 찾으면 울고 싶은 경우도 벌어지게 됩니다(정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도 잘 나가는 백화점이라는 Nieman Marcus에서… 완전 시골인 셈이죠.. 오래 전에 누군가의 눈먼 돈이 내리는 은총을 입어 $150짜리 바지를 사게 되었는데, 그렇게 얘기해서 ‘내가 어떻게 수선해달라고 그러는건지 이해했지?’ 라고 다섯 번 이상을 물어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밑둥이 싹둑 잘려진 바지를 웃으면서 들고 왔을때의 그 참담함이란… 어차피 지금은 그 바지 맞지도 않아서 허리 36인 분께 $10에 드릴 수도 있습니다. 딱 두 번 입어봤어요. 어차피 지금은 허리가 31이라 입지도 못…;;;). 

그러나 만약 저처럼 몸매가 구리지도 않은데다가 돈도 많은 분들이라면, 굳이 가게에서 이바지 저바지 입어볼 필요도 없이, 청바지를 맞추면 됩니다. 역시 왜 비싼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Earnest Sewn의 Flagship Store인 Earnest Cut & Sew(NYC Chelsea Market 소재)에서는 청바지를 맞춰 준다고 해서, 작년 3월에 뉴욕 여행시 저 샌프란시스코에서처럼 ‘미친척하고 한 번…?’ 이라는 마음 가짐으로 가게 문 앞까지 갔다가 소시민의 아우라를 지나치게 발산하는 저를 발견하고 문전박대 당하지 않기 위해 방향을  틀어 강변을 거닐면서 전화를 걸어 ‘니들은 청바지 맞춰주는데 대체 얼마니?’ 라고 물어봤더니 뭐 가볍게 ‘응, 우리는 $400에 시작해서 $800까지 다양하게 있어 시간 날때 들러줘~’ 라고 대답해주는 바람에 소시민의 아우라를 풍긴채로 가지 않는 저의 결정이 옳은 것임을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800이라니, 뭐 개인 트레이너가 식단 관리하고 프로그램 짜주는 대로 운동 한 5년 해서 몸짱이라도 되면 빚이라도 내서 시도해보겠지만 체지방 16.5%에서 더 이상 내려가지 않는 후진 몸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돼지발에 진주인 것이겠죠. 그러므로 통과.

 

그리하여 그 모든 비싼 옷을 걸치려는 시도를 무위로 돌린 뒤에 남는 것은 위에서 말한 GAP의 $45짜리와 Abercrombie & Fitch의 $79.50짜리…옛날 귀인들은 왕후장상이 될 자질 내지는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다던데, 요즘 귀인들은 그것 대신 부띠끄 청바지를 입을 몸매를 타고 나는 것인지도 모르죠. 그나저나 유기농 목화에 금실에 빈티지 리벳에… 해서 맞추지도 않은 청바지가 $400불 가까이 치닫고 있는 , 이런 말도 안되는 세기말적 청바지랄의 소용돌이 속에서 몸매도 돈도 없는 소시민 월급쟁이는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 가끔 고민이 되곤 합니다. 

 by bluexmas | 2007/06/05 11:34 | Style | 트랙백 | 덧글(8)

 Commented by 카렌 at 2007/06/05 11:55 

이건 taste 로군요^-^

저도 맨날 20만원짜리 청바지 보면서 갖고 싶어서 매일밤 웁니다(거짓말)

고속터미널 가서 만원짜리 사입죠.. 냠;

 Commented by bluexmas at 2007/06/05 12:02 

원래는 먹고 자고 입는 모든 걸 아울러서 Taste카테고리를 만든건데 계획에 없는 음식 포스팅을 너무 많이 해서 그걸 독립시킬까 해요. 그러나 Fashion 이런 카테고리는 제가 패셔니스타와는 너무 거리가 먼 관계로 좀…

 Commented by 잔야 at 2007/06/05 12:17 

청바지 사면서 기장이 제일 잘 맞는 브랜드가 gap이더라고요 ;ㅅ; 딴 거 사면 끝 좀 접거나 자르면 되지만… 그럼 본모양을 잃고 안 예쁘게 되어버려요 엉엉. 요즘은 힐 신는 분들에게 맞춘 바지도 자꾸자꾸 많아지니 한국에서도 그냥 운동화에 입을 바지 사기가 더 힘들어요 ;ㅅ;

 Commented by 보리 at 2007/06/05 12:17 

제 몸은 old navy의 피를 타고 났지요. 흠흠…

 Commented by bluexmas at 2007/06/05 12:41 

잔야님: 우리나라는 너무 옷 값이 비싸서 즐, 이랍니다. 어차피 여기에서 옷 잘 입고 보여줄 사람도 없어요 그냥 후줄근하게 살아요.

보리님: 퇴역 해군 출신이세요? 킥킥… 올드 네이비는 매년 7월 4일께 나오는 $5짜리 성조기 티셔츠가 최고죠! 매국노의 기분을 느끼면서…

 Commented by Amelie at 2007/06/05 14:06 

맞아요 우리나라는 옷값이 너무 비싸요.

더불어 신발이랑 가방도.. ㅜ_ –

 Commented by basic at 2007/06/06 05:28 

음. 남자옷은 북미지역에서 고르기가 힘든 게 사실인가봐요. 다들 불평불만.; 그래도 여자옷은 대략 괜찮던데. 저는 무조건 작은 사이즈가 있는 곳이라면 대환영. (0-2 사이즈/ xxs-s 사이즈)

 Commented by bluexmas at 2007/06/06 12:26 

Amelie님: 저도 요즘은 2년에 한 번 정도 들어 가서 너무 달라져 버린 유행에 한 번 놀라고, 말도 안 되는 가격에 두 번 놀란답니다. 감당이 안 돼요.

basic님: 그냥 뭐 그럭저럭 입고 다니는데 좀 그렇죠… 하지만 생각해보면 뭐 우리나라에서 파는 옷은 잘 맞았나 싶어요. 제 체형이 워낙 그저 그래서… basic님은 마르셨나봐요. 저는 대략 medium이면 걸칠 정도는 되더라구요.

비공개님: 저도 회사에는 정장/면바지가 dress code라서 주말엔 늘 청바지만 입는데, 마음에 완전히 드는 청바지를 찾기란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800이면 청바지 맞춰준다는데 시도해보심이… 그 게이=옷 잘입음, 이라는 공식이 다 맞는건 아니라는 무슨 기사가 이번달 Detail지에 나왔는데 Issac Mizrahi가 말하기를 “다들 기껏 게이 세 명 정도 알면서 걔들이 옷 잘 입으면 모든 게이가 다 옷 잘 입는 줄 안다니까”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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