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형 – Radio Dayz (2006)

My Radio Days

언제나 방학이면, 하루 종일 라디오를 들었습니다. 어머니가 출근하셨던 아홉시 무렵 부터, 퇴근하셨던 여섯시 정도까지… 가끔 클래식을 듣기도 했지만, 대부분 채널 선택은 89.1 KBS와 91.9 MBC에 맞춰져 있었습니다. 적어도 AFKN을 본격적으로 듣게 되었던 초등학교 6학년때까지는… 그렇게 언제나 라디오를 들으면서 책을 읽었고 그때 들었던 80년대 우리나라 가요들-순수하고 솔직하면서도 시적인 가사가 돋보였던-과 계몽사의 64권짜리 세계 문학 전집은 어른이 된 지금 다시 돌이켜봐도 가장 중요한 제 마음의 양식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설이 길었는데, 하여간 저는 정말 라디오 세대였던 것입니다(기억하십니까, 이문세의 별밤 공개방송… 우리나라에 라이브 음악이 아직까지는 살아 있었던 그시절이 정말…).

His Radio Dayz

위퍼의 이지형이 솔로 앨범을 내었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친구의 홈피에서 ‘Running Man’을 듣기 전 까지는 관심을 가지고 들어봐야 겠다는 마음을 먹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따지고보면 위퍼 시절부터 그의 음악을 좋았던 바, 매끈한 16비트 통기타 스트로크가 단숨에 귀를 차고 들어오는 이 노래를 듣는 순간, 더 이상 망설일 이유를 잊어버리고야 말았습니다.

말한 것처럼 그의 음악을 좋아는 했지만 그리 관심은 없었기 때문에, 분명 냈다가 망한 것으로 기억되는 데뷔 앨범을 내고 무슨 일을 겪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앨범을 관통하는 아우라는 ‘팔아보자’로 일찌감찌 정한 듯, 쿨한 느낌의 사진으로 가득찬 자켓과 슬리브는 이 앨범의 숨결이 어떨 것이라고 듣기도 전에 암시하기에 부족함이 전혀 없습니다. 그 아우라를 충만하게 받으며 씨디를 돌리는 순간, 멀리서 Fade In 되면서 귀를 파고 들어오는 상큼한 클린톤의 아르페지오는 이미 눈으로 확인한 모든 이미지에 달콤한 확인 도장을 찍습니다. 아주 경쾌한 속도감과 함께.

이 앨범의 공식은 이렇습니다: 16비트 리듬+경쾌한 통기타 스트로크+ (분명히 싱글 코일일 것이 분명한) 기타 아르페지오 또는 멜로디+일정 음역 이상도, 이하도 건드리지 않는 안전한 보컬로 부르는 쿨한 가사=점심 먹고 한참 졸린 오후 두 시 쯤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면 딱 좋을 법한 가볍고 달콤한 사랑 노래, 그리하여 Radio Days 완성.

사운드 메이킹에 있어서는 철저한 문외한이기 때문에 어떻게 이 색감의 사운드를 전체의 곡에 동일하게 불어넣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모든 곡들은 철저하게 가볍고 말랑말랑한 느낌을 줍니다. 그러므로 들으면 들을 수록 사운드의 색감만으로도 귀에 감기는 듯한 느낌을 주는데, 악기들을 적당히 겹쳐주면서도 그 때문에 생길지도 모르는 무거움을 피하기 위해서 베이스를 비교적 고음역대로 편곡하고 드럼도 깔끔한 터치를 강조하지 않았나 느껴집니다. 아예 너무 악기가 많이 들어갔다 싶은 곡들에는 프로그램한 리듬을 썼구요.

하여간 그렇게 곡들이 귀에 잘 들어오기는 하지만, 너무나 달콤해서 듣다보면 금방 물리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편곡 때문에도 그렇지만 궁극적으로는 곡들의 멜로디 구성이 너무 비슷한, 그래서 그 곡이 그 곡 같은 느낌은 이 앨범의 치명적인 약점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전체적인 느낌은 약간 밋밋한 것입니다. 뭐랄까, 경쾌하고 달콤하고, 말랑말랑하면서도 착 붙는 그런 곡들이 가득 든 앨범을 만들고 싶었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가고 또 결과물도 좋다는 데 쉽게 동의할 수 있지만, 정말 이 뮤지션이 앞으로도 계속해서 만들고 싶은 음악이 이런 것인지, 또 가지고 싶은 색이 이런 것인지에 대해서는 약간의 의심이 남는, 그런 앨범인 것입니다. 그리고 저의 이런 느낌은 그가 무슨 언더그라운드에서 디스토션 가득한 음악을 선보이다가 이런 앨범을 만들었다고 해서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그냥 이게 단 한 번의 해프닝으로 그치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의미겠죠. 여러모로 이 앨범은 꽤 좋은 곡들을 들려주고 있으니까요.

끝으로, 저는 별점 따위는 주지 않지만, 만약 꼭 주어야 한다면 셋 반을 주겠습니다. 좋지만 곁에 두고 계속 듣기에는 약간 부족한 앨범이므로.

*덧글: 남의 글에 시비는 걸지 않는게 저의 철칙이지만, 웨이브 리뷰에서 언급된 부 래들리스와의 연관성에는 정말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by bluexmas | 2007/03/24 13:12 | Music | 트랙백 | 덧글(4)

 Commented by chan at 2007/03/25 00:43 

그냥

이지형이란 이름보고 들어와봤답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07/03/25 14:34 

그러셨군요

들러주셔서 감사하고 종종 들러주시면 더 감사드릴께요.

 Commented by makondoh at 2007/03/26 12:56  

부 래들리스와의 연관성은 증말…쩝쩝…

 Commented by bluexmas at 2007/03/26 13:10 

그러게… 그나저나 이글루스로 이사할 생각은 없냐? 답글 달려고 로그인 하는 것도 만만치 않더라구.

%d bloggers like th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