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을 보내며

2005년, 불행은 예기치 않은 일을 겪기 시작하면서 싹트는 것이라는 교훈을 가슴 깊이 새기도록 해준, 정말이지 길고 긴 한 해 였습니다. 언제나 새해의 아침은 끓고 있는 떡국 냄새와 언제나 교조적이었던 ##신문의 뜨는 해 사진으로 인해 낙천적일 수 있었지만, 올해만은 정말 달랐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저는 이제 막 자라기 시작한 불행의 싹을 안고 불안에 떨고 있었고, 제가 그동안 품고 있었던 낙천적인 생각들은 이미 12월 24일 밤, 제가 자는 사이에 사악한 산타클로스가 다 걷어간 듯 말라붙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1월 6일, 다시 아틀란타로 돌아온 이후 그 모든 예상 가능한 불행들은 그렇게 줄지어 있던 대로 하나씩 둘씩 차곡차곡 찾아와 저를 괴롭혔었습니다.이 불행에 정확히 반 내지는 그보다 약간 더 많은 책임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던 저는 속수무책으로 당하면서 어서 이 고통의 끝을 보기를 바랬지만, 끝은 끝이 아니고 시작이었기 때문에 끝의 끝을 보기까지 저는 수많은 시간을 태워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그 끝의 끝에 저는 자유를 얻었지만 굉장히 많은 것을 버려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평생 가져갈 것이라 나 자신과 또 많은 사람들에게 약속한 것이었기 때문에 저는 아무도 모르게 부끄러움을 느껴야만 했습니다.

하여간 그렇게 힘든 시간을 겨우겨우 보내고 결국 혼자 덩그러니 남아서 싸구려 스페인산 스파클링 와인이나 홀짝거리고 있는 신세가 되었지만, 그래도 기분은 그렇게 나쁘지 않습니다. 일단 이렇게 힘들었던 올해를 멀쩡하게 남은채로 보낸다는 자체가 저를 기쁘게 만들고 있는데다가, 올 한 해, 잃은만큼은 되지 않아도 꽤 많은 것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제가 겪었던 불행은 알고 보면 제가 가져온 것들, 언젠가부터 저는 그렇게 저를 한참 동안이나 아프게 찔렀던 불행의 조각들을 버리지 않고 모아서 벽에 붙여놓고 저의 허물을 비춰보기 시작했습니다. 보면 볼수록 부끄러움은 더해갈 수 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저는 눈을 감거나, 고개를 돌리지 않고 똑바로 저를 쳐다보아만 했습니다. 지금은 처음이니까 저에게 너그러울 수 있겠지만, 저의 남은 인생에서 또 같은 잘못을 저지르고 많은 것을 이룬뒤 저를 미워하며 시간을 되돌릴 능력이 없는 것을 아쉬워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여간 그렇게 모은 조각들로 전신을 비출 수 있는 자아성찰의 거울을 만든 후, 마지막 남은 조각, 아마도 사월 십 몇일 인가에 거두었던 가장 날카로운 조각으로 저는 저의 허물을 벗겨내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충분히 고통스러웠지만 다시는 이런 모습으로 살고 싶지 않다는 오기 때문에 간신히 지금까지 버텨온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지금, 2005년 12월의 마지막 날, 희망밖에 가질 수 없을 새해를 20여분 남겨두고 저는 눈밭에 서서 저 앞에 보이는 불빛을 향해 걸어가고 있습니다. 조금 더 빨리 걷고 싶은데, 새해가 되기 전에 그곳에 다다르고 싶은데 마음만큼 발길이 바삐 떨어지지 않습니다. 답답함에 내려다보니 지금까지 벗겨냈던 허물의 조각들이 오른발목에 걸려 있었던 것입니다. 허물을 벗겨내는데 썼던 조각들은 이미 눈이 내리기 전에 땅에 파묻어 버렸으니, 더 이상은 그야말로 뾰족한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이것들을 안고 거기까지 갈 수는 없는 노릇, 저는 눈을 딱 감고, 이를 꽉 물은채로 오른발목에 걸려있던 조각을 왼발로 단단히 밟은 뒤 오른발을 듭니다. 타는 듯한 통증이 온몸을 감싸지만 아마도 이것이 정말로 마지막일 것이기 때문에 고통도 기쁨이려니 생각하고 참는 수 밖에 없습니다. 아, 드디어 떨어져 나갔는지 발목이 가벼워졌음을 느낍니다. 아마도 멀쩡한 살점이 조금은 묻어났겠지만, 저는 내려다보지 않은채 다시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하얗게 쌓인 눈 위로 제가 걷는 걸음마다 빨간 핏방울이 자취를 만들어줍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내리는 눈이 그 자취들을 지워줄 것이고 피도 곧 멎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계속해서 발걸음을 재촉할 것입니다. 설사 제가 보고 있는 불빛이 생각보다는 먼 곳에 있다 해도.

 by bluexmas | 2006/01/01 13:50 |  | 트랙백 | 덧글(2)

 Commented at 2008/01/31 20:01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08/02/04 13:09 

네, 뭐 서류상은, 이라고 해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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