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의 거짓말

금요일 아침, 피곤합니다. 한주간 쌓인 피로와 아무런 약속 없어도 저절로 생기는 듯한 작은 설레임들이 범벅되어 머리는 무거워지니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게다가 알람 시계는 왜 그렇게 눈치가 없는지 건전지만 먹여주면 분위기 파악도 못하고 연신 울어대기 마련입니다. 날짜, 요일까지 찍히게 만들어진 놈들조차도 오늘이 금요일인지 월요일인지, 자기들이 알려주면서도 전혀 개념 없이 그저 시간만 대면 빽빽대는 것으로 건전지 먹는 밥값을 다하려고 듭니다. 이렇게 갈등하는 금요일 아침, 누군가 속삭입니다. ‘저녁 때까지 아무 일 없을테니까 얼른 일어나서 여덟시간만 때우고 와, 내가 책임질께’ 라구요.

오늘도 그 말을 듣고 간신히 일어났습니다. 시계를 보니 이미 15분 지각은 보장되었더군요. 부지런히 면도하고, 샤워하고, 아침도 먹고 출근합니다. 오전까지는 약속처럼 흘러갑니다. 회사에 도착, 컴퓨터를 켜고 부팅되는 동안 팀원들이 돌아가면서 준비해오는 아침을 먹고, 강약을 조절하며 일을 합니다. 드디어 점심시간, 간단히 점심을 먹고 다시 차를 맡기러 나섭니다. 어제, 날씨도 꾸물꾸물하겠다, 기분도 덩달아 우울해지는 김에 정비소에 전화를 걸어 애꿎은 담당직원에게 화풀이를 했더랬습니다. 사실은 욕먹어도 싼 경우이기는 합니다. 약속을 자기 멋대로 옮기고 저에게는 아무 얘기도 해주지 않았으니까요. 게다가 계속해서 따져도 사과는 하지 않더군요. 제가 원하는 것은 단지 ‘실수였다, 미안하다’ 한 마디 듣는 것이었는데, 계속해서 말이 길어집니다. 일하는 시간에 이런 전화를 걸어서 시간을 끌고 싶지 않은 저는 급기야 화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I saw your handwriting for Wednesday on the document.’ …그제서야 사과가 나오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저는 망설이다가 오늘 차를 맡기기로 결정했던 것입니다.

가는 길에 차가 어찌나 막히는지, 브런치 전용 도로를 달리는 것도 그렇게 즐겁지 않습니다. 어쨌거나 차를 맡길때까지는 그럭저럭 순조롭게 진행되었습니다. 저의 목표는 늦어도 점심시간을 30분 넘긴 정도의 시간에 회사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렌트카 업체에서도 바로 정비소로 데려와 저를 데리고 갑니다. 거기까지는 금요일도 거짓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렌트카 업체에 도착해서야 알았습니다. 제가 가지고 갈 차가 없다는 것을. 자기들도 당황했는지 이리저리 전화를 돌려 차를 수배하지만 지금까지 없었던 차가 전화 한 통으로 생길리도 만무하거니와, 금요일 오후, 벌써 막히기 시작한 도로 상황을 감안할때 회사에 제시간에 돌아가기란 글러먹은 것이었습니다. 결국 제가 택할 수 있는 건 미국 아니면 그 아무데서도 환영받지 못할 산타페의 2배만한 SUV를 몰고 가거나, 차가 나올때까지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또 따지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니들 잘못으로 차가 없는 건데 나한테 제 값 다 내고 몰고 싶지 않은 차를 몰라면 나보고 회사로 돌아가라는거냐 말라는거냐…’ 어차피 가장 작은 차를 빌릴 생각이었는데 트럭만한 SUV는 도저히 운전할 엄두조차 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예전에 SUV를 운전해봐서 알고 있습니다. 대체 저 종류의 차들이 얼마나 운전하기 불안한지…  한참을 따지자 그제서야 렌트비를 좀 깎아주고 내일 아침에 집 근처의 다른 대리점에 가서 차를 바꿔가라고 합니다. 알고보니 그 하나 남은 차조차 다른 대리점에 있어 또 차를 타고 어디론가 갑니다. 차를 받고서는 대체 리어뷰미러 조정하는 법조차 몰라 한참을 헤매다가 몰고 길로 나섭니다. 이것으로 그렇게 순탄하지 못한 금요일의 난장판은 대강 마무리 지어질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건 착각이었습니다. 회사 바로 앞에 다다라서야 알아차린 것입니다. 고치라고 차 열쇠를 주는 김에 집도 고쳐주기를 원했던 것인지 모든 열쇠를 꾸러미채 정비소에 주고 왔다는 것을… 회사 건물 앞에서 주차장 들어가는 입구까지 한 20초 되는 시간 동안 온갖 방법을 생각하다가 결국 차를 다시 돌려 정비소로 향하기로 했습니다. 브런치를 한 번 먹어보기도 전에 기대로 가득차야만 할 브런치 전용 도로는 지옥과 같이 느껴졌고 말도 안되게 흔들리는 차를 다시 몰고 정비소까지 가서 열쇠를 받아들고 회사로 돌아오니 세 시 반, 결국 일은 다 한 셈입니다. 회사에는 차마 열쇠를 놓고 왔다고 말 할 수 없으므로 차를 빌리러 갔는데 차가 없어서 기다렸다…고 대강 둘러댑니다. 요즘 왜 이렇게 실수가 잦은지, 대체 이렇게 태어나서 살고 있는게 실수인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드는 요즘입니다. 워낙 많은 시간을 까먹어서 그런지 퇴근 시간은 너무나도 빨리 찾아오고, 회사 앞 바에서 사람들과 잠시 노닥거리다 집에 돌아왔습니다. 오늘, 오랜만에 금요일이 거짓말을 했지만 따지지 않고 넘어가기로 합니다. 어제 말했던 것처럼, 그저 7일에 한 번씩 돌아오는 것만으로 아직까지는 고마울 따름이니까요.

내일은 회사의 크리스마스 파티, 그리고 일요일에는 출근… 주말이 고통의 월요일로 가는 지름길로 느껴지는 금요일 저녁입니다. 거짓말은 애써 흘려보내려고 노력중입니다.

 by bluexmas | 2005/12/10 12:53 | Life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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