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nt (2005)- 이유 없이도 아름다울 수 있는 젊은 일상의 단면들

 

(OST를 사서 좀 듣고 난 뒤에 글을 쓸 생각이었는데,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글을 쓰고 싶어서 일단 몇 자 적습니다. 음반을 사게 되면 음악에 대한 글을 따로 올릴 것입니다)

영화에 대해서 너무나도 무지한 저는, 신문의 리뷰 기사를 볼때까지 이 영화가 뮤지컬을 바탕으로 만든 것인지도 몰랐습니다. 더 솔직해지자면 사실 뮤지컬인지도 몰랐습니다. 단지 텔레비젼에서 예고편을 보고서 예전에 이유도 없이 좋아했던 Singles 나 Reality Bites같은 청춘물이라고 짐작했고, 그렇기 때문에 꼭 보리라고 마음 먹었던 것입니다.

아마도 제가 이런 영화를 좋아, 혹은 동경한다면, 그 큰 이유는 이곳에서 살았다면 가졌을법한 10대, 혹은 20대의 삶에 대한 호기심 때문일 것입니다. 저는 그저 입시지옥이 가장 뜨겁게 불타 오를때 학창시절을 보내고 대학에 들어간, 그렇게 자랑스럽지도 못한 수능 1세대니까요. 그리고 20대 후반에 학교를 위해 미국에 와서 졸업 후 취직해서 살고 있기 때문에 이곳에 사는 짧은 기간 동안 알게 된 미국인 친구들과는 정말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리하여 그런 친구들의 모습을 보고, 과연 저들이 그렇게 평범하게 살았던 10대, 20대 시절은 어떠했고, 또 나도 그런 시절을 보냈다면 어떠했을까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대답은 친구들에게 묻는 대신 영화를 보아서 간접 체험하는 것으로 얻는다고 가끔 생각하구요. 물론 이러한 감정은 동경이라기는 그저 호기심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작정 동경하기에 미국이라는 나라는 그렇게 매력적이지 못하니까요. 지상 낙원 파라다이스는 더더욱 아닐테구요.

동성연애와 약물중독, 그리고 그 두 가지에 탐닉하면 또한 가까워질 확률이 굉장히 높아지는 AIDS… 인기를 얻었던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영화화했기 때문에 원작 뮤지컬과의 비교가 가장 큰 이야기거리가 될만한 영화 ‘Rent’ 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다들 이러한 어려움(문제, 라고는 얘기하지 않으려 합니다. 물론 AIDS와 약물 중독은 생명을 위협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만, 동성연애 자체가 문제가 된다고는 말할 수 없는 세상이 되었으니까요. 네, 최대한 PC에 가깝게…)을 가지고 있는데다가 그 삶마저 남루하기 짝이 없지만 그래도 하루하루 살아갑니다. 꿈이 있는지, 낙천적인지는 솔직히 읽어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사실 저 같으면 그렇게 낙천적이기 쉽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영화 속의 주인공 가운데 하나인 Mark Cohen(Anthony Rapp분)이 찍은 영화속 영화로서 밝혀지는 시간적 배경인 1980년대 말이나 90년대 초에는 이러한 화제들이 사회에 알려지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그 자체가 영화를 이끌어 가는데 하나의 큰 줄기가 되어갈 수 있지만, 2000년대도 벌써 반이 지나간 지금에 와서는 조금 매가리가 없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아무래도 그것은 AIDS와 같은 문제가 해결이 되고 있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너무나도 많이 주변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화제의 중대함이나 심각함에 대한 자각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더더욱 평범하게 느껴지는 이 젊은이들에 대한 이야기에는 사실 그렇게 특별한 점이 없습니다. 제목에서 읽을 수 있는 것처럼, 영화의 큰 줄거리는 이 젊은이들이 돈을 안 내고 빌붙어 사는 아파트에서 쫓겨나는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이지만, 이것은 그들에게 그다지 큰 문제처럼 느껴지지 않는 듯, 이들은 그것과 관계없이 꿋꿋하게 각자의 삶을 살아가며, 그렇게 그들이 살아가면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들, 사랑과 갈등, 그리고 그 갈등이 낳는 이별과 재회, 성공과 실패, 그리고 죽음과 같은 것들이 작은 이야기거리를 만들어 영화를 이루는데 공헌합니다. 저러한 사건들이 우리의 인생에서 언제나, 또한 누구에게나 벌어진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결국 영화는 그다지 특별한 이야기거리를 가지지는 않은 셈이죠.

그렇지만, 이들이 (극중에서나마, 이런 표현을 쓰는 이유는, 상당수의 배역들이 1995년의 초연 당시 오리지날 캐스팅이기 때문에 이제 겉보기 등급이 많이 저하되어서 극의 사실성을 떨어뜨리는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젊기 때문에, 겪는 작은 갈등들은 그 시기를 아직 지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동경으로, 또 이미 지난 사람에게는 다만 조금이라도 겹치는 부분이 있을 법한 추억으로 다가올 여지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한때 ‘내일은 사랑’ 이나 ‘우리들의 천국’ 과 같은 청춘물이 인기를 얻었던 이유도 아마 그것과 비슷할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스크린이라는 필터를 거쳐 약간은 미화된 일상의 단면들이 시청자들에게는 자신들의 삶과 한편 비슷한 부분이 있다는 이유로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이죠. 꾸며졌지만 최대한 현실에 가깝다고나 할까…  저 자신도 대학에 들어가기 전에 그러한 드라마들을 보면서 마치 대학에 가기만 하면 그렇게 풋풋하고 아기자기하면서도 즐거운 대학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기대는 한 달도 되기 전에 깨졌었습니다. 다른 많은 평범한 고등학생/대학생들처럼… 하지만, 10년도 더 지난 이 시점에서 새내기 시절을 돌아보면 마치 그러한 시절이 저에게도 있었던 것처럼 느껴지고 있으니, 과연 이것은 무슨 조화인 것일까요? 결국 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힘은 동경과 추억이고, Mark가 찍는 영화 속 영화는 이러한 영화의 서술 전략 내지는 그 힘을 극대화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누군가의 죽음과 다시 이루어지는 사랑으로 극대화된 극중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키며 영화가 매조지되도록 만드니까요.

그리고 이 영화가 평범한 스토리임에도 불구하고 재미있게 느껴지는 이유는, 아마도 뮤지컬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위에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대부분의 오리지널 캐스팅이 제 몫을 다 해주고 있고 Mimi 역의 Rosario Dawson(최근의 영화 Sin City에서 미녀군단 가운데 한 명이었던)등의 배우들도 전혀 빠짐이 없는 노래와 연기를 선보입니다. 여기에 Green Day등으로 알려진 프로듀서 Rob Cavallo가 제작한 곡들은 기타가 많이 강조된 편곡으로 저같은 사람의 귀를 즐겁게 해줍니다. 그리하여 영화는 5분, 혹은 10분 정도의 뮤직비디오를 연속해서 보는 듯한 즐거움을 선사하고, 저는 두 시간 내내 20명도 들어차지 않은 넓은 상영관에서 발장단을 맞추며 영화를 즐겼습니다. 단, 뮤지컬의 특성상 곡들이 훅과 클라이맥스로 미어져서 그런지, 벅찬 감동을 잘 제어하지 못한다면 극중 클라이맥스가 시작되는 ‘La Vie Boheme’ 쯤 부터는 피곤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물론 이것도 뮤지컬을 제대로 본 적이 별로 없는 저 같은 무식쟁이에게만 벌어지는 현상일지도 모릅니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이 영화의 가장 큰 이야기거리는 원작과의 비교일텐데, 상당히 많은 원작 뮤지컬의 매니아들(Renthead라고 한다던데요?)이 많은 부분에서 입방아를 찧고 있다고 합니다. 물론 이런 경우에는 무지가 약인지라 저는 아주 즐겁게 보았습니다만, 어딘가에서 지적한대로 몇몇 오리지널 캐스팅의 겉보기 등급 문제는 약간 걸리는데, 특히나 Tom Collins(Jesse L. Martin 분)은 목소리만은 죽여주지만 너무 나이가 들어보여 의상도착자(Transvestite)인 Angel(Wilson Jermaine Heredia 분)과의 극중 로맨스가 상당히 안 와닿는 부분이 있습니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저에게 영화는 기대 이상이었고, 부러 극적으로 만들었을 것이 뻔한 곡들이 주는 기를 듬뿍 받아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극장을 나섰습니다. 왜 그런지, 무슨 메시지를 받았는지 생각도 나지 않았고, 과연 영화가 무슨 메시지를 주려고 했는지조차 알 수 없었지만 억지로 끌어다 맞춘다면 뭐 아직도 한참 젊지만, 그보다 더 어린 시절에 이유는 달라도 하나같이 뭔가로 고민을 했었다는 점에서 극중인물과 나 자신을 무의식적으로 동일화 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기타는 뚱땅거렸지만 제대로 된 노래나 연주는 해 본 적도 없고, 가슴앓이는 수없이 했지만 제대로 사랑은 해볼 기회도 가지지 못했던 시절… 지나가면 지나갔으니 나름대로 아름답게 느껴질 수 있는 것이고, 저는 이 영화를 보다가 꼭 그런 기분을 들킨 것 같았으니까요. 그래서 언젠가 기회가 닿으면 다시 뉴욕에 놀러가서 뮤지컬을 꼭 볼 생각입니다.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졌는지, 또 그로 인해 얼마나 가슴이 아팠었는지에 상관없이 추억이 단지 추억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난 후 무조건 아름답게 느껴진다면 사는 것이 조금은 더 행복해질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해봅니다.

 by bluexmas | 2005/12/05 13:54 | Movie | 트랙백 | 덧글(2)

 Commented by 산만 at 2007/07/02 10:19 

일년반도 더 된 글에 답글을 남기는 것이 좀 민망하기도 합니다만, 그래도 요 며칠 bluexmas님의 글을 재미나게 읽었던 터라 몇자 남기고 갑니다. 이 포스팅을 보니 영화 렌트를 꼭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이후 뉴욕에서 뮤지컬을 보셨는지 모르겠네요. 저는 어쩌다 세 번이나 보게되었는데, 한국의 유명배우 버전, 뉴욕의 브로드웨이 버전에 뒤이어, 한국 신씨뮤지컬컴퍼니의 신예배우들 버전이가장 좋았던 기억이 있답니다. 거듭 보면서 내용을 좀더 잘 이해하게 되는 것과도 연관이 있겠지만요. 혹시 한국에 들르게 되신다면 한번 한국 버전을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렌트 자체의 마니아라기보다, 렌트를 보던 서로 다른 시기의 추억이 항상 같이 떠올라서, 이래저래 특별한 마음으로 보게되지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07/07/02 11:10 

안녕하세요. 그래도 저는 답글을 단답니다. 다시 보시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뉴욕은 매년 한 번씩 가다시피 하는데 늘 혼자라서 아직도 볼 기회를 잡지 못했어요. 아마 올해 한 번 가게 되면 혼자서라도 볼까 해요. 영화에는 오리지날 캐스팅이 다수 출연하니까 꼭 보시기를 권하고 싶어요. 저도 렌트 자체의 매니아는 아니고, 그 말도 안되는 예술가를 표방하는 백수의 삶은 그다지 아름답지 못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음악은 정말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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