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퇴르 우유는 시대를 역행하는가

마트에 갔다가 리뉴얼된 파스퇴르 우유를 보고 놀랐다. 병 전체를 감싼 비닐 포장이라니, 이렇게 시대를 역행할 수가 있는 걸까? 생수 업계를 필두로 앞다투어 불필요한 포장을, 홍보의 일환으로라도 줄여 나가는 판국에 예전보다 더 많은 포장재를 쓰다니. 기존 포장재보다 더 매력적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는지라 대체 어떤 의사결정으로 이런 제품이 나왔는지 궁금해졌다. 심지어 더 큰 1.8리터들이는 포장이 바뀌지도 않았다(애초에 손잡이가 달린 병이라 이런 식의 감싸는 포장을 쓰기 어렵기도 하다).

물론 포장재를 줄이는 방식에 아쉬운 점이 없는 건 아니다. 뚜껑에 덧씌우거나 아예 돋을새김으로 제품명을 비롯한 정보를 박아 놓은 생수병을 보고 있노라면 과연 ‘유니버설’한 디자인인지 의구심이 든다. 나에게는 전혀 문제가 없지만 어린이나 노인층은 제품 선택에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게다가 사실 이런 시도라도 하는 제품군은 아직 소수이다. 내가 늘 ‘쓸데 없는 음료’라고 구분하는, 맛이 똑같은 괴상한 차 종류-옥수수 수염 등-은 여전히 병 전체를 감싸는 포장을 고수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절취선이 나 있기는 하지만 포장이 잘 벗겨지지도 않아서 분리수거를 할 때 품이 더 든다. 말하자면 의식적인 노력이 들어가기 때문에 시도조차 안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재활용 쓰레기를 내다 버릴 때면 포장을 벗기지 않고 일반 페트로 대강 버린 음료병을 허다하게 본다. 심지어 간단히 라벨을 벗길 수 있는 생수병도 그냥 일반 페트에 버린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보니 그런 이들에게 재활용을 좀 더 꼼꼼히 해달라고 부탁해봐야 큰 의미가 없을 가능성이 높다.

생수는 그나마 그냥 물이고 투명함을 강조하는 게 홍보 전략이 될 수 있으므로 포장이 없어지는 방향으로 가는 데 무리가 없다. 하지만 ‘쓸데 없는 음료’의 경우는 좀 다르다. 조금이라도 소비자의 눈에 띄어야 경쟁에서 살아 남을 수 있으므로 화려한 문양이나 색상이 필요하고 따라서 생수의 포장과 같은 길을 걸으리라 예상하기 어렵다. 사실 나는 맛의 차원에서라도 그 쓸데없는 음료의 세계가 좀 정리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사실 인간의 자발적인 선의에 기대야만 하는 사안은 뚜렷한 답이 없다. 안 하는 사람은 언제나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코로나 시대에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 요즘도 화장실에서 손을 씻지 않고 나오는 사람들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