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

지난 번에 깨달음을 얻었다고 그러더니 뭔가 달라지기는 했나 보네요. 얼핏 건조해 보이지만 선생님은 사실 굉장히 인간적인 사람이다. 환자의 상태가 좋아졌다 싶으면 발화가 채 시작되기 전부터 긍정적인 기운을 발산한다. 질문에 답변하는 태도도 사뭇 다르다. 지금 자기 앞에 있는 인간이 이전 방문보다 건강해졌다 싶으면 좀 더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심장내과에 갔다 온 이야기를 꺼내자 심장 근육이 팔의 그것과 똑같다는 설명을 해주었다. 사실 별로 궁금하지 않았지만 열심히 맞장구를 쳤다. 속으로는 곱창집에서 먹은 소 염통의 질감을 떠올리고 있었다. 아, 곱창 먹고 싶다.

2년 전 쯤의 상태로 돌아왔다. 뭐가 달라졌는지는 솔직히 잘 모른다. 요즘은 단기 기억이 늘 엉망진창이라 세부사항에 대해서는 말하기가 어렵다. 스트레스를 덜 받았겠지. 그것 밖에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스트레스를 안 받으면 무엇이든 한다. 나는 요즘 심지어 주말마다 빵을 굽고 있다. 이 집에 이사오고 처음 18개월 동안 전혀 손도 못했던 일이다. 시사하는 바가 굉장히 크다. 생각한 것을 실행에 옮기기. 이게 밥 버는 일 말고 아무 것도 안되는 때가 있다. 지금도 다 되지는 않지만 쓸데 없다고 생각했으나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은 일들로 영역이 많이 넓어졌다. 심지어 이렇게 잡담도 쓰고 있으니.

요즘의 상태는 정말 몇 년 만에 느껴보는 최선이지만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지는 모른다. 아주 작은 사건사고로 인해 다시 곤두박질 칠 수도 있다. 어떤 게 사건사고 역할을 할지도 전혀 감을 잡을 수 없다. 하지만 어쩌면 이건 적어도 5년 쯤은 겪었던 번아웃에서 비로소 빠져 나오는 상태일 수도 있다. 5년을 겪고 빠져 나오는 데는 3년 쯤 걸린다는 말인가? 어쨌든 정말 그렇다면 기복은 있을지언정 예전 만큼 바닥을 치지는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얼마나 좋을까. 20개에 만 원 짜리 천도복숭아를 사가지고 돌아왔다. 집에서 펼쳐보니 멍든 걸 집어 왔더라. 그것부터 얼른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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