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자마자 지는 꽃

길을 걷다가 이름 모르는 꽃을 발견했다. 사실 대부분의 꽃 이름을 모른다. 이름 모르는 꽃을 맞닥뜨리면 조건 반사처럼 그가 생각난다. 그는 거의 모든 꽃과 나무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그는 사랑을 몰랐다. 따라서 자기가 받는 이름 질문이 정말 무엇을 위한 것인지 헤아리지 못했다. 와, 저것 좀 봐요. 이름이 뭐죠? 그는 언제나 권위를 담뿍 담아 대답했지만 몰랐을 것이다. 이름 같은 건 꽃 자체가 주는 순간의 감동에 비하면 보잘 것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그저 사람들은 자기를 기쁘게 해 주려고 어쩌면 그다지 관심도 없었을 이름을 묻고 또 물었다는 것을.

그가 진정 딱한 이유는, 죽는 순간까지도 자기는 사랑을 알고 있노라고 철썩같이 믿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다, 그는 모른다. 모든 네가 이름을 불러주었다고 다가와 꽃이 되지 않는다. 등을 돌려 뒤도 절대 돌아보지 말고 도망치세요. 그가 부른 이름을 나도 진작에 알았더라면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절대 그에게로 다가가 꽃이 되는 실수를 저지르지 말라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그때로 갈 수만 있다면 기꺼이 그렇게 할 것이다. 내가 존재하지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나는 아직도 어제 발견한 꽃의 이름을 모르고 딱히 알고 싶지도 않다. 이름에 휘둘려 아름다움이며 감동을 기억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고 싶지도 않지만, 사실은 꽃이 피자마자 시들어 버려서 기억이 금세 희미해져 버렸다. 그런 꽃을 맞닥뜨리기란 정말 슬픈 일이지만 그래도 사람이 살라고 채 슬퍼하기도 전에 완전히 져 버린다. 어떤 꽃이 피자마자 질 거라는 예상은 절대로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일단 지기 시작하면 슬픔 따위는 품지 말라고 증발하듯 사라져 버린다. 어쩌면 그게 진짜 아름다움일 수도 있다고 가끔은 생각한다. 아직 확신이 들지는 않았고, 앞으로도 꽤 오래 걸릴 것 같지만.

오늘은 이상하게도 밥이 잘 먹히지 않았다. 그런 날이 있다. 밥 따위는 원래 먹지 않고 살아온 양 생각도 나지 않는 날이 있다. 그런 가운데 뜬금 없이 어느 날이 떠올랐다. 천둥번개가 딸린 비가 제법 몰아쳤던 밤이었다. 그는 저녁을 안 먹고 야근 중이라 했다. 나는 오지 말라는 말을 대강 흘려 듣고 프렌치토스트를 구워 차를 몰고 내려갔다. 마침 냉장고에 작은 우유 한 팩이 있어서 그것도 들고 갔다. 나에게도 똑같이 해달라고 그러지 않았고 그랬던 적이 없었다. 그냥 어쩌다 보니 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랬을 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해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하지 말라고 말한다. 나는 저녁을 안 먹으면 배가 고프다. 따라서 다른 사람들도 저녁을 먹지 않으면 배가 고플 거라 생각한다. 사실은 그렇게 단순하디 단순한 일이건만, 생각이 쌓이면 쓸데없이 복잡해진다. 너무나 많은 생각이 정말 하나도 쓸데가 없다.

…때로는 고통이 너무나도 천천히 휘발되는 탓에 광경이 눈에 들어올 때가 있다. 오늘 그랬다. 하루 종일 움직였지만 마음은 우두커니 좌절의 영점 위에서 부동자세로 움직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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