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의 차원

 

2000년대 중반, 겨울에 고국을 방문했다가 진열장의 허옇고 뻣뻣한 딸기에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아직도 선하다. 그리고 15년쯤 지난 오늘날, 딸기라는 과일은 그때와 전혀 다른 차원에 자리를 잡고 있다. 이제 아무 가게에서나 눈에 띄는 대로 아무 딸기를 집어오더라도 맛이 없어 실망하는 경우는 없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말하자면 완성도가 고르게 높아진 상향 평준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물론 그 과정이 워프에 가깝도록 큰 폭의 건너뛰기는 아니다. 이 홈페이지를 뒤져도 그런 글이 많이 나오겠지만 그 사이에 딸기는 딸기 가공품 같은 맛을 내곤했다.

패턴을 분석해보자면 앞의 단맛은 더 증폭되지 않은 가운데 뒤쪽으로 가면서 나타나는 신맛의 존재감이 좀 더 뚜렷해졌다. 한편 맛의 영역 전체의 울타리가 좁아지면서 집중력이 훨씬 더 좋아지기도 했다. 백화점에서 파는 비싼 종류는 이런 기본 표정에 거의 장미의 그것에 가까운 향이 가세해 전체의 경험을 좀 더 조화롭게 강화해준다. 반면 마트에서 파는, 부담 없는 가격대의 딸기는 신맛은 대체로 크게 다르지 않되 단맛이 적다. 그래서 때로 시금털털한 것도 있지만 나름의 방식대로 즐겁게 먹을 수 있다.

이처럼 딸기의 맛이 비약적으로 발전했지만 아직 완성됐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맛의 영역 울타리가 조금 더 좁아져야 단맛과 신맛 사이에 길게 지나가는 공허함을 최대한 줄일 수 있다. 또한 완성도가 더 좋아지기 전에 품종의 출처에 대한 책임도 명확하게 구분지어 놓아야 한다. 많은 농작물이 그렇듯 딸기도 일본에서 인가 없이 들여온 품종들이 뿌리를 내렸다. 오래전의 일이기에 책임을 물거나 배상을 해야 할 사안은 아니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과거의 정황에 대해 명확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인터넷을 뒤져보면 ‘일본에서 들여왔지만 아쉽게도 승인 받을 기회를 얻지 못했다’는 식으로 감정이 섞인 기사를 찾을 수 있는데 잘못된 접근이다. 농가의 편은 딸기를 열심히 사먹는 것만으로도 잘 들어줄 수 있으니 지금이라도 감정이 섞이지 않은, 공과 과를 명확하게 구분한 기록을 남겨 놓아야 한다. 그래야 한국 딸기의 차원이 지금보다 더 높아졌을 때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보호를 좀 더 잘 해줄 수 있다.

*사족: 늘 이야기하지만 딸기는 사오자마자 뜨거운 수돗물에 데치듯 씻어 냉장보관하면 1주일도 넘게 두고 먹을 수 있다. 한국일보 연재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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