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의 한국인(3)] 피코크 옥동식 돼지곰탕-기름 빠진 맛집의 정수
[국의 한국인(1)] 수백당 돼지국(밥)-훌륭한 발상, 훌륭한 국물
[국의 한국인(2)] 광화문국밥 / 맑은돼지국-아쉬운 이식
아시는 분들은 다 아시는, 나와 인연이 깊은 옥동식(관련글 1 / 2 / 3 / 4)의 상징 돼지곰탕이 피코크 레토르트로 나왔기에 반가운 마음에 얼른 집어왔다. 오랜만이구려. 목재 인테리어와 두툼한 놋식기와 매운 김치 등, 옥동식을 규정하는 부수 요소가 전부 빠진 돼지곰탕은 과연 어떨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가격을 감안할 때 꽤 멀쩡했다. 그런 가운데 레토르트만의 장점도 분명히 있었다. 기름의 상당수가 굳어 레토르트 파우치 내부에 달라 붙음으로써 국물에서 기름이 추가로 빠지는 부수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이처럼 국물에 불만이 없었지만 고기는 힘들었다. 음식점에서 먹을 수 있는 것처럼 굉장히 얇게 저몄으나 살코기다 보니 딱딱하고 뻣뻣하게 굳어서 안 먹는 게 나을 정도였다. 그냥 조각조각 부스러지는데, 지방이 없으면 확실히 조리 후 재가열을 하더라도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기가 어려우므로 고려가 필요해 보인다. 레토르트 식품의 요소로는 부적합하다는 말인데, 박찬일 셰프 돼지국밥의 고기가 딱딱해서 못 먹을 아니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식(port)의 어느 단계에서 문제가 생긴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옥동식의 돼지곰탕은 워낙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음식이므로 먹을 수 없는 고기를 전부 건져내고 국물만 덩그러니 남는다. 결국 돼지 육수를 5,900원에 사는 셈이다.
음식 외의 요소들에 기름이 더 많이 끼어 있다고 생각했으므로 이런 경로로 먹는 게 차라리 더 나을 것 같기는 하다. 다만 그 부수적인 요소를 전부 들어내고 음식 자체만으로 경쟁을 시켜버리면 여태껏 살펴본 두 돼지국물에 비해 가격 외의 매력이 두드러지지 않는다. 그렇게 따지면 과연 피코크를 선택해 5,900원짜리로 이식(port)를 시킨 게 맞는 결정인가 의구심이 들게 된다. 1,000원쯤 올려 7,000원만 되어도 완성도가 훨씬 나아지지 않았을까? 하지만 좀 더 골똘히 생각해 보면 돌고 돌아 그 정도가 결국은 옥동식이라는 음식점에게 맞는 수준이기 때문 아닐까 결론을 내리게 된다. 혹자들에게 엄청나고 대단한 것으로 열띤 숭앙을 받았지만 사실은 평범함에도 미칠까말까한, 5,900원짜리 멀건 돼지고기 국물이라는 말이다. 세상에 진정성만으로 안 되는 게 생각보다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