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식빵의 현주소-떡과 수세미

마지막으로 먹은 이름값 있는 식빵은 신라 호텔 페이스트리 부티크의 제품이었다. 오 천원 보다 만 원에 가까운 세 종류 가운데 가장 비싼 식빵이 가장 실망스러웠다. 가장자리, 즉 껍데기가 너무 질겨 씹기가 어려웠다.

글을 잘 못 올리는 동안에도 온갖 식빵을 먹었다. 그야말로 ‘식’빵이니 안 먹을 수가 없으니까. 신라는 물론 롯데 호텔 베이커리 등의 노골적으로 고급인 제품부터 가로수길의 이것저것, 나름 동네 윈도우 베이커리를 표방하는 빵집의 식빵, 마트에서 2,500원에 파는 것 등등 수많은 빵이 나의 구닥다리 토스터에서 구워져 입을 거쳐 뱃속으로 사라졌다. 이 모든 빵을 씹어 삼킨 나의 소감은 단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다. 한국의 식빵은 떡과 수세미의 세계로 양분되어 있다.

떡은 구세계의 식빵이다. 빵집이지만 운 좋으면(?) 찹쌀떡의 원스톱 쇼핑도 가능한, 오래된 동네 가게에서 만드는 물렁하고 힘이 없는 종류 말이다. 공기가 많이 들어간 반죽을 덜 구워 부드러움을 가장한 물렁함을 뽑아내고 얇게 저며 힘이 없다. 장바구니에 자리를 잘못 잡아주었다가는 복구 불가능한 상태로 찌그러진다. 또한 사온 봉지 그대로 냉동시키면 조각끼리 달라 붙는데 얇으니 떼어내려다가 부서진다. 한 입 베어 물면 조직이 주저 앉으면서 이가 닿은 면이 하얗게 주저 앉는다. 손으로 뭉치면 정말로 떡이 되어 버린다.

수세미는 신세계의 식빵이다. 조직이 적당히 발달된 것 같지만 씹어 보면 뻣뻣하다. 위의 사진에서 왼쪽의 수세미와 흡사하다. 수세미는 떡의 정반대 행보를 취하는데 주력한다. 원래도 그다지 부드럽지 않을 조직의 빵을 두텁게 썰어 한층 더 뻣뻣하다. 떡이 1센티미터 안팎이라면 수세미는 두 배 수준으로 썰려 팔린다.

각자 다른 방식으로 이상적인 식빵의 양태에서 벗어나는 가운데 불만족은 수세미에서 더 크게 느낀다. 일단 가격이 떡의 두 배 수준에서 시작할 만큼 높은 가운데 자임하려는 고급스러움의 구현 방식에 대한 갈피를 못 잡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빵은 어떻게 먹어야 하는가? 떡처럼 토스터에 구워 잼이나 버터를 발라 먹으면 되는가? 아니면 재료를 사이에 끼워 넣어 샌드위치를 만들었을 때 더 맛있는가?

떡은 묵었고 싸니까 크게 기대하지 않지만 수세미는 새로우면서 비싸다. 따라서 특정한 생김새와 두께와 질감에는 이유도 함께 딸려 와야 하는데 그런 것을 읽기가 어렵다. 물론 좋은 밀가루와 버터 등의 고급 재료도 높은 가격의 전제조건으로 작용하겠지만 음식은 재료의 단순한 합이 아니다. 한마디로 떡에는 기대하지 않아도 될 비전을 수세미는 보여줘야 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

사실 현재 한국 식빵의 세계에서 진짜 필요한 절차는 식빵이라는 조리 문법 자체의 규정 및 공감대 형성이라 본다. 식빵틀에 넣어서 구웠다고 해서 모든 반죽이 식빵이 되지는 않는다. 우리가 추구하는 식빵이란 과연 어느 세계에서 건너온 무슨 양태의 빵인가?

좋으나 싫으나 이름 그대로 일본의 그것(쇼쿠팡)을 원형으로 고려하고 있다면 수세미의 대부분은 식빵이라는 이름 자체를 달기 어렵다. 상당수는 분명히 그것을 표방하나 실패하고 있고, 나머지는 아예 결이 다른데 모양만 흉내내고 있다. 더군다나 양쪽 모두 ‘탄성 속의 부드러움’이라는, 밀가루가 일궈낼 수 있는 모순적인 양태에 접근하는데는 사이 좋게 실패하고 있다.

어떤 빵이 ‘식’빵이 되려면 무슨 조건을 갖추고 또 만족시켜야 하는가? 크루아상을 비롯해 더 높은 기술 수준을 요구하는 비에누아즈리류까지 대중화가 된 현실 속에서 떡이든 수세미든 ‘식’빵을 찾기 어려운 이유에 대해 고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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