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마실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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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냉장고 앞에 서서 마실 것을 고르다 보면 좌절한다. 마실 게 없기 때문이다. 맑거나 선명한 게 전혀 없다. 양념을 덕지덕지 끼얹은 음식처럼 흐리고 뿌옇다. 한국인에게는 대체 어떤 마실 것의 선택지가 있는지, 현주소는 어떠한지 간략히 정리해보자.

1. 생수류: 대체로 표정이나 인상이 없다시피하고, 설사 있더라도 대세인 폭발하는 매운맛을 씻어내는 데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음식점에 가면 여건은 한층 더 나빠진다. 진짜로 정수를 하는지 안 하는지 모르는 물은 생수에 비하면 더 밍밍하고 스테인리스 컵에 담겨 단점이 더 두드러진다. 물론 같이 먹어야 하는 양념 위주의 음식에 대응도 전혀 못한다. 이런 수준의 물을 마시고 있노라면 수원이나 수질, 물맛 등의 큰 여건을 생각하기 이전에 ‘물은 돈 들이지 않고 먹는 것’이라는 선입견이 문화의 발전을 방해하고 있지는 않은가 의심을 품는다.

2. 탄산수: 트레비 지옥. 짝퉁을 마시기 싫다고 하더라도 이제 편의점에서는 선택권이 거의 없어졌다.

3. 차류: 한국에서 차는 전통적인 마실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실시간으로 내려 마시는 종류와 병에 담긴 기성품 사이에는 얼마 만큼의 간극이 존재해야 합당한 것일까? 국산 병입차는 대체 무엇을 뿌리로 삼았는지조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근본도 맛도 없다. 옥수수 수염 같은 것으로 굳이 차를 만들어 팔아야 하는지도 이해할 수 없지만 무엇을 우려냈든 맛이 없어서 먹을 수가 없다. 기본적으로 재료라고 주장하는 것의 합성착향료+비타민 씨 등 방부제의 신맛의 조합이기 때문이다. 이런 음료는 무슨 명분으로 왜 마셔야 하는 걸까? 제조업체의 주장처럼 V자 턱선을 위해서?

4. 우유: 한국의 우유에 대해서는 이제 쓸 만큼 썼으니 넘어가겠다.

5. 요거트: 500밀리리터 한 통에 설탕 45그램.

6. 환원유: 우유로부터 가지를 친 악의 대세이다. 보통 우유는 구리고 맛이 없더라도 빵 같은 음식과 어울리기라도 한다. 환원유는 결국 분유+물+설탕이니 그마저도 못한다. 표정은 빈약하고 단맛만 넘쳐난다. 나는 요즘 넘쳐나는 온갖 그럴싸한 이름의 환원유가 탄산음료보다 더 나쁘다고 믿는다. 탄산음료처럼 공공의 적이라는 이미지가 형성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노려 맛과 영양 양쪽 모두에서 가치가 없는 제품을 계속해서 쏟아내고 있다. 팔리지 않는 우유로 더 나쁜 상품을 만든다니 믿을 수도 없을 지경이다. 음료에서 가장 위험한 게 의식하지 못하는 칼로리 섭취이다. 청량음료의 원죄이지만 요즘의 환원유도 자유롭지 않다.

7. 커피: 2번의 차류와 똑같은 맛 없는 물을 연예인을 내세워 ‘갓 볶았다’며 광고하는 현실. 확실한 기만이다. 원두도 갓 볶았다는 이유로 더 나을 게 없는데 무슨 망발인가?

8. 주류: 국산 맥주와 소주의 지옥. 역시 쓸 만큼 썼으니 넘어간다.

9. 청량음료: 서양의 패스트푸드를 욕하지만 사실 현재 한국의 음식이야 말로 콜라나 사이다류에 딱 들어 맞는 짝이라는 현실을 우리는 받아들일 수 있을까?

10. 기타 정체 불명의 설탕물들: 무엇이든 왜 마셔야 되는지 모르는 것들을 쑤셔 넣을 수 있다.

사람들이 얼마나 마실 것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또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개선이 가능한지도 모르겠지만 만약 여지가 있다면 일단 가장 기본인 물을 출발점 삼아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우리가 마시는 물은 과연 괜찮은가? 앞에서도 언급했듯 수원이나 수질, 맛의 문제는 일단 차치해도 좋다. 물의 큰 그림이 괜찮은지 확인하고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특히 음식점의 물 말이다. 어느 시점에서는 깨끗하게 씻기지 않는 플라스틱 통에 담겨 기능하는지 의심스러운 살균기를 거친 스테인리스 컵이 딸려 나오는 기본적인 물이 과연 우리에게 괜찮은 것일까? 한국, 특히 한식의 식문화에서 과연 어떤 마실 것이 필요한 것일까? 혹시 물은 답을 알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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