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국 십 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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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적으로 일자를 기억하며 살지 않았다. 되려 정반대였다. 웬만하면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지난 구 년 동안 나는 요맘때면 ‘그렇군’ 정도까지만 생각하고 넘어가곤 했다. 기억은 물론 인정조차 하고 싶지 않은 때가 많으니까. 그렇지만 올해가 돌아온지 십 년째임은 모를래야 모를 수 없는 가운데, 최근 이사를 위해 짐을 정리하다가 돌아오는 항공편의 정보가 인쇄된 종이를 발견했다. 그런 것까지 껴안고 살 생각은 없었으니 어딘가에 묻어 있다가 발견된 모양이리라. 날짜를 보니 출발일이 4월 9일. 그렇다면 도착일은 4월 10일일 테니 오늘이 정확하게 십 년 되는 날인 것이었다. 아니어도 어쩔 수 없고.

사실은 작년부터 이전보다 부쩍 더 많이 생각했다. 무엇보다 십 년이라는 세월이 주는 무게가 생각을 부추겼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귀국 자체보다 이렇게 밥을 벌어 먹고 살게 된 세월을 의식 및 자각했다. 시작하면서 농담 삼아 ‘십 년을 버틴다면 실용서적으로 서바이벌 가이드를 한 권 쓰겠다’라고 말하고 다녔는데 정말 그만큼 세월이 흘렀다니. 물론 버텼다고 다 버틴 것도 아니고 버텼다고 딱히 자랑스러울 것도 없으니 ‘버텼으며 잘 했다’라고 말하기는 머뭇거려지는 가운데 그 모든 것이 벌어진 시간의 축을 한층 더 무겁게 받아 들였다. 십 년. 사진의 첫 책을 낸 출판사가 사라질 만큼 긴 세월이었다. 가장 좋아했던 글이 납품을 까먹는 바람에 실리지 않아 ‘중쇄에 넣자’고 이야기했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고 출판사는 사라졌다.

내내 실패에 대해 생각했다. 물론 생각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나는 실패를 했다는 사실에 부끄럽지 않았다. 부끄럽자면 얼마든지 부끄러울 수 있겠지만 그럼 내가 살 수 없을 것 같아서 부끄럽고 싶지 않았다. 나의 한계를 이미 인식하고 있었으므로 오히려 부끄럽지 않았다. 다만 나는 아무도 괜찮느냐고 묻지 않기를 바랐고, 누군가가 도저히 헤아리지 못해 괜찮느냐고 물어 보았을 때 그렇지 않다고, 전혀 그럴 수 없다고 대답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고 싶었는데 굳이 괜찮아야만 하는 이유도 없건만 그러기 어려웠다.

가장 큰 불만은 그런 것이었다. 좋든싫든 나는 행복했다. 나에게 잘 맞는 삶을 찾았다고 생각했고 정황을 볼 때 지속가능성은 명료하도록 불투명했지만, 끝이 있어야만 한다면 나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으니 그 사실만으로도 나는 괜찮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어떤 이유-너무나도 잘 알지만 구차하게 늘어놓지 않을 것과 희미하게 인식하지만 캐내고 싶지 않은 것-로 인해 나는 괜찮아야만 했다.

실패는 역시 십 년 가까운 세월 동안 쌓이는 게 당연했던 간극과 더불어 마치 없었던 일처럼 화제가 되지 않았고 나는 그게 너무 못마땅했다. 괜찮지 않아야 괜찮은데 괜찮아야만 해서 괜찮을 수가 없었다. 시간과 공간이 낳을 수 밖에 없는 간극 같은 걸 깡그리 무시하고 마치 어제 나갔다가 오늘 돌아오기라도 한 양 원래 나의 것이라고 말하는 자리에 바로 몸을 맞추라는 요구에 부응하기 싫었다. 사실은 그 자리가 싫어서 도망쳐 다시는 돌아오지 않고 싶었다는 걸 왜 모르세요. 정말 몰랐을까.

작년, 그러니까 구 년째 되는 해까지도 흘리고 온 줄도 몰랐던 부스러기를 주워 담으며 살았다. 물론 나도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여행 목적지와의 시차 한 시간마다 적응하는 데 하루 걸린다’라는 말이 있는데 팔 년을 살고 구 년 동안 부스러기를 주워 담아야 하는 건 좀 가혹하지 않나. 작년에 인생 최악의 TMI를 듣고 그렇게 생각했지만 이제 더 이상은 없다. 올해, 그것도 후반기가 되면 이제는 확실히 희미해지는 기억 말고는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

오랜만에 출판사도 사라진 책을 꺼내 넘겨 보았다. 정말 십 년이나 되었고 지극하게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은 데다가 첫 책이니 사실은 ‘흑역사’일 수도 있지만 적어도 부끄럽지는 않다. 부끄러워도 어쩔 수 없고. 백지를 받았을 때 고민 없이 기록으로 남겨야 되겠다고 마음 먹었다. 바로 이렇게 십 년 쯤 뒤에는 한 번 펴볼 수 있도록. 그리고 잊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잊지 않았음을 되새기도록. “누군가가 나를 보았다면 “그가 떠나고 있다”라고 말했겠지만 나는 내가 떠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물론 누군가 나를 보는 것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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