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9] 오프레 리뷰 (올리브 매거진)

UNADJUSTEDNONRAW_thumb_45c9

애스크에프엠에서 누군가 ‘오프레의 리뷰를 찾아 보았는데 올리브 매거진의 홈페이지에서는 볼 수가 없다’고 알려줬다. 리뷰를 그만두는 순간 바로 신경을 끊었으므로 거기에 내 글이 아직도 있는지 확인한 적이 없다. 차라리 없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니 만약 지금도 남아 있는 게 있다면 내려주는 것도 나를 위한 배려일 것이다. 하여간 근 삼 년 전의 리뷰지만 궁금하게 여기는 독자가 있어 올린다. 오랜만에 읽어보니 재미있다. 원래 분량이었던 원고지 20장으로 시작했을 때부터 빠듯했는데 이후 두어장이 더 줄어 매월 깎다가 지치곤 했던 기억이 난다.

오프레

‘볼라이’라는 메뉴가 있다. 닭요리다. 최소한 하루 전 예약 필수다. 가격은 60,000원. 이인분이다. 성업한다는 전제 아래 레스토랑 예약을 하루 전에 하는 경우는 드물다. 자리가 없을 것이다. 계획 방문이라면 적어도 일주일 전에 예약한다. 따라서 볼라이를 먹고 싶다면 예약 시점에서 결정하거나, 아니면 다시 전화 거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한다. 레스토랑이 확인 전화 걸기 딱 맞는 상황이다. 예약 시점에서 메뉴를 알려주고 하루 전 연락해 한꺼번에 확인한다. 볼라이를 드시겠습니까? 하지만 복수의 방문 가운데 확인 연락 받은 적이 없다.

추가 의사결정과 일인 30,000원을 요구하는 볼라이가 식탁에 오른다. 바로 실망한다. 거의 조건반사적이다. 외관부터 아름답지 않다. 접시 바닥에 얕게 깔린 주 위로 아무 가니시 없는 닭을 덜렁 얹었다. 수직으로 반 가른 덕분에 닭 뱃속에 채운 양송이가 보인다. 굵고 들쭉날쭉하다. 뒥셀(duxelle)이라 보기도 어렵지만 전체의 맛에 공헌하는 바가 의심스럽다. 닭과 버섯이 따로 논다. 닭만 놓고 보아도 인상적이지 않다.

애초에 한국 닭은 핸디캡을 지녔다. 지나치게 작다. 맛이 있기 어렵다. 감안하더라도 조리가 전혀 돕지 않는다. 작지 않더라도 닭은 어려운 재료일 수 있다. 부위의 크기나 성질이 다르다. 통으로 조리할 때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다릿살(느린 떨림 근육)을 익히려면 가슴이나 날개(빠른 떨림 근육)은 과조리 될 수 있다. 껍질을 바삭하게 익히려면 전체가 과조리 될 수 있다. 어떤 닭요리를 원하는가? 무엇을 살릴 것인가? 셰프의 결정에 따라 닭은 어느 방향으로도 갈 수 있다.

볼라이의 닭은 어느 선택도 하지 않았다. 익긴 익었으되 살이 잘 뜯기지 않는다. 껍데기도 전혀 바삭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60,000원과 하루 전 예약의 수고에 맞먹는 경험이 아니었다. 목표를 전혀 감 잡을 수 없었기에 의사결정 과정이 궁금했다. 닭은 미식 재료로서 이등급이다. 자체의 맛보다 육수 등으로 바탕에 공헌하는 동물이다. 일인 30,000원짜리 요리로 팔려면 일반적인 통구이로 부족하다. 승화를 위한 역량 투입이 필요하다.

그래서 갈란틴이나 발로틴 같은 문법이 프랑스 요리에 존재한다. 전체의 뼈를 발라 펼친 다음 속을 채우고 말아서 묶어 굽거나 조린다. 크기와 조직 특성이 다른 부위가 한데 어우러져 새로운 고기로 거듭 태어난다. 맛의 재구성은 물론, 포크와 나이프의 양식 맥락에서 뼈를 발라낼 필요가 없으니 격도 더 잘 맞는다. 60,000원짜리 요리가 좇아야 할 수준이다. 어렵다면 차선도 있다. 뒥셀처럼 페이스트 상태의 맛내기 재료를 껍질과 살 사이에 펴발라 굽는 방법이다. 한국 닭처럼 작아 마르기 쉬운 경우 유용하다. 하지만 볼라이의 닭은 어느 선택도 하지 않았다.

높은 가격이 스스로 설정한 기대를 채워주지 못한다. 오프레의 음식을 관통하는 패턴이다. 너무 단순하다. 물론 모든 단순함이 단점은 아니다. 맛과 향은 비시각 및 추상적이다. 눈이 감지할 수 없는 복잡함은 감각의 불일치를 통한 극적 효과로 새로운 차원의 즐거움을 빚어낼 수 있다. 말하자면 복잡한 단순함이다. 오프레 음식의 단순함은 그런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 단순한 단순함이다. 복잡한 단순함을 일궈내는 흔한 방법론인 ‘맛의 켜’가 없거나 희미하다. 소스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맛은 물론 농도와 질감면에서 전체-주요소인 단백질과 채소-를 한데 아울러 주는 역할을 적극적으로 못한다. 무관심하다.

전채격인 생 자크는 세프버섯 크림 소스 위에 관자를 덜렁 얹었다. 가정식의 맥락이라면 이해할 수 있는 단순한 담음새에, 가리비 관자가 겉면을 덜 지져 살짝 미끌거리며 표류하는데 25,000원이다. 일관적으로, 또한 메뉴의 설명과 달리 충분히 캐러멜화하지 않은 엔다이브를 곁들인 덕자병어구이는 볼라이처럼 2인분도 아니지만 43,000원이다. 통마늘과 통감자를 그냥 올린 이베리코 돼지갈비는 52,000원이다. 하나같이 단순한데 절제의 단순함도, 극적 효과를 위한 복잡한 단순함도 아니다.

단순함은 형식의 구현 또한 지배한다. 테린과 파테에 식사 곁들이와 같은 바게트를 그대로 내온다. 더 얇게 썰어 바삭하게 구웠다는 차이점은 분명 있지만 기공이 크고 딱딱해 지방이 핵심인 요리의 바탕으로는 어울리지 않는다. 브리오슈처럼 지방에 지방을 겹쳐 먹을 수 있는, 촘촘한 빵 종류가 훨씬 더 잘 어울린다. 둘 다 한 접시 29,000원이라면 고민이 부족하다. 별개의 빵을 준비했다면 설사 어울리지 않더라도 평가는 다를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메뉴도 마찬가지다. 전채, 메인, 사이드 모두 합쳐 기본 메뉴가 열 가지다. 2인 기준이더라도 두 번째 방문 이후로는 겹치지 않는 구성으로 먹기 어렵다. 오십 가지는 충분히 넘을 와인 리스트와도 장단을 못 맞춘다.

단순함은 탄수화물에서 최고조에 이른다. 파스타와 리소토 모두 고급 버섯 모렐에 기대어 가치를 높이려 시도했다. 볼라이의 푸아그라와 같다. 창백한 생 노른자와 흰 알끈이 실망스럽지만 파스타는 형식이나마 갖췄다. 리소토는 사정이 다르다. 속까지 완전히 익힌 축축한 쌀에 육수를 따로 부었다. 함께 천천히 익힌 음식이, 리소토가 아니다. 설상가상으로 부가가치의 방벽인 모렐에서 모래가 씹혔다. 패턴은 디저트까지 쭉 일관적이다. 기하학적 아름다움과 거리가 먼 볼로방에는 농도 조절에 완전히 성공하지 못한 묽은 커스터드나 과일 콩포트가 담겨 나온다. 부드러움을 맞잡고 따뜻한 초콜릿 케이크와 차가운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빚어내는 안도감을, 수분을 머금어 설컹거리는 견과류가 와장창 깨트린다.

이쯤되면 독자의 의구심을 기대한다. 부정적인 평가 일색이라면 대체 리뷰는 왜 하는가? 참으로 좋은 질문이다. 이번 달 리뷰를 준비하며 두 가지 의문을 재삼 곱씹었다. 정리해보자. 첫째, 좋은 점이 없다면 리뷰는 왜 하는가. 충분히 던질 수 있는 질문이지만 번짓수가 틀렸다. 레스토랑과 셰프에게 먼저 물어야 한다. 대체 이런 음식은 왜 합니까. 믿거나 말거나 최소한의 선을 통과했기 때문에 지면에 실린다. 일인 코스 100,000원, 적당히 술을 시키면 이인 경험의 총 비용이 400,000~500,000원선인 음식이 아예 먹을 수 없는 수준인 경우도 잦다. 김영란법을 생각하게 만드는 곳들이다. 오프레는 그런 수준은 아니다. 거부감까지는 없고 순간순간 즐거울 수도 있다. 하지만 파 수프(9,000원)와 샐러드(15,000원)를 제외하고 높은 가격이 스스로 설정하는 가치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

둘째, 왜 비평에 대안을 자꾸 제시하려 드는가. 3월 밍글스 리뷰 이후 단지 외적으로만 복잡하지 않았다. 내적으로도 많은 논란이 있었다. 의견을 구하는 이들과 논쟁을 벌였다. 대안에 대해 지적 받았다. ‘먹은 건 00이었지만 XX가 더 나았을 것이다’는 좋은 비평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테린/파테에는 바게트보다 브리오슈’가 좋은 예다. 지적 자체는 타당하다. 하지만 나는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안은 특수해다. 내가 제시하는 것은 일반해고 기준선이다. 파인 다이닝이 스스로 설정한 정체성-고급 외식-과 합치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선 말이다.

오프레에 장점이 없느냐고? 있다. 현대적인 내부 공간은 훌륭하다. 또한 음식과 와인, 더 나아가 프랑스를 향한 애정이 절제된 친근감으로 배어 나오는 매니저/소믈리에는 아름답게 빛나는 오프레의 별이다. 말하자면 멍석은 이미 잘 깔려 있는 상황이다. 음식이 장단을 맞춰줄 차례다.

오프레

aupresdevous.tumblr.com

서울 서초구 반포대로 4길 12, 석탑빌딩 1층

070-5025-3837

24석

화-일요일, 점심 12:00~15:00(마지막 주문 14:00), 저녁 18:00~23:00(마지막 주문 22:00), 월 휴무

분위기:  현대적이고 단순한 나무

서비스: 인력 보충이 절실한 1인 접객 체제

소리: 넉넉한 개인 공간을 통한 조용함

메뉴 및 가격: 점심 5코스 45,000원, 파 수프 9,000원, 샐러드 15,000원, 테린/파테 29,000원, 이베리코 갈비 52,000원, 볼라이 60,000원, 포 필레 82,000원

와인: 개편 중인, 잠재력 엿보이는 프랑스 위주 큐레이션 

예약: 추천

장애인 편의: 휠체어 진입 가능

%d bloggers like th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