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 하동관-죽지 않는 구태

IMG_0750 최근 재개장한 명동 하동관에서 점심을 먹었다. 음식이 궁금해서? 그럴리 없다. 본점이든 직영점이든 혹은 수하동이든, 나는 이 종류의 곰탕에 대한 기대가 없다. 다만 음식 말고 다른 요소들이 궁금했다. 과연 화재로 인해 다시 공사를 해서 문을 열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무엇인가 바뀔 수 있을까? 그래야 된다고 운영자가 생각할까?

그런 생각으로 들렀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바뀐 게 전혀 없었다. 인테리어를 다시 한 듯 보이지만 식탁은 예전부터 쓰던 것 같았다. 손이 많이 타 구깃거리는 식권을 만져야 하는 불상사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선불로 계산해야 한다. 달라고 하면 주지만 물도 여전히 셀프이다. 물수건도 말하지 않으면 주지 않는다.

IMG_0752 소금통은 뚜껑 없이 노출되어 있으며 후추는 여전히 갈아 파는 것을 병에 담아 놓았다. 싸구려 플라스틱 바구니는 쓰지 않지만 파는 여전히 잔뜩 썰려 역시 뚜껑 같은 게 덮이지 않은 채로 주발에 담겨 식탁에 놓여 있다. 음식 외적인 요소들이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면 과연 음식은 그대로일까? 장담하기 어렵다.

직장인 점심을 피해 한가한 시각에 갔는데도 토렴이 토렴 같지 않아 밥알이 까끌하게 입에서 걸렸다. 국물은 담겨 나오는 놋그릇을 손으로 집기 어려울 만큼은 뜨겁지만 대파의 숨이 죽지 않을 만큼 덜 뜨겁다. 까끌한 밥과 매운 파를 우적우적 씹다가 멀건 국물을 좀 마시고 고기 몇 점과 단맛이 두드러지는, 무른 배추와 무의 김치를 집어 먹으면 식사는 (개인차가 있지만) 10분 이내로 끝난다. 이제 보통이 13,000원인데 음식은 물론 끼니로도 함량 미달이라 15,000원짜리 특은 시켜야 적어도 ‘이것이 음식이구나, 나는 끼니를 채우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달리 말하자면 13,000원짜리 보통은 체면치레 밖에 못하니 없애버려야 한다고 믿는다.

IMG_0761 일부러 2층의 화장실에 들렀더니 바닥에 상자의 골판지가 깔려 있었다. 화장실의 상태도 물론 그저 그렇다. 직원들은 하동관의 상호가 박힌 빨간 셔츠를 입고 있는데 유니폼이라 믿고 싶어지는 수준은 아니다. 그나마도 모두 입고 있는 것은 아니며 하의는 추리닝 같은 바지에 ‘쓰레빠’ 차림이었다. 대체 한국인은 뭘 잘못해서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에 이런 수준의 음식을 이런 수준의 음식점에서 이런 수준의 가격을 치르고 먹어야 하는 걸까.

이제 나는 이런 음식을 경멸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일단 음식만 따져 보아도 맛의 목적 또는 지향점이 보이지 않는다. 어느 시점에, 좀 더 콕 찔러 말하자면 검토나 연구를 할 수 없었던 어려운 시절에 어설프게 구축한 맛을 팔린다는 이유 만으로 그대로 밀어 붙이고 있다.

‘한식의 품격’ 등에서 한국의 국물음식이 품은 문제에 대해 논했더니 문해력이 썩 좋지 않은 분들이 ‘아니 국물이 뭐가 문제냐’, ‘프랑스 같은 미식 종주국에도 국물이 있는데 그럼 다 잘못된 거냐’ 같은 비난을 하기에 기가 막혔다. 국물이 문제가 아니라 한국 국물이 대체로 목표도 지향점도 없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다. 국물이 미각 혹은 그를 넘어 다른 감각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무슨 역할을 하는지 생각이 없이 그냥 재료를 끓인다.

IMG_0753그 결과로 나온 멀건 국물을 고깃국물임에도 불구하고 ‘맑다’고 정당화한다. 탁하고 맑고 진하고 옅은 걸 떠나 국물이 줄 수 있거나 주어야 하는 감각에 대한 이해가 없으니 멀건 고깃국물이 정당화할 수 있는 한국적인 문법인 양 자리를 잡아서 하동관 같은 곳들이 노포라는 지위를 누리는 한편 옥동식 같은 음식점이 계승이라도 하는 양 개념을 복제하고 있다. 고기맛이 조금 나는 뜨거운 물을 고춧가루가 적극적으로 자극하는 빨간 김치로 억누른다. 어느 구석에 대체 전통이라며 자랑스럽게 여겨야 할 구석이 있는지 모르겠다.

정말 백번 양보해서 ‘그래요 당신들이 뭘 바뀌겠어요 음식에는 기대를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치더라도 먹는 환경은 왜 바꾸지 못하는 걸까? 썰어 놓은 파에는 뚜껑을 덮지 못하고 직원은 좀 더 말끔한 제복을 입지 못하며 왜 화장실은 좀 더 청결하지 못한 걸까? 음식의 최저가가 13,000원인 음식점이라면 물도 물수건도 요청하지 않아도 식탁에 놓아줘야 하지 않을까?

IMG_0758 80년 전통을 내세우는 음식점에서 조금이라도 격을 생각한 듯 보이는 요소가 놋주발 단 하나인데, 그마저도 무겁고 국물 때문에 뜨거워 음식을 먹는데는 불편함을 끼친다. 이런 걸 전통이라고 떠받들어서 우리에게 무슨 이득이 있는 걸까? 구태가 죽지도 않고 음식부터 여건, 접객까지 모든 측면에 유령처럼 도사리고 있는 이런 곳이 대체 왜 전통의 수호자 대접을 받아야 할까? 모든 설정이 의도든 아니든 ‘서민’을 향하고 있지만 정작 가격으로는 절대 서민적일 수 없는 이 크나큰, 속임수 같은 모순을 하동관은 자각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