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쁘아 뒤 이부-10주년 기념 코스

IMG_8740최근 레스쁘아에 별 생각 없이 가서 10주년 기념 코스(150,000원)를 먹었다(와인 별도). 코스는 예상 가능한 직선의 궤적으로 조금씩 완성도가 떨어졌다. 깎아 만든 듯 반듯하면서도 모든 맛의 균형이 정확히 잡혀 있는 아뮤즈 부시(푸아그라 테린)에서 최고점을 찍고 조금씩 내려가, 주요리(필레 미뇽 피티비에)에서는 모든 요소가 원래 해체를 추구한 양 한 번의 나이프 움직임에 모양도 맛도 분해되어 버려 하나의 음식이라는 느낌을 주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의 디저트에서 약간 높은 지점으로 올라가 막을 내린다.

미리 만들 수 있는 음식과 그렇지 않은 음식, 혹은 미리 만들더라도 난이도가 높은 요소를 지닌 음식 사이의 현저한 완성도 차이가 두드러졌다. 하지만 그보다 음식별로 간의 차이가 너무 크다는 점이 마음에 오래 걸렸다. 코스 전반을 통해 그리고 싶은 그림, 혹은 경험이 있어 의도적으로 그런 것일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그렇게 해석하기에는 편차가 너무 컸다.

미친 듯이 실망했다는 이야기를 또 하려는 거냐…면 그렇지는 않다. 평일 저녁이었는데 레스쁘아가 큰 공간도 아니지만 손님이 너무 없었다. 나와 지인 외에 딱 두 명이 간단해보이는 메뉴를 먹고 자리를 비운 뒤에는 아무도 문을 열고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마음 속으로 ‘이렇게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도 완성도가 이 정도 밖에 안되나?’와 ‘이익은 둘째치고 이렇게 손님이 없으면 일하는 재미는 있을까?’라는 두 생각이 엇갈렸다.

그래서 무슨 감정이 우위를 점했느냐고? 그건 전혀 중요하지 않고 헤아려보기도 어려웠다. 감정의 어딘가가 막히거나 무감각해진 느낌이라서 정확하게 파악도 어려웠거니와 그런다고 해도 큰 의미가 없기 때문이었다. 달리 말하자면 실망을 느낄 에너지 같은 게 이제는 없달까. 게다가 이런 수준이 최악이냐면 그렇지도 않다는 것마저 너무 잘 알고 있다. 1. 하고 싶은데못하는 것, 2. 하고 싶지 않아서 못하는 것, 3. 하고 싶지 않은데 못하지 않는 척하는 건 다 다른데 그나마 이런 수준이라면 1번이라고는 볼 수 있기 때문이고 대체로 3번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따져 보면 ‘4. 하고 싶고 잘 하는 것’도 어딘가에는 있어야 할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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