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뚜기 옛날 잡채’와 잡채의 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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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먹으려고 잡채를 만들고 싶은 마음이 이제는 거의 혹은 아예 없다 (내일자 한국일보 ‘세심한 맛’ 칼럼 참고). 그렇지만 잡채라는 음식을 먹고 싶을 때는 있을때 어딘가에서 열심히 찾으려 들지 않고 오뚜기의 인스턴트 잡채를 산다. 사실은 이나마도 편의점에서는 거의 빠져서, 며칠 전에는 마트까지 포함해 동네를 한 바퀴 다 돌고서야 찾을 수 있었다.

잡채는 무슨 맛으로 먹는 음식인가? 달리 말해, 잡채의 중심은 무엇인가? 다른 의견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나는 당면이라고 믿는다. 당면-전분-의 매끈하게 출렁이는 질감이 중심을 확실히 잡은 가운데 면의 가닥 사이로 스며든 (재료를 감안하면 배어들지는 않는다) 양념이 맛의 기본을 깔아준 가운데 나머지 고명이 맛과 질감의 조화 및 대조를 이룬다. 고명 가운데 한두 가지쯤 빠진다고 잡채라는 정체성이 사라지지 않지만, 반대로 당면이 빠지면 잡채는 더 이상 잡채가 아니다. 그래서 잡채의 핵심은 당면이다.

여기까지 생각한다면 왜 더 많은 인스턴트 잡채가 나오지 않는지 궁금하다. 짠맛 위주의 즉석 탄수화물 음식이 라면에만 국한 된 것도 아니고 떡볶이 등도 꾸준히 나오는데 라면에 더 가까운 잡채는 찾아보기 어렵다. 한편 모든 즉석 탄수화물 음식이 조리의 간편함에 비중을 크게 둬 원형 음식의 모사를 선택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고기나 채소 등이 존재감을 강하게 드러낼 필요도 없다. 마지막으로 삶은 면에 바로 양념 스프를 버무리는 조리 방식이 원형 잡채의 ‘무침’과 ‘볶음’ 사이의 고민을 원천봉쇄하는 한편 온도도 그럭저럭 맞춰 준다. 뭐가 더 필요한가. 모든 재료를 각각 준비해야 하는 단순하고 지난한 조리과정을 감안하면 웬만한 욕구는 이런 수준으로 방어해줄 수 있는 인스턴트 제품이 더 많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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