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 속 타래의 효율-평양냉면과 나물의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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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면 비평서를 쓴 이후 전보다 더 정기적으로 냉면을 먹지 않으면 밤에 잠이 오지 않는다. 그래서 며칠 전 근처를 돌아다니다가 동선이 맞아 진미평양냉면에 들렀다. 냉면의 맛에 대한 이야기는 책에서 충분히 했으니 넘어가더라도 (돼지 및 소고기의 고명 모두 딱딱했지만…), 유난히 말아 놓은 면의 타래에 신경이 쓰였다. 과연 이게, 이렇게 말아내는 면이 최선일까? 소위 ‘미감’이야 말로 취향이라 할 수 있을 뿐더러 원과 구는 모서리와 각의 부재로 안정감을 주므로 일단 정돈되고 한편 편안한 느낌은 줄 수 있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면 그 이외의 미적인 장점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일단 게슈탈트적으로 생각해 볼 때 그릇(경계선)-국물(바탕)-면의 비율과 위치가 대체로 어중간하다. 그리고 이렇게 면을 말아 놓으면 국물 위로 생기는 표면이 반구형이라 고명을 올리기가 어려워진다. 진미평양냉면의 경우도 삶은 계란이 아예 국물에 잠긴 채로 나온다. 반면 면이 물에 완전히 잠기는 경우라면 국물 위의 표면이 평평하고 일종의 단(mound)를 형성해 주므로 고명 올리기의 안정성이 사뭇 낫다.

여기까지야 그저 재미로 생각해볼 수 있지만, 진짜 관건은 타래 말기가 조리에 미치는 물리적 영향이다. 대체로 조리 후 선형인 재료의 물기를 빼고 모양을 잡는데 적극적으로 쓰인다. 각종 면은 물론, 시장에서 파는 삶거나 데친 나물도 타래를 잡으면서 양손 사이에서 압박을 가해 물기를 뺀다. 그런데 뜯어 보면 타래를 자체가 삼차원적으로 겉과 안이 뚜렷하게 구분되는 덩어리(mass)이므로, 부피가 커질 수록 겉이 안을 보호하는 상태가 되어 버린다. 달리 말해, 타래를 틀면 안쪽으로 들어갈 수록 물기가 잘 안 빠지고, 이에 비례해 압박을 더 크게 준다고 해도 대체로 압력은 바깥쪽에서부터 특정 깊이까지만 부담을 지게 된다. 그 결과 전체의 물기는 완전히 빠지지 않되 식재료의 겉은 마르거나 짓눌리는 상황이 벌어진다.

평양냉면의 경우라면 타래지어 놓은 면은 대체로 국물에 쉽게 안 풀린다. 국물에 완전히 잠긴 채로 나오는 면의 볼품이 더 떨어질 진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주방에서 면을 뽑아 삶고 물기를 빼어 식탁으로 나오는 동안 다시 국물과 어우러질 기회를 가지니 먹는 이의 노력이 한층 줄어든다. 그나마 물냉면은 어찌 되었든 손님의 노력에 의해 궁극적으로 어우러지므로 낫다. 비빔냉면의 면을 빡빡한 또아리로 틀어 고추장(전분) 위주의 뻣뻣한 양념장을 끼얹어 내놓으면 잘 식탁에서 잘 섞이지도 않을 뿐더러, 과정에서 양념이 먹는 이의 옷에 튈 수도 있다. 물냉면이 국물을 끼얹어 낸다면, 사실 물성을 따져 볼 때 ‘좀 더 뻑뻑한 국물’에 가까운 비빔냉면 또한 부원면옥처럼 주방에서 요리사가 비벼 내는 것이 좀 더 완성에 가깝다고 보아야 한다.

그나마 면은 길지만 타래를 이루는 단위개체의 크기나 길이 및 단면적의 길이가 거의 똑같은 정도로 일정하니 괜찮다. 게다가 삶아낸 메밀면은 금방 풀어지므로 차림새 위주로 선택하자면 참아줄 수 있는 수단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물 같은 채소류는 사정이 좀 다르다. 삶아서 이미 힘이 빠진, 일정 수준으로 비정형적인 개체를 타래지어 압박을 가하면 속의 물기는 대체로 남아 있는 한편 겉은 물크러진다. 따라서 대량조리라면 탈수기, 소량이라면 종이 행주 등을 깐 쟁반 위에 겹치지 않도록 펼쳐 놓고 한 켜의 종이 행주를 더 올려 찍어내듯 물기를 빼는 게 훨씬 더 효율적이고 음식의 맛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덜 미친다.

한식의 기하학적 설정-대체로 2차원에서 잘 못 벗어하는 기본 형태-과 모든 조리 단계에서의 비효율적인 수분처리가 음식의 발전에 영향을 강하게 미친다고 보는 입장에서 이 둘이 가장 강하게 맞물린 형식이 선형 재료의 타래짓기임을 실무자는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한편 만약 일부 평양냉면집을 중심으로 이 타래 짓기가 일종의 필수적인 조리 문법으로 자리를 잡아 나가고 있다면, 그 뒤에 어떤 사고 혹은 의사결정이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도 추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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