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크리의 애플파이

IMG_0907 토요일 아침, 언제일지 모를 시각에 눈을 뜨자마자 습관대로 머리맡의 아이패드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유튜브를 살피는데 맥크리의 단편 만화 영화가 올라온 게 아닌가. 2년 동안 오버워치를 플레이하면서 소위 ‘로어(lore)’를 담은 단편 만화 발표의 주기를 의식하지는 않아 온지라 아무 생각이 없이 그저 플레이를 시켰다.

‘아니, 맥크리가 싫지는 않은데 루시우를 비롯한 힐러는 대체 언제 다루는 것인가’라는 불만과 함께 영상을 보는데, 66번 국도-한때 미국의 상징이었으나 이제는 고속도로에게 자리를 내어 준-의 공격 팀 출발지점인 다이너의 애플파이가 눈에 확 들어왔다. 컴퓨터로 만든 만화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정말 맛있게 생긴 애플파이였다.

소위 ‘가장 미국적인 음식’으로 안 먹어보았더라도 알 것 같은 이미지의 음식이지만 애플파이는 그다지 만만한 음식이 아니다. 무엇보다 지방으로 글루텐 사슬을 잘라낸 껍데기로 위아래를 싸고 수분이 나올 수 있는 과일을 익힌다는 게 일종의 자충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외로 많은 조건이 한데 맞물려야 보기에도 좋고 맛도 있는 애플파이를 구울 수 있는데, 만화 속의 음식이니 맛볼 수는 없지만 적어도 눈으로 보기에는 맥크리의 애플파이가 모든 조건을 만족한 듯 보였다.

과연 무슨 조건인가. 일단 적당히 두께를 갖춰야 한다. 크러스트의 두께를 제외한 사과의 켜가 4~5센티미터는 되어야 이들이 오븐에서 익으면서 개개의 조각이 시각적으로 살아 있는 한편 하나의 덩이를 이룰 수 있다. 맥크리가 동전을 던저 놓고 모자와 총을 챙겨 나가는 11시 54분쯤에 마지막으로 먹은 한 입을 보면 알 수 있다. 사과의 조각이 잘 보이지만 포크로도 가볍게 그 전체가 마치 한 덩이인 듯 베어 먹을 수 있다.

IMG_0906 그런데 사과를 많이 써서 켜가 높을 수록 좋은 것은 아니다. 일종의 양날의 칼로서, 무엇이든 재료가 많아질 수록 수분도 늘어나므로 조리 과정에서 크러스트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예를 들어 높기로 유명해 이름이 붙은 ‘제방 사과 파이‘ 같은 걸 보면 사과와 크러스트 사이의 공간을 볼 수 있다. 저 정도의 파이 높이와 사과의 양이라면 피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적당히 높으면서도 다 구웠을 때 뚜껑 크러스트가 심하게 꺼지지 않는 양’ 의 사과를 중요하다.

한편 사과의 종류 또한 영향을 미친다. 바로 4주 전 한국일보 연재에서 다뤘던 것처럼 생식용, 혹은 수분이 많은 사과는 파이에 적합하지 않다. 요즘의 경향은 맛을 고려해 조리용 가운데서도 새콤함(tartness)와 단맛이 두드러지는 품종을 ‘블렌딩’해 만드는 경향이 있다. 또한 오븐에서 굽는 과정에서 배어 나오는 수분이 흘러 크러스트를 적시지 않도록 익어서 나오는 사과의 펙틴과는 별도의 ‘겔화 첨가제’를 쓰기도 한다. 그래봐야 별 건 아니고 옥수수 전분, 또는 그보다 조금 더 수분을 많이 머금을 수 있는 타피오카 전분을 쓴다. 맥크리가 먹는 파이 속의 사과는 반짝거리는 정도로 추측하건대 펙틴이 전부는 아닌 것 같고, 굳이 추측하자면 타피오카 전분을 좀 쓴 것 같다.

밀가루에 냉동고에 차게 굳힌 버터 쪼가리(주사위보다 좀 더 작은)을 부슬부슬해질 때까지 이겨 넣고 찬물로 글루텐의 발달을 최대한 막아가며 크러스트의 반죽을 만든다. 이를 냉장고에 30분 이상 휴지시켰다가(수분의 분배와 글루텐의 안정) 두 덩이로 나눠 적당히 밀어 한 장은 바닥, 또 다른 한 장은 뚜껑으로 쓴다. 뚜껑은 격자형으로 덮는 게 보기에는 좋지만 사실 파이를 먹을 때까지 형태를 갖추지 못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차라리 전체를 덮어 주는 게 좋다. 대신 만화에 보이는 것처럼 방사형으로 칼금을 넣어 굽는 과정에서 사과의 수분이 빠져나오도록 도와준다.

파이는 다 굽고 완전히 식혀 상온에서 먹는 음식이다. 대체로 설탕을 조금만 넣은 생크림이나 체다 치즈 등과 같이 먹기도 하지만 가장 고전적인 짝은 바닐라 아이스크림이다. 맥크리는 커피만 곁들여 먹는데, 아마 66번 국도에서 출발하기 전에 ‘여기 커피는 마시지 않겠어 언제나 끓인 ‘흙(‘모래’ 아님)’ 맛이 난다고’의 대사를 감안한다면 입에 안 댔을 가능성이 높다. 비단 여기가 아니더라도 대체로 다이너의 커피는 한약에 가깝도록 쓰고 닝닝해 맛이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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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 같은 소리 하고 있네’

* 이미지는 해당 만화 영화에서 캡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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