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절과 한식의 마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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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개천절이다. 쑥은 철이 아니니 그렇고 기리기 위해 마늘을 엄청나게 많이 썰어 넣고 수프를 끓였다. 마늘을 얇게 저며 넉넉한 올리브기름에 한참 볶아 맛을 내 끓이는 스페인식 마늘 수프(Sopa de Ajo)이다. 그렇다, 어쩌면 좀 웃길 수도 있다. 개천절을 기린다면서 외국 음식을 만들고 있다니… 하지만 의도적인 것이다. 곰이 쑥과 마늘을 백 일 먹고 사람이 되었다는 이야기에 정말 의욕을 받아서 그런지 한식에는 마늘이 엄청나게 많이 쓰인다. 그런데 그 방법이 너무 천편일률적이다. 거의 생으로 쓰고 익히더라도 목표를 정확하게 정하지 않는다. 과연 이 마늘은 자체를 먹기 위한 것인가, 아니면 맛과 향을 끌어내어 음식 전체에 윤택함을 불어넣기 위한 것인가?

곰에게 마늘은 고난의 상징이었을 테지만, 사실 잘 익힌 마늘은 맵고 아리지 않다. 백숙 같은 음식에 통째로 넣고 끓인 것도 하나의 예라 볼 수 있지만, 곱게 갈아 차가운 팬에 기름을 둘러 올리고 은근히 볶으면 매운맛은 가셔내고 단맛은 끌어낼 수 있다. 샐러드 같은데 쓴다면 비니그레트의 기본 재료인 산에 미리 담가 놓는 것만으로 일정 수준 매운맛을 덜어낼 수 있다. 한편 마늘빵 같은 음식을 만든다면 생마늘보다 마늘 가루가 더 효과적일 수 있다. 곰이야 인간이 되기 위해서 쓰고 아린 마늘을 먹었다지만 이미 인간인 우리는 좀 덜 맵고 아린 걸 먹어도 좋지 않을까, 개천절에 마음을 다져 보았다.

*사족: 참고로 이 마늘 수프는 아주 끓이기 쉽다. 위에서 언급했듯 마늘을 얇게 저며 올리브기름에 투명해질 때까지 볶은 뒤 파프리카 가루를 넉넉히 더하고 좀 더 볶는다. 닭육수 등을 부어 끓이고 먹다 남은 빵을 더해 걸쭉하게 만든 뒤 계란을 까 넣어 수란처럼 익혀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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