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선정 2017년 국내 필자 1/10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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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 신문이 접히는 면에 내 분량이 실려서 다림질이라도 해야 되나 생각했다가 어차피 종이 신문인데 주름이 없는 것도 이상해서 그냥 두었다. 그렇다, 조선일보에서 선정한 올해의 국내 필자 10인 가운데 한 명이 되었다. 소식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서울 3대 족발’이 생각났다. 리스트의 피로함 같은 감정 말이다. 물론 글은 족발이 아니고 이 리스트가 정확하게 순위는 아니므로 좀 다른 이야기겠지만.

어떻게든 작업을 인정 받는 건 긍정적인 일이다. 낮에 ‘미식대담’을 녹음하면서 ‘하루에 밥은 세 끼 밖에 안 먹는데 그 밥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욕을 더 많이 먹는 것 같다’는 자조적인 이야기를 했는데 한편 사실인지라 이런 상황은 나름 얼떨떨하다. 어쨌든, 무엇보다 공식(?)적으로 ‘음식 평론가’로 호명되는 상황에서 가장 큰 의미를 찾는다. 음식에 대해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음식 평론가’라는 직함을 고수했다. 크게 고민할 일이 아니었다. 건축 평론가가 되기 위해 오랫동안 공부했으니 나에게는 평론이 친숙하다. 굳이 음식이 아니더라도 나는 접하는 모든 분야의 평가를 즐겨 읽는다. 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건축 이론이나 비평서를 읽었다. 야구나 미식축구를 보면 경기평이나 분석을 읽는다. 클래식 음반이나 공연을 접하면 리뷰를 확인한다. 영화를 보면 위키피디아에서 관련 정보를 찾아 읽는데, 그 가운데 온갖 비평이 모여 있으니 요지를 확인하고 궁금한 비평은 별도로 찾아서 읽는다. 어떤 시각으로 무엇을 보는지 확인하는 과정은 나에게 일종의 습관이다.

게다가 음식도 평론의 대상이라는데 추호도 의심을 품은 적이 없으며 음식 평론가라는 직업은 적어도 200년 동안 존재해왔다. 이 모두를 아우르면 내가 음식 평론가로서 글을 쓴다거나, 한국에 음식 평론가가 존재할 수 있다는 전제가 전혀 어색하지 않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비슷한 일을 하지만 본격적으로 음식 평론가라는 직함을 내건 이를 본 적이 없다. 굳이 내가 주워 섬길 필요 없는 많은 직함이 존재한다. 심지어 나도 외고를 쓰면서 ‘음식 평론가’로 ‘바이라인’을 부탁했지만 ‘미식 칼럼니스트’ 등으로 소개된 적이 종종 있었다. 음식 평론가가 부르지 못할 직함이라고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는지라 한편으로는 그 뒤에 깔린 현실에 언제나 의구심을 품어 왔다. 한마디로 ‘평론의 부재’ 같은 것 말이다. 평론 비슷한 걸 하지만 평론으로 규정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굳이 답해야 할 문제는 아닌 것 같으니 넘어가자(궁금하다면 이런 글을 이미 쓴 적이 있으니 확인하시라).

사진을 잘 찍어 주신 이상엽 사진가에게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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