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국밥과 미식대담, 빕 구르망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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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살 좀 써라. 하긴 살살 쓰면 네가 아니겠지.’

첫 해니까 신경을 좀 썼고 그에 맞춰 글도 몇 차례 올렸다. 미슐랭 가이드 말이다. 아, 정식 표기법은 ‘미쉐린’ 가이드라고 알고 있다. 물론 그게 지금 이 상황에서 정말 중요한 사안인지는 모르겠다. 별까지 헤아릴 필요도 없다. 미진이나 에머이 같은 프랜차이즈, 아니면 그보다도 못한 수준의 음식점을 떡허니 올려 놓는 ‘빕 구르망’만 봐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싶은 마음이 완전히 가셔버린다. 음식 가이드니까 음식에 관한 비유를 굳이 쓰자. 입맛이 싹 가셔버린다.

작년에는 이렇게까지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글을 읽어보시라. 목록에 오른 음식점을 하나하나씩 따지고 보면 말이 안 될 수도 있지만 그렇게 보면 끝이 없다고 그랬다. 믿거나 말거나 긍정적인 측면을 보고 싶었다. 그런데 올해는 그럴 수가 없다. 앞에서 언급한 저 두 곳도 그렇지만, 소위 손맛이나 전통의 이름으로 허름하다 못해 비위생적인 곳들의 이름이 올라있다. 음식의 기본적인 요소조차 무시하면서 소개할 가치가 있을 정도로 그런 곳들이 한식의 매력을 과연 발산할까? 놀라운 일이다. 푸근함 또는 편안함이나 위생의 부재를 혼동해가며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할 음식이 세계 과연 어디에 존재한다는 말인가.

그런 곳들의 존재가 광화문 국밥의 부재와 맞물려 한층 더 우습게 다가왔다. 사실 한참동안 고민했다. 2018년판 미슐랭 가이드의 발간 이전에도 그랬지만, 발간 이후에는 더더욱 생각을 많이 했다. 어차피 언젠가는 광화문 국밥에 대해서 한 번 쓰고 넘어가리라고 생각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단서를 달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난 그게 귀찮았다. 어떤 평가를 내리든지 개인적인 친분 또는 그 부재와 상관이 없다는 단서(‘disclaimer’라고 하면 될까?) 말이다. 그렇게 고민하던 중 빕 구르망에서의 부재가 마침내 나의 귀찮음을 이겨내 글 쓸 마음을 먹었을 때, 나는 우연히 아주 웃기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옥동식을 부정적으로 평가한 이유가 *비슷한(아님)* 음식을 내는 광화문 국밥을 ‘밀어주기’ 위해서라는 것.

너무나도 우연하게도 이런 이야기를 하필 광화문 국밥에서 들었고, 시끄러운 실내 덕분에 아주 마음 놓고 크게 웃었다. 너무나도 황당해서 말이다. 나는 상관없다. 그런데 굳이 내가 언제 무엇을 먹고 갔는지도 모르는 실무자가 이런 이야기를 들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대체 누가 무엇을 왜 궁금하게 여기는지 모르겠지만, 애초에 광화문 국밥에 대한 리뷰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려 했던 이야기부터 좀 해보자.

맞다, 박찬일 셰프는 ‘한식의 품격’에 추천사를 썼으며 출간 기념 행사이자 ‘미식대담’의 공개 녹음에도 출연했다. 그런데 사실은, 그 자리에서 나는 4년 만에 그를 처음 만났다. 말하자면 전작인 ‘외식의 품격’ 출간 이후 나는 그를 만난 적이 없고, 심지어 서로 연락을 주고 받지도 않았다. 이유가 뭐냐고? 그거야 말로 진정 개인적인 사안이고 나의 리뷰와 상관 없는 일이므로 그냥 넘어가자. 무엇보다 당사자들끼리조차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기 때문에라도 굳이 지금 늘어 놓을 필요가 없다. 실제로 그 행사 이후에도 개인적으로 만나지 않았으므로 사실 기회조차 없었다. 추천사에 대한 감사 인사마저 카드 및 서명본을 일터로 보내는 걸로 대신했다.

추천사? 그 또한 직업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진 일이다. 달리 말해, 내 입장에서는 글처럼 글을 썼다는 최소한의 믿음이 있기 때문에 몇 년의 세월 동안 왕래가 전혀 없었더라도 추천사를 부탁할 수 있다. 음식도 마찬가지다. 음식처럼 생각하고 만들며 먹는 나도 그렇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기꺼이 그런 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싶었던 것이다. 대부분의 이들이 이 인과관계를 정반대로 설정하거나 받아들인다. 개인적인 친분이 일단 있어야 그가 만들어 내는 무엇이라도 좋게 다가온다.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 음식이 좋기 때문에 사람에 대한 욕구, 관계에 대한 욕구가 생기는 것이다. 그들에게 배우고 싶으니까.

말하자면 나는 행사 이전에 광화문 국밥의 음식을 먹어보고, 그 판단 자체만으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는 판단을 내렸을 뿐이다. 내가 그동안 이탈리아 음식을 비롯한 그의 양식을 먹으면서 읽었던 접근 방식이나 의사결정이 드디어 한식에 손을 뻗었구나. 그래서 바로 ‘한식의 품격’에서 지적했던 사항들이 실제로 새로운 접근이나 시도를 통해 구현되어 현대화된 한식이 등장하고 있구나. 이야기를 들어보면 재미있겠다. 그리고 누구보다 내가 놀랄 정도로, 당시의 대담에서 예상을 훨씬 뛰어 넘는 내용이 나왔다. 그게 무엇이냐고? 여력이 된다면 일단 세 차례에 걸친 당시 대담의 기록을 들어보시라(위의 링크 참조). 그럴 수 없다면? 내일이나 모레쯤 들고 올 2편에서 다루겠다. 이런 이야기는 길게 써봐야 재미 없으니, 오늘은 일단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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