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과거와 팥빙수라는 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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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백화점 꼭대기에서 저녁을 먹고 바로 정면에 빙수 가게가 보이기에 발을 들였다. 멀리 움직이지 않은 상태에서 입을 가시고 싶었다. 그게 백화점이나 쇼핑몰 같은 공간에서 제시하는 푸드코트의 장점 아니겠는가. 그러나 빙수를 먹고 입을 가시기는커녕, 한층 더한 텁텁함으로 입과 혀를 덮었다. 팥은 뜯어보면 분명히 단맛이 두드러지는데 뭉툭하고, 그 아래 깔린 빙수는 우유라고 보기 어려운 흰 액체를 얼린 것인데 온도의 탓도 있겠지만 거의 아무런 맛이 나지 않았다. 소금간 같은 건 바라지도 않지만 팥과 함께 먹을 경우 어떠한 맛을 함께 내는지 전혀 고려하지 않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게 전부였다. 팥과 빙수. 정말 이름에 너무나도 충실하도록 단 두 가지 요소만으로 이루어진 음식인데 그 두 가지가 따로 또 같이 맛이 없다. 뭐 그런 예야 비일비재하니 딱히 놀랄 것도 없지만, 난 무엇보다 정말 팥과 빙수만 남기고 모든 요소를 걷어내기로 한 의사결정이 대체 어느 말도 안되는 시대를 레퍼런스 삼아 이루어졌는지 그게 궁금했다. 정말 고급스러운 놋그릇에 팥과 간 얼음만 담아낸 설정이 팥빙수라는 이름으로 과거의 어느 시점에 정녕 존재했을까. ‘내가 먹은 건 이랬는데’는 딱히 의미가 없다고 보니 아예 얘기도 꺼내지 않겠다. 다만 한국이라는 사회의 여건을 생각해 보면 이런 식의 설정이 정말로 존재했는지 믿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나는 이런 팥빙수가 일종의 가짜 과거이자 퇴보라고 의심한다. 기본적으로 팥과 얼음의 조합 자체부터가 의심스럽지만 이런 종류의 디저트를 존재 가능케 만드는 핵심 요소, 즉 냉동냉장과 설탕의 존재만 놓고 보아도 딱히 믿음이 가지 않는다. 둘 다 잉여의 수준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단맛의 즉석 제조 냉장 냉동 디저트가 존재할 수 있다. 한국의 근-현대화를 감안하면 과연 어느 시대가 그랬을까? 상황이 이러므로 나는 냉동냉장을 빼더라도, 설탕을 제대로 쓰지 못하던 시대의 맛을 ‘긍정적인 옛맛’으로 포장하는 단맛 음식을 경계한다. 설탕을 쓴 것에 비해 단맛이 좋지도 않을 뿐더러, 귀했다면 원활하게 쓰는 방법도 익혔을리 만무하다. 특히 설탕의 물성과 수분 등의 관계 말이다.

그럼 현재는 설탕을 원활하게 쓴 음식을 만들어 먹고 있나? 정확하게 그렇다고 보기 어렵다. 대량생산 식품류는 이제 대체 당류의 사용으로 넘어가는 단계인데다가, 심지어 가정이나 개인 제과제빵 생산자조차 설탕과 단맛을 제대로 쓴다고 보기 어렵다. 그래서 정확하게 시대를 가늠하기 어려운, 마치 평행우주에서 존재하는 듯한 과거를 참고해 내놓는 복고풍 음식을 경계한다. 추억의 호도과자니 단팥빵이니 하는 것들도 전부 마찬가지다. 기계가 없어서 인간이 더 착취 당했을 게 뻔한 시절이 왜 그리운가? 기본적으로 한국에는 ‘돌아갈 좋은 시절’이 없다. 따라서 설사 실존하는 시절을 소환하더라도 딱히 얻을 게 없다고 본다. 그런데 대체 역사물에서나 배경으로 쓰일 법한 시대라면? 답이 없다. 정체불명의 보호막을 쳐 놓고 뒤로 숨어 들어가는 느낌이랄까. 옥동식의 곰탕도 그렇고, 놋그릇이 무슨 맛이나 정성, 또는 시대의 충실한 재현 등등을 담보해주는 열쇠가 아니다.

*사족: 믿거나 말거나 그릇 가장자리의 빙수는 내가 흘린 게 아니다. 저 상태로 나왔다. 과연 저런 그릇에 봉긋하게 빙수를 담아내야 할 이유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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