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슬픔을 안겨주는 음식

IMG_9233맛있는 음식이 기쁨만을 안겨주고, 맛없는 음식이 슬픔만을 안겨주지 않는다. 그 반대인 경우도 많다. 맛있지만 슬프고 맛없지만 기쁘다. 또한 각 감정의 결은 맛있음과 맛없음의 얼개나 정도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정말 슬픈 음식도, 그야말로 ‘비웃기는’ 음식도 있다. 요즘 먹었던 음식들 가운데 유난히 곱씹는 것들을 떠올리다가 몇 가지 유형을 생각해보았다. 슬픔을 안겨주는 음식 말이다.

1. 사람 닳은 흔적이 너무 나는 음식

주로 가정식의 연장선 위에 있는 식당 음식이다. ‘밥집’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고 표현하면 더 정확하겠다. 다들 ‘손맛’이라 규정할텐데, 나에게는 일종의 극한적 기술의 맛으로 다가온다. 사람이 닳아가면서, 닳을 때까지 시행착오를 겪으며 재료든 기기든 도구든 열악한 상황을 극복하면서 감각적으로 맛있다는 느낌을 바로 전달하는 요령을 담은 음식이다. 선유도나 영등포 등지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5,000원짜리 “가정식” 백반 파는 밥집들이 대체로 여기에 속한다. 맛이 없어도 슬프지만 맛이 있으면 더 슬퍼진다.

굳이 특정 음식점을 꼽자면 영등포구청역 먹자 골목의 은성감자탕이 있다. 리뷰를 쓴 적이 있으니 굳이 맛에 대해 두 번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감자탕이 맛있지만 안 간지 오래 됐고 굳이 가고 싶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여름이라 좁은 곳에서 뜨거운 음식을 먹고 싶지 않기도 하지만 운영되는 방식을 보면 슬퍼져 잘 안 먹힌다. 누군가는 어쨌든 맛있게 먹으면 음식의 의미가 빛나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할 수 있다. 틀린 말은 아니고 대체로 맞는데 맞지 않을 때가 있다.

2. 최선이 최선이 아닌 티가 나는 음식

어딘가에 쏟아붓는 나의 최선이 최선이 아니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건축을 공부하고 실무까지 하는 15년의 기간 동안(군복무 공백 포함) 늘 생각했다. 나는 이걸 너무나도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붙잡고 있을 수만은 없다. 어떤 분야는 그럴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아닌 분야도 분명히 있다. 나는 음식도 후자의 범주에 속한다고 본다. 재능과 노력의 관계를 놓고 모두가 고민하고 나도 예외는 아니지만 이제는 그렇게 밖에 생각할 수가 없어졌다. 노력으로 재능을 극복할 수는 없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했는데 종종 만나는 음식이 있다. 만드는 이가 최선을 다한 것 같은데 먹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공감할 수 없는 음식이다. 이것은 참으로 인간적인 차원의 실수 또는 단발성의 시행착오와 전혀 다르다. 이를테면 조리 자체에 딱히 결함이 있는 것 같지 않지만 개념적으로는 도저히 말이 안되는 음식도 여기에 속한다. 아니면 원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구현을 못하고, 스스로도 그걸 모르지 않기 때문에 결국 변죽만 울려대는 음식도 있다. 좋은 재료를 쓰고 식기를 고급으로 바꾼다. 그렇지만 맛이 나아지거나 음식의 근본적인 한계 등이 극복되지는 않고, 만드는 이도 그걸 알지만 어쩔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쪽으로 돌아간다. 사고의 산물이어야 할 영역의 음식인데 기능의 영역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로 접근한다.

첫 번째 유형의 음식을 만나고 굉장히 슬프지만 나는 이 유형의 음식에 더 큰 슬픔을 느낀다. 대개 비싼 음식, 즉 파인 다이닝에 이런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손에 다 꼽지 못할 요소를 생각해가며 내 앞에 놓인 음식을 스스로 이해 혹은 공감, 그것도 아니라면 정당화해보려 해도 그 많은 요소들을 구불구불 돌고 돌아 결국 사람에게 원인이 향해 꽂힌다. 무엇을 어떻게 해도 이것이 최선이지만 최선이 아니며 더 이상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세상에 그보다 더 슬픈 일이 없는데 그 노력의 대상이 음식이라면 그건 정말 비극이다. 이런 음식을 자주 만나는 건 아닌데 한 번 먹고 오면 그 여파가 진짜 오래 간다. 그래서 참담하다고 말했는데 악의 따위를 들먹이면 그게 진정 악의겠지만.

3. 마음으로 밖에 먹을 수 없는 음식

자세한 설명은 마음이 아파서 생략. 입으로 계속 먹지만 안 먹었으면 좋겠고 의식하지 않으려 계속 말을 하거나 다른 생각을 하지만 만든 사람의 사고 과정이 손에 담은 모래처럼 줄줄 새어 나가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음식. 하고 싶은 말이 더 있지만 일단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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