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 구청]은성 감자탕-절묘한 좌표의 감자탕

img_6384이글루스 시절 로버트 파커의 예를 들며 ‘평론가의 역할은 발굴’이라고 나에 대한 못마땅함을 적극 피력하는 분이 계셨다. 가끔 곱씹으면서 웃는다. ‘음’과 ‘식’, 더 나아가 포장되어 운송이 가능하고 한두 모금만 마시고도 평가가 가능한 와인과 일반 음식의 차이조차 근본적으로, 그렇게 먹으러 다니면서도 이해를 못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나마 ‘평론가’라고 일컫는 건 감사해야 할 일일까. 혹시 이제 비행기 더 못 탄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파커가 와인 세계에 미친 영향은 알고 계신 걸까.

굳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이 감자탕집 조차 내가 ‘발굴’한 것은 아님을 밝히기 위해서다. 잠 안 오는 밤 평소처럼 타임라인을 헤치고 돌아다니다가 이야기를 들었고, 마침 근처라 가보았을 뿐이다. 영등포 구청 4번 출구 뒷골목 어딘가에 있다.

한국 국물 음식의 문제는 무엇인가. 그냥 한 마디로 가식이다. 열 에너지의 전달, 맛의 응집이나 아우름 등등 국물 음식의 본질적인 역할을 제대로 못한다. 그저 결핍을 가리기 위해 존재한다. 그리고 뜨겁다. 또한 대부분의 경우 맵다. 감자탕만 해도 그렇다. 삶은 등뼈와 국물을 큰 냄비에 담아 식탁에서 펄펄 끓이지만 살을 잘 발라내 먹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간은 배어있지 않다. 뻘건 국물이 펄펄 끓지만 실제로 뼈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 어차피 따로 존재하고, 식탁에서만 체면치레격으로 공존한다. 돼지 등뼈는 물론이고 족, 갈비 등 국물에서 오래 끓여야 할 식재료가 완전히 분해되지 않고 식탁에 오르는 경우가 많다. 살이 발리지만 뼈에서 떨어지거나 부스러지지 않는 중간지점 찾기가 귀찮기 때문이라고 이해한다.

이 감자탕(소 23,000원)은 그렇지 않다. 이미 완성된 상태로 식탁에 오른다. 온도를 한 번 올린 다음에는 불을 끄고 먹어도 될 정도다. 뼈에 살이 붙어 있지만 속속들이 깨끗하게 발라 먹을 수 있으며, 그런 가운데 간도 잘 맞는다. 국물이 아예 없더라도 먹을 수 있으니 탕이나 찌개보다 사실 잘 만든 조림에 더 가깝다. 한식은 대개 통각인 매운맛이 혀를 일차적으로 자극하므로 간이 안 맞는 경우가 허다한데, 아주 살짝 짠 편-일반적인 한국음식 치고-이지만 잡맛이 없고 깨끗한 편이다. 다 먹고 난 뒤에도 불쾌한 여운이 적다. 말하자면 여러 좌표를 능수능란하고 절묘하게 최적 지점에 모아 놓은 음식이다. 나이 많은 여성이 조리를 맡으므로 조건반사적으로 ‘손맛’이라 퉁치기 쉽지만 찬찬히 뜯어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아 보인다. 기술과 계산이 깃든 음식이고, 이는 들깨가루, 깻잎 등의 가릴 수 있는 재료를 철저히 배제하고 유일하게 쓴 부추만 봐도 알 수 있다.

사진이 어딘가 이상해 보인다면 맞다. 각이 안 나오는 여건의 공간이다. 이 글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이곳으로 이끌지 모르겠지만(의식해본 적이 없다. 맛집 블로거도 아니고), 채 20석이 안 되는 불편한 공간임은 염두에 둬야 한다. 그래서 이런 음식, 즉 가뭄에 콩나게 균형이 잘 맞는 한국 음식을 먹으면 음식 너머에 대해 생각한다. 밀면 포스팅에서 언급한 것처럼 과연 누군가가 현대적인 여건에서 이런 음식을 업그레이드-재창조 할 수 있을까. 좀 더 편안한 공간에서 맛을 다듬은 음식을 먹을 수 있느냐는 말이다.

감자탕은 훌륭하지만 그걸 굳이 김치나 생 양파, 입에 불 붙는 고추, 쌈장 등과 곁들여 먹을 이유는 없다. 불에 불을 더하는 격이니까. 과연 이런 음식의 균형을 어떤 맛과 재료의 반찬이 맞춰줄 수 있을까? 또한 이런 음식을 파인 다이닝의 좌표에 놓으려면 어떤 ‘세팅’을 거쳐야 할까? 펄펄 끓는 뚝배기에 1인분씩 담아내면 될까? 국물은 대체 얼마나 많이 담아 내면 될까? 양식에서는 스튜에 레몬껍질과 파슬리를 다진 그레몰라타 등을 얹어 오래 끓인 음식 맛의 닳은 모퉁이를 보충해 주는데, 과연 감자탕이라면 고명에 어떻게 접근할 수 있을까? 홍득기의 요리책 <코리아타운>에 실린 인터뷰에서 데이비드 장은 ‘한국 음식은 원래 투박 rustic 하다’고 주장하는데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아직 그 단계까지 아무도 고민해보지 않았다. 미슐랭의 시대가 한 달 앞으로 다가왔으니 이제 누군가는 고민하고 있으리라 믿고 싶다.

 

1 Comment

  • 번사이드 says:

    누가 고민하고 이끌 수 있을 것 같지않은데요.. 잘 만든 감자탕을 처음 봅니다.. 나이 든 사람이든 젊은 사람이든 잘 만든 음식을 평소에 자주 먹어봐야하는데… 대도시에선 ‘팔리는’ 음식만 내놓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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