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러멜 팝콘 아이스크림과 맛의 시각화

IMG_3247사진첩을 뒤적이다가 캐러멜 팝콘 아이스크림 홍보 입간판(?)를 발견했다. 아직도 유행이려나. ‘귤이 회수를 건너니 탱자가 되었다’라는 문구는 이제 클리셰 가운데서도 끝판왕 수준이니 써먹는 재미가 전혀 없지만, 이런 상황이라면 외면하고 한 번쯤 휘둘러봐도 괜찮다는 생각이다. 미국에서 유행하던 캐러멜 팝콘 아이스크림이란 정확하게 이런 형식이 아니었다. 그건 이미 존재해온 것 아닌가. 아이스크림에 팝콘을 물리적으로 합치는 건 전혀 새롭지 않다. 핵심은 우려내기(infusion). 캐러멜 팝콘을 액체인 아이스크림 베이스에 우려낸다. 맛과 향이 충분히 스며들면 팝콘은 건져 버리고 베이스만 돌려 아이스크림을 만든다. 조금 넉넉하게 잡아 8-10년 전에 이런 논리가 새로운 시도를 선보인다는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을 중심으로 퍼져 나갔다. <모모푸쿠>의 콘 푸로스트 푸딩처럼 디저트 울타리 안에 머무는 것도 있지만, 벗어나 파괴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테일러’의 샘 메이슨이 선보였던 양지 아이스크림이다. 사실 엄청나지도 않다. 바로 그 양지머리를 아이스크림 베이스에 우려낸다. 그리고 건져내 버리고 아이스크림을 돌린다.

이러한 우려내기의 논리가 바다를 건너오면서 사라진다. 이유는 두 갈래다. 첫 번째는 당연히 실행의 문제다. 팝콘을 베이스에 우려내는 과정 하나만으로 전체가 훨씬 복잡해진다. 위탁 및 대량생산의 상황을 감안한다면 그런 음식이 존재한다고 쳐도 아무도 시도하지 않을 것이다. 파는 베이스를 기계에 돌리고 파는 팝콘을 사다 튀겨 둘을 합쳐도 그만인데 굳이 둘을 눈에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합쳐야 할 이유가 없다.

두 번째 이유가 바로 그 눈에 보이는 방식, 즉 시각성이다. ‘캐러멜 팝콘 아이스크림’이라면 직관적으로 캐러멜과 아이스크림을 합친 음식이어야 한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아무도 믿지 않는다. 설사 그것이 경험으로서 맛의 논리를 잘 만족시키지 않는 상황이라도 개의치 않는다. 생각해보라. 팝콘과 아이스크림의 물리적 결합은 바람직한 조합이 아니다. 쿠키처럼 조밀한 덩어리로 뭉친 탄수화물이라면 모를까, 개별 팝콘 알갱이는 아이스크림에 파묻혀 금방 눅눅해진다. 바삭하게 먹으려고 굳이 튀기는 팝콘을 다시 눅눅하게 만들다니 전 지구적 손해 아닐까. 어차피 모르니까 상관이 없다.

시각이 압도적인 감각이라는 건 재론의 여지가 없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라는 또 다른 클리셰도 있다. 하지만 음식의 모든 미덕이 가장 직관적인 시각적 요소로 표현될 수 있는 건 아니다. 맛 경험의 80% 이상을 차지한다는 후각은, 당연히 후각이므로 시각적으로 감지할 수가 없다. 따라서 지방 등을 더해 켜를 만들고 그 사이사이를 채워 넣는 방식으로 구현한다. 영어를 빌자면 ‘built/embedded/layered’된 맛이다. 눈으로 보이는 것에 비해 더 복잡 다양한 맛을 선사해 극적인 효과도 꾀할 수 있다.

한식, 또는 크게 보아 식문화 전반에서 후각적 요소가 눈에 띄게 떨어지는 이유는, 맛의 가치를 품는 모든 요소가 시각적으로 구현되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 또는 불신이 작용한 결과라고 본다. 내 눈으로 보지 않으면 믿지 못하는 것이다. 굳이 가사상태의 생선이라도 수족관에서 목숨이 붙은 것을 잡아야 하는 활어회나, 쌀을 바꿔치기할까봐 지켜 보고 있어야 하는 방앗간의 현실과 관련이 있다. 국물의 문화는 또 어떤가. 파, 마늘 등등 국물에 맛을 불어 넣기 위한 재료는 일정 수준 끓이고 나면 먹을 수 없을 정도로 흐물거린다. 하지만 걸러 깨끗한 국물만 내는 음식점은 드물다. 그냥 모든 것을 한꺼번에 끓여버린다. 순서와 시차를 정해 쌓으면 입체적일 수 있는 맛의 조형이, 무차별적 동일화로 인해 납작해진다. 그렇다, 한국 식문화는 납작한 맛 투성이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불신은, 요즘 종종 언급하고 있는 (특히 심리적인) 가난에서 비롯되었다는 생각이다. ‘맛있게=배불리’로 통하는 현실이다. 아주 극단적인 예를 들어보자. 최고급 해산물 일절을 가장 잘 먹을 수 있는 요리법은 무엇인가. 요즘 한식의 식문화라면 그 모든 것을 전시하듯 커다란 솥에 쪄서 낼 것이다. 양념도 하지 않아서, 살을 발라 직접 간을 해먹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다른 방법도 존재한다. 모두, 또는 거의 전부를 (재료의 특성 별로 분류해)푹 끓여 맛을 한데 어우러지게 한 다음, 농축시켜 한두 국자의 정수를 우려낸다. 거기에 마지막으로 좋은 것들 가운데서도 가장 좋은 해산물을 마지막에 더해 살짝 익혀 신선함을 다시 더한다. 한약/전통차 분야에서는 이런 방법론이 아직도 존재한다. 하지만 왜 음식은 그런 방향으로 가지 못하고 있는 걸까?

1 Comment

  • 자거스 says:

    시각적 구현 강박증은 국물음식에도 심하게 나타나죠.
    일식우동같은 건 일본에서 멸치와 디포리,다시마 등을 잘 우려내어 표면에 간단한 고명을 선택하게 하는 시스템인데, 우리나라는 국물에 이것저것 재료가 다 올라가 있어야 팔리는 현실이죠.. 국물은 시판간장으로 적당히 국물내거나 조미료 팍팍이니, 의미없는 수준이 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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