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교동] 진진-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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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진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때, 나는 이 식당이 벌써 문을 열고 성업중 인줄로만 알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온갖 블로그는 물론, 심지어 주요 일간지에서조차 극찬하는 기사를 쓸 리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웬걸, 그런 글을 읽고 ‘오, 가봐야 되겠군’이라고 생각한 그 날이 바로 개업일이었다. 대체 문도 열기 전의 이 엄청한 입소문 (굳이 영단어를 들먹이자면 ‘blurb’ 과 ‘hype’는) 무엇이란 말인가? 궁금함을 금할 수 없었다. 만약 정말 이 정도의 입소문에 맞는 수준이라면 진지하게 다뤄야 할 거라는 생각에 어딘가에 콘텐츠 제안도 했다.

그리하여 비교적 수월했던 예약을 거쳐 두 명의 일행과 처음 진진의 식탁에 앉았을때, 첫 인상은 굉장히 큰 의구심이었다. 쇼윈도우에 크게 붙여 놓은 현수막의 ‘중국 전통 만찬 요리 전문점’ , ‘일반 중식당 메뉴인 짜장, 짬뽕, 우동은 내지 않습니다’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먹을 게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이것저것 다 합쳐봐야 열 가지 남짓한 메뉴. 물론 같은 현수막이 ‘엄선한 요리 10여 가지만 냅니다’라고 미리 한 자락 깔아놓고는 있다. ‘선택과 집중’을 하겠다는 이야기인데, 이 말 또한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는 그 선택과 집중마저도 손님에게 좋은 음식을 내겠다기보다, 가급적 조리가 쉬운 쪽으로 기울었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주문과 동시에 손님의 배꼽 타이머가 돌아가기 시작하므로, 음식을 최대한 빨리 내기 위해 식종 불문, 식당은 가조리 (parcook)을 전략적으로 활용한다. 재료를 미리 손질하는 것은 물론, 일부 부분적으로 익혀 최종 조리 시간을 줄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이 모두 조리의 편의에만 집중하는 건 아니다. 조림이나 찜 등, 습열을 이용해 완만히 조리하는 음식은 그 준비 과정 자체가 맛의 켜를 미리 입히는 과정이다. 중식에도 당연히 그러한 조리 과정을 통해 맛을 내는 고급 음식이 많은데 (불도장 한 그릇 어떠신가?), 메뉴에는 그런 종류는 하나도 없었다. 그저 튀김, 볶음 위주로 전형적인 중식의 순간 조리 (flash cooking) 위주로 흔한 팔보채, 깐풍기 등이 핵심이었다. 또한 그렇게 완만히 조리해 깊은 맛을 내는 중식이 말린 전복이나 해삼 등 저장 재료를 쓴다는 걸 감안할때, 현수막의 또 다른 소개 문구 ‘제철 재료를 쓴다’는 설득력이 전혀 없다. 아니, 마파두부에 제철 재료 개념이 필요한가? 제철에 나는 생콩으로 직접 두부라도 만들어 쓴단 말인가? 오향장육은 어떤가? 봄 돼지와 가을 돼지를 구분해서 쓴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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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뭘 팔든 맛있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닌가? 첫 번째 방문에서 세 사람이 깐풍기와 팔보채를 시켰다. 양이 많은 편은 아닌데, 팔보채(비회원가 38,000원-그렇다, 회원제가 존재한다. 언급은 생략.)에서 공통적으로 ‘그만 먹자’는 의견을 냈다. 일단, 조리는 딱히 흠 잡을 곳이 없었다. 깐풍기(17,000원)는 바삭하게 튀겼고, 팔보채의 해물은 물론 가격을 감안하면 그저 합당한 수준이지만 생물을 써 질긴 구석이 전혀 없이 부드러웠다. 그러나 거기에서 끝이라는 게 문제였다. 물론 언제나 모호하게 겹치는 중간 지대가 존재하지만, 음식을 완성도와 취향의 영역으로 나눠 평가할 수 있다고 전제한다. 그 두 영역 가운데 조리 자체는 분명 수준을 갖추었지만, 맛내기의 영역에서는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마치 기계가 조리한 음식이랄까? 두 음식에서 공통적으로 매운맛이 비교적 큰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사실 그마저도 소극적이었고, 그 뒤엔 아무 것도 없었다. 심지어 기본 간이라는 것도 없었으며, 요리사가 아닌 셰프의 영역이라 비로소 일컬을 수 있는 승화의 맛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닭을 튀긴 맛, 해물을 볶은 맛, 끝. 센 불과 튀김과 볶음을 쓰는 중식이 이처럼 무색 투명한 맛을 내는 경우는 처음이었고, 그건 당연히 긍정적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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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궁금했다. 이곳엔 셰프 아닌 요리사만이 존재하는 것일까? 약 보름 후 다시 찾아갔을때, 그제서야 알 수 있었다. 완성도로 덮으려 드는 이 한없이 무색 투명한 맛이 바로 셰프의 정확한 통제의 결과일 것이라고. 손에 꼽을 수 있는 메뉴 가운데 가장 농담에 가까운 대게살 볶음(20,000원)은 많지 않은 양을 다 먹을 때쯤 식어 끈적한 전분과 라유로 수렴한다. 양대 식사 메뉴 가운데 하나인 XO 소스 볶음밥 (7,000원) 또한 잘 볶았으되, 앞에서 매운 맛이 잠깐 치고 올라온 뒤 아무런 여운도 남기지 않고 사라진다. 뭔가 엄청난 옛 중식이라도 되는 대접을 받는 멘보샤(18,000원)는 그나마 튀긴 빵과 새우 이상의 맛을 낸다 싶었는데, 곰곰이 뜯어보면 그건 분명 대량생산 식빵 자체가 지니고 있는, 산업적으로 복잡한 맛 덕분이었다. 그걸 들어내면 이건 그저 좀 덜 눌러 기름이 배어 나오는 식빵과 다진 새우살일 뿐이었다. (멘보샤에 대해 첨언하자면, 마포 외백이나 을지로 오구반점 등, 이걸 특선 메뉴 비슷하게 내놓는 곳 모두 새우 자체에 간이 별로 안 되어 있다. 미리 다져 준비하므로 소금간을 하면 수분이 빠져 나올까봐 그러는 것일까? 만일 주문을 받고 다진다면 소금간을 더 못할 이유는 무엇인가? 손님의 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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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글에 쓰려다가 지면이 넘쳐 들어내야 했던 대목을 빌려와보자.  <오무라이스 잼잼> 5권에서 만화가 조경규는 북경 오리를 예로 들어 ‘재료 본연의 맛’이라는 표현에 의문을 제기한다. 북경 오리는 껍질에 바람을 불어 넣은 오리에 맥아엿을 발라 며칠 말렸다가 구워 만든다. 이 지난한 과정이 오리라는 재료를 승화시킨다. 1+1=2가 아닌 3 혹은 그 이상을 내는 과정이 진정한 요리이며 요리사 아닌 셰프의 손과 머리에서 만들어낼 수 있는 맛이다. 물론 진진이 북경 오리를 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수많은 중식 요리 가운데 그러한 요리가 많을 텐데, 이곳에는 그런 게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남은 메뉴 또한 그런 맛의 실마리조차 보이지 않고, 그게 바로 정확하게 셰프가 가진 능력의 산물이다. 너무나도 잘 알기에  ‘이만큼이면 되겠지’라고 점칠 수 있는 능력, 그래서 그 ‘이만큼’을 그저 잘 볶고 잘 튀긴 정도의, 완성도로 뒤덮는 능력. 이 놀라운 능력의 끝에 이름과 공간이, 또 조리가 존재하지만 요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진진의 음식은 셰프와 안면이 전혀 없는 사람이 갈때 목란에서 내는 음식을 그저 좀 더 좋은 재료로 만든 수준이다. 말하자면 ‘왕이 돌아왔네’  등등으로 호들갑을 떨어댈 정도로 그 존재를 인식해야만 하는 셰프가, 긍정적인 의미에서 낼 수 있는 음식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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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께 올린 글로 돌아가보자. 왜 나는 굳이 산왕반점에 대해 언급했는가. 이곳에서 실망스러운 1차를 마치고, 일행은 산왕반점에서 예기치 않은 2차를 먹었다. 모두가 초행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이곳의 음식도 빼어남과는 거리가 있다. 하지만 분명한 차이가 존재했다. 두 곳 모두 맛을 계획하는 이가 자신의 능력을 정확하게 알고 있다면, 진진은 그렇기 때문에 적당히 내고 산왕반점은 자기 능력만큼 낸다. 제대로 음식을 한다면, 원래 두 곳은 이래저래 비교해야 할 맥락에 놓을 이유가 없다. 하지만 그렇다.

또한 그 글에서 추상적인 맛의 개념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잘 튀기면 맛있을 수 있다. 또한 잘 볶으면 맛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엄청난 명성을 가졌다고들 말하는 셰프의 음식에서는 그저 무한히 기본에 지나지 않는다. 그건 당연히 충족시켜 준 다음, 추상적인 맛내기에 대해서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아무도 그러지 않는다. 물론 일주일에 한 번 가족 외식으로 이런 곳에 가까스로 예약해 한 자리 얻는 필부와 그 일행에게는 그런 측면에 대해 굳이 생각해야 할 의무가 없다. 잘 튀겼으면 맛있고, 잘 볶았으면 맛있다. 하지만 이것으로 자기의 콘텐츠, 더 나아가 자기의 밥벌이를 만드는 사람이 의도든 아니든 그러한 측면을 간과한다면 그건 여러 차원에서 문제다. 돈을 받지 않을 확률이 99.99%인 가오픈 자리에 앉아 먹고 쓴 소감이 만약 ‘자차이마저 맛있는 집’이라면 거기에서 대체 무엇을 읽어야 하느냔 말이다. 대체 전문가라는 게 존재는 하는지 그걸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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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마지막. 이 맥주잔이 진진이 취하는 총체적 엉거주춤을 잘 말해준다. 분명 다른 중국집, 또는 중식당과 차별을 두기 위해 이런 잔을 내놓을 것이다. 하지만 딱히 편하지도 않고, 또한 한 번은 상온도 아닌 미지근하게 나와 맥주의 맛을 떨어뜨렸다. 진진은 이런 곳이다. 아, 그리고 구색을 맞춘다고 갖춘 (화이트) 와인이 신대륙 소비뇽 블랑과 샤르도네이다. 볶고 튀긴 중식, 또한 이곳처럼 의도든 아니든 매운맛만 제 목소리를 간신히 내는 음식과 소비뇽 블랑이나 샤르도네이는 좋은 궁합이 아니다. 그 둘이 정말 음식과 궁합을 진지하게 감안한 결과인가? 여기가, 그런 곳이다. 이 정도로 ‘핫’한 곳이라면 세 번은 가보고 판단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너무나도 극명하게 드러나는 투명함에 질려 두 번으로 마무리지었다. 글쎄, 다시 가게 될 일이 있을까.

사족: 적당한 맥락을 못 찾아서 따로 언급하자면, 예약을 포함한 응대는 굉장히 좋았다. 높이 산다.

 

1 Response

  1. 10/11/2016

    […] 사람의 솜씨-또는 그가 짜놓은 얼개-라는 생각이 안 들었다는 말이다. 예전 진진 리뷰에서 언급한 것처럼, 어디에서나 또는 근처의 이름 모를 사람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