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의 이해(21)-음식과 시각 매체, 사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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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 폰 너머에 도사리고 있는 것들

아무 일도 또 생각도 하기 싫을 때면 소파에 누워 아이패드를 펼쳐 든다. 그리고 트위터를 들여다본다. 멘션이든 뉴스 링크든 동영상이든 고양이 사진이든 그저 되는 대로 들춰본다. 그러는 가운데 종종 눈에 들어오는 ‘짤방’이 있다. 거의 20년 전에 세상을 떠난 화가이자 그림 쇼 호스트 밥 로스다. <그림을 그립시다>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그의 쇼는 특유의 빠른 붓질 속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운 풍경 때문에 세계 각국으로 퍼져 큰 인기를 끌었다(편한 유지관리를 위해 ‘볶은’ 머리모양의 영향도 무시 못하겠지만). 쓱쓱, 척척. 대략 3~4분이면 그림 한 편이 완성된다. 그걸 앞에 놓고 그는 활짝 웃는다. ‘참 쉽죠?’ 하지만 그의 이미지는 오늘날 반어적으로 쓰인다. 그렇게 그리기가 쉽지 않다는 걸 누구나 알기 때문이다.

그의 ‘참 쉽죠’ 이미지 바로 다음으로 눈에 들어오는 게 있다. 바로 ‘위꼴사’다. ‘위가 꼴리는 사진’의 앞 글자를 따왔으니 속어로 옮긴 ‘푸드 폰(Food Porn)’의 한국어 표현쯤 된다. 영국의 페미니스트 비평가 로잘린드 카워드(Rosalind Coward)가 1984년 저서 <여성의 욕망>에서 ‘푸드 포르노그래피’라는 용어를 처음 썼다. 치즈가 녹아 윤기가 반지르르한 피자부터 건축적 조형미가 두드러지는 현대요리, 알록달록한 마카롱이며 컵케이크까지. 무겁고 느끼하다고? 걱정 마시라. 신선한 과일이나 채소 등의, 건강식이라 믿는 종류의 이미지도 있다. 미국으로 건너가 ‘푸드 폰’은 주로 번들거리는 지방의 무거운 음식을 일컫는 용어로 자리 잡았지만 취향이 다양하니 이젠 두루 써도 상관없다. 트위터만 놓고 봐도 국내외를 넘나들며 다양한 계정이 전 지구인의 취향을 만족시킬 수 있을 법한 이미지를 퍼와 쏟아낸다. 그야말로 안 먹어도 배가 부르다.

밥 로스의 미소와 위꼴사를 병치시켜놓고 생각해보자. 사람들은 이미 전자를 역설적으로 사용한다고 했다. ‘참 쉽죠’라고 말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의미다. 표면적인 이유는 대기가 그야말로 참 쉽다. 기술이다. 그는 기술을 갈고 닦았기 때문에 그렇게 쉽게 그릴 수 있다. 설사 그림에 대한 이해가 없더라도 그가 보여주는 지나친 수월함이 기술 축적의 산물이라는 것쯤은 직관적으로 감지할 수 있다. 출처가 안 달린 위키피디아의 내용이라 곧이곧대로 믿기는 다소 어렵지만, 밥 로스는 20년 동안의 군복무 초기에 휴식 시간을 쪼개 그림을 그리고자 쇼에서 선보인 빨리 그리기 기술을 갈고 닦기 시작했다고 한다. 쉽게 그릴 수 없다면 오히려 더 이상하다.

그렇다면 온 인터넷에 넘쳐나는 위꼴사를 보고, 사람들은 그림처럼 뒤에 도사리고 있는 요소를 읽어낼 수 있을까. 감지 여부를 따지기 전에 ‘음식에 그래야 할 필요가 있느냐?’라는 반문부터 따라붙을 것이다. 물론이다. 당연히 그래야 할 필요가 있다. 기본적인 이해가 없다면 음식의 본질을 헤아리기 어렵고 이는 먹는 이의 손실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특히 양식의 경우 딸리는 이해가 고스란히 신기함으로 치환되어 평가를 방해한다. ‘내가 모르는 거라 신기하고 그래서 맛있다’는 헐거운 삼단 논법을 거쳐 인터넷 맛집 자리에 오른 레스토랑이 어디 한두 군데던가.

물론, 모든 사람이 평론가처럼 조리의 과학적 원리와 미식사를 꿰뚫어야 한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한 번의 레스토랑 행차마다 작은 요소 한두 가지만 추가해도 지평은 현저하게 넓어진다. 이를테면 밥 로스가 물감이 채 마르기 전에 덧칠하는 ‘웻-온-웻(Wet-on-wet, 또는 이탈리아어로 ‘첫 번째 시도’라는 뜻의 알라 프리마 Alla Prima)’ 기법을 쓴다는 것만 알아도 빠른 속도와 특유의 화풍을 더 잘 이해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비슷한 경우를 양식에서 찾는다면? 5월호의 수플레를 다시 예로 들어보자. 거품 낸 계란 흰자가 재료라는 것만 알아도 부풀어 올라야 제 맛이며, 따라서 다른 디저트와 달리 오븐에서 꺼내 바로 가져와 더 뜨겁다는 것도 짐작 가능하다. 물론 다다익선이니 이름이 ‘부풀리다’라는 프랑스어 ‘souffler’에서 왔다는 문화적 배경이나, 거품기로 흰자를 저으면 단백질 구조가 변해 형체가 잡힌다는 과학적 배경도 알면 더 좋다. 다만 피곤하게 우겨 넣느라 먹기도 전에 지칠 필요는 없다.

요즘은 더 적극적인 행위의 주체, 즉 만들어 먹는 사람을 위한 이미지도 넘쳐난다. <킨포크 테이블>이 대표하는 이 부류는 라이프스타일에 통합된 음식을 보여준다. 한마디로 ‘음식 만드는 건 어렵지도 않으면서 삶의 그림을 바로 이 사진처럼 몇 층 더 좋아 보이게 해준다’는 분위기를 풍긴다. 화려하지 않아도 나름 개성은 갖춘 이쪽의 문제는 기술 이전에 자원(resource)과 그 시스템이다. <킨포크>의 레시피가 간단한 건 사실이다. 재료도 웬만하면 다 구할 수 있다. 하지만 엄청난 시행착오를 거치지 않고서는 그 ‘웬만하면’을 익힐 수 없는 게 문제다. 바쁜 ‘큐브’ 속의 삶에서 추구할 가치가 있는지, 또 추구하더라도 정말 책 같은 색채의 그림이 나오는지도 의문이다. 당장 ‘설거지’ 세 음절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내 삶의 그림은 한 번도 저런 색이었던 적이 없다.

핵심은 ‘적당히 거리 두기’의 어려움이다. 공부는 좋지만 레스토랑 행차가 나와 치르는 서양 미식사의 구술시험은 아니다. 음식은 그보다 쉽고 재미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동네 마트 행차 한 번으로 반짝이는 커피 탁자 책 속의 라이프스타일을 재현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도 안 된다. 음식은 그보다 어렵고 또 귀찮다. 각자의 현실을 바탕으로 보정해 받아들여야 할 적당함, 그게 위꼴사 뒤에 깔린 음식의 속성이다.

-월간 젠틀맨 2014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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