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의 저녁(11월 넷째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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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저녁은 어떤 생각의 흐름으로 준비했나. 이런 것이었다. 일단, 양다리 조림을 한 번 만들어보고 싶었다. 여름에 다릿살만 발라내어 굽는 레시피를 시도해보았는데, 받아 놓고 나서야 이 양다리는 그런 용도로 쓰기에 너무 작다는 걸 알았다. 그때 방향을 수정했어야 되는데 별 생각없이 밀어 붙였고, 결과는 보잘것 없었다. 살을 발라내는 것도 일이었고, 그 결과로 나온 살도 구워 먹기에는 너무 양이 적었다.

그래서 이번엔 진짜로 조림을 할 생각으로 주문했다. 사실 진짜 목적은 따로 있었다. 곧 손님을 모셔 저녁을 대접할 일이 있어서, 거기에 주 메뉴로 내기 전에 연습을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혹시나 해서 미리 물어보니, 손님이 양고기에 익숙하지 않으시다고. 그래서 시험 생각은 접고 그냥 나나 잘 먹어보기로 했다.

서양식 조림(braising)은 실패의 확률이 높지 않은 요리다. 특히 오븐에 냄비를 통째로 넣고 익히는 레시피를 따르면 더 그렇다. 타지 않을 정도의 온도로 천천히 익혀 완만하게 근섬유를 분해하는 한편 간을 불어넣기 때문이다. 다만 그 간이 문제가 될 수 있다. 국물이 천천히 졸아들어가므로 미리 생각하지 않고 간을 하면 짜질 수 있다. 물론 그 경우에도 고기 자체만 못 먹을 정도로 짜지 않다면 물을 더하면 그럭저럭 복구는 가능하다.

마이클 룰만의 ‘Twenty’에 실린 레시피를 따라 만든 이 양다리 조림은 지중해-모로코식이다. 토마토 바탕에 계피와 라즈 알 하눗(카르다몸, 코리앤더, 커민 등등을 섞어 만든 혼합 향신료)등으로 향을 불어 넣는다. 통조림 토마토를 완전히 갈아 조림의 바탕을 만들고 물은 거의 섞지 않는다. 따라서 양다리도 국물에 반만 정도만 잠기는데, 이를 150도 오븐에 종이로 만든 뚜껑을 살짝 덮어 익히면 국물 위로 드러난 면에 마이야르 반응이 일어난다. 세 시간 정도 익히면 제 형태를 유지하면서도 포크 한 번 움직임에 살이 깨끗하게 떨어질 정도로 익는데, 중간에 한 번 뒤집어 주는 게 마이야르 반응에 좋다. 그거 말고는 익히는 동안 딱히 신경 쓸 구석이 없다. 조림은 재료를 한데 넣어 오래 끓이므로 한편 푸근하지만 전반적으로 맛이 뭉툭해질 수 있는데, 마지막에 셰리 식초 같은 걸 조금 더해주면 한결 화사해진다. 또한 동양인 찬장의 붙박이인 간장, 액젓은 조리 처음에 더해 토마토에 감칠맛을 보태주는 데 쓸 수 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졸아들었을때 지나치게 짜지는 것만 미리 염두에 두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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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예 그쪽으로 가는 김에 더 적극적인 게 좋다 싶어 고수와 마늘, 마이어 레몬 프리저브의 그레몰라타를 만들어 얹고, 바닥에는 쿠스쿠스를 깔았다. 대추는 원래 토마토 소스에 더해야 되는데 까먹어서, 쿠스쿠스에 넣었다. 술은 체리나 감초향이 감도는 쉬라(또는 프랑스라면 론) 쪽이 사실 더 잘 어울리는데, 요즘 그런 종류를 너무 마셔서 이탈리아로 갔다. 롯데 호텔에는 와인을 무려 세 군데에서 판매하는데(롯데 백화점 지하까지 합치면 네 군데. 그러나 거기는 가지 마시라. 한 번도 유쾌했던 적이 없음), 그 가운데 한 군데에서 세일중이었다. 특정 와인을 반드시 염두에 두고 찾는게 아니라면, 늘 세일하는 것들이 있어 그럭저럭 찾아가며 마실 수 있다. 요즘 계속 마셨던 쉬라 바탕의 와인들에 비하면 다소 느슨하다는 느낌이지만 그래서 좋았다. 정가는 60,000원이라고 하는데 29,000원에 샀고, 그래서 그런지 다음에 60,000원 주고 사야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땐 세일가가 60,000원인 걸 찾으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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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의 짝짓기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여러 이유로 이탈리아로 가기로 했으니, 화이트도 거기에 맞추기로 했다. 리뉴얼한 신세계 본점 와인 매장 옆에는 치즈 매장이 있는데, 거기에서 처음 본 탈레지오 한 덩어리를 사고 화이트로 짝을 맞춰보면 어떨까 싶어 찾던 가운데 나온 피노 비앙코(피노 블랑). 두툼하지만 부드럽지는 않고 서걱거리는데다가 별 향이 없었다. 대개 12도 정도로 마시라고 하는데 되려 온도가 좀 올라갔을 때가 다소 지저분한 느낌이 들더라도 더 나은듯. 화이트 와인 한 병 찾을때 맨 먼저 기억나는 부류에 속하지는 않을 것이다. 별로 인상적이지 않았다는 말. 30,000원. 원래 화이트를 더 좋아하지만 확실히 날씨가 차지면 덜 생각나는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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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한 꼴뚜기를 쉽게 찾을 수 있는 계절이라 그걸 대강 구워 안주삼으려 했는데, 어쩌다보니 주꾸미로 탈바꿈했다. 올리브 기름과 소금, 후추에 버무려 그릴에 살짝 구워서는 훈제 파프리카 가루와 레몬 프리저브를 뿌려주었다. 쪼그라들지 말라고 무쇠팬으로 눌러가며 구웠다. 주꾸미도 나도 최선을 다했지만, 그래도 다소 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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