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자키의 세계 “석권”과 위스키의 지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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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또 한 번 세계를 “석권” 했단다. 이번에는 싱글 몰트 위스키다. 위스키 평론가 짐 머레이(Jim Murray)가 매년 내놓는 위스키 바이블 2015년 판에서 야마자키의 싱글 몰트 셰리 캐스트 2013이 100점 만점에 97.5점을 차지했다는 것. 위스키 종주국이라 할 수 있는 스코틀랜드에는 엎친데 덮친 격으로, 그 많은 위스키 가운데 어느 것도 그가 최고로 꼽은 다섯 종류 가운데 들지 못했다고 한다(텔레그래프의 기사에 의하면 2, 3위는 각각 미국의 버번이 차지했다고). 그래서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트윗도 많이 보았다. 맨 처음에서 언급한 것처럼 일본이 세계를 “석권”했다는 것이다. 과연 그런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하나씩 따져보자. 짐 머레이는 누구인가. 그는 1992년 부터 위스키에 대해서만 전업으로 글을 써왔다. 위키피디아에 의하면 1975년 스카이 섬의 탈리스커 증류소를 방문한 이후 위스키 증류소를 가장 많이 방문한 사람이라고 한다. 위스키 관련 서적을 여러 권 썼지만, 역시 2003년부터 매년 발간하는 위스키 바이블이 그의 권위를 말해준다. 영국인이면서도 책 제목엔 ‘whiskey’를 쓰는 건, 그의 책이 세계의 위스키를 두루 아우르기 때문이다. 무려 4,500 종에 이르는 위스키를 시음 및 평가한다. 이 모든 정보를 종합하면, 그의 감별력에 의심을 품을 이유는 전혀 없다. 달리 말해 그가 1등이라 꼽았다면 믿어도 상관 없다.

두 번째, 그래서 야마자키는 어떤 위스키인가. 이는 한국일보의 기사로 대체한다. 갈수록 매체에서 짜임새 있는 기사 보기가 어려운데, 굳이 위스키를 주제로 삼지 않더라도 잘 썼다.

이 두 가지를 종합하면 ‘믿을만한 전문가가 좋은 위스키를 1등으로 꼽았다’라고 간단하게 결론 내릴 수 있다. 정보는 그 자체로서 별 문제가 없다는 이야기다. 진짜 문제는 그걸 소화하는 시각이다. 무엇보다, 왜 갑자기 이 뉴스만 유난히 크게 불거져 나왔는지 그 이유를 헤아리기가 조금 어렵다. 물론 최고의 권위를 지닌 전문가가 1등으로 꼽았으니 그럴 수도 있지만, 야마자키가 권위의 주체에게 인정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브랜드 홈페이지만 보아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사항이다. 그렇다면 대체 왜? 나는 두 단계로 추측한다. 일단 영국(스코틀랜드)에서는 야마자키가 1등을 한 것도  기삿거리지만, 그보다  다섯 손가락 안에도 들지 못한 것에 대해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려는 중점을 두었다고 본다. 위 링크의 텔레그래프 기사에도 ‘일본 위스키가 잘 만든 건 사실이지만 독창적인 흐름은 스코틀랜드가 쥐고 있다’는 요지의 이야기가 나온다(나도 같은 생각인데, 일단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좀 더 자세히 다루겠다). 짐 머레이의 연감에서 일본 위스키가 1등을 차지했다고 당장 사람들이 스카치 위스키를 외면할 것도, 스카치 위스키의 지평이 즉각 무너지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뉴스가 우리나라에 이르면 ‘이웃나라 일본이 종주국을 누르고 위스키 세계 석권’으로 납작해진다. 그리고 이를 받아들이는 시각에는 ‘국가대표 증후군’과 ‘전국 5대 짬뽕’의 멘탈리티가 한데 엉겨 있다. 국제 무대에서 1등을 하면 저변도 무시하고 모든 측면에서 1등이라도 된 것처럼 받아들인다. 시궁창인 현실을 외면하기 위한 눈가리개로 쓰기 위해, 1등을 더더욱 갈망한다. 또한 순위를 정해 놓고, 그것만 ‘미션 클리어’하듯 먹어 치우고 나면 특정 음식 전체의 지평을 소화 흡수한 것처럼 스스로를 자랑스러워 한다. 거기에 이럴 때만 은근 슬쩍 장착하는 ‘(긍정적인) 이웃나라 일본’이라는 시각을 포함시키면 완성이다. 그리고 물론, 이런 시각은 우리에게 어떤 측면에서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두 가지로 나눠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당연한 말이지만 일본의 성공은 우리의 성공이 아니며,  우리에게 저런 성공을 벤치마킹할 의욕이나 저변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일본은 이미 90~100년 동안 위스키를 만들어 왔다. 그래서 상을 타도 타는 것인데, 한국의 현실은 어떠한가.  뛰어나다고 할 수 없는 블렌디드를, 그것도 폭탄주의 바탕으로 주로 소비하는 현실에 미래가 있는가? ‘위스키=기호식품=소량 음미’라는 기본 공감대조차 소수 사이에서만 유통되는 현실이다. 물론 위스키나 술 뿐만 아니라 모든 음식 문화의 현실에 공통적으로 던질 수 있는 회의며 질문이다. 바로 이웃 나라의 현실이며 성공이므로 가깝고 또 금방 따라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그 저변이 아예 다르므로 격차를 쉽게 좁힐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저변에 대해 한 마디 더 덧붙이자면, 야마자키가 세계 1등을 했네, 말은 쉽게 할 수 있지만 실제로 바를 다녀보면 수입되는 종류가 많지 않아 시음의 폭은 언제나 넓지 않다. 야마자키야 그렇다 치더라도, 결국 갈려 나와 독자적인 세계를 일궈낸 요이치는 현재 수입이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스카치의 사정도 마찬가지여서, 올 여름께엔 대표 가운데 대표 스카치라 할 수 있는 라프로익마저 수입이 더 되네마네 하는 이야기를 들어야만 했다. 이렇게 없다시피한 저변에서 일본 위스키가 세계를 “석권”했다고 입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정작 시음을 위해 바로 향할지도 의문이다. ‘먹어봐야 맛을 안다’고 하지 않았던가. 한마디로, 야마자키가 위스키가 훌륭해서 세계 1등을 정말 했다고 쳐도 그걸 주된 화제로 삼는 사람들에게는 상관도 없는 이야기일 뿐이다.

두 번째는 진짜 중요한 ‘지평’의 문제다. 간단하게 말할 수 있다. 위스키는 짬뽕이 아니라서 세계 1위, 또는 넓게 봐줘 1~5위 까지 전부 마셔본다고 해도 그 지평의 이해를 보장 받을 수 없다. 이는 무엇보다, 위스키 또한 최소한의 재료를 통해 수없이 많은 디테일을 자아낼 수 있는 기호식품이기 때문이다. 또한 여기에, 공통적으로 일본(특히 음식)이 세계를 향해 소구하는 지점이 어디인지도 정확하게 이해해 덧붙여야 한다. 끝없이 다듬어 ‘웰메이드’를 만들 수 있지만 일본에서 바로 그 ‘웰메이드’의 대상은 평범과 무난이고, 야마자키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마시는 자리에서 ‘와, 훌륭하다’라는 반응은 끌어낼 수 있을지 몰라도,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는 인상이나 특이함, 또는 더 나아가 가장 중요한 재미는 주지 않는다고 본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일본 음식 또는 위스키를 폄하하는 건가? 아니다. 그것만 잘할 수 있어도 정말 훌륭하며 높이 사줘야만 한다. 우리는 어떤 분야에서도 그 근처에 이르지 못하고 있으니까, 또한 그게 안되는 이유가 ‘멘탈리티’ 때문이라고 보니까(노파심에 첨언하자면, 이는 ‘안되면 되게 하라’의 그 멘탈리티와는 다르다). 하지만 위스키 전체-를 말하는 것조차 내 능력 밖이라면 적어도 내가 몇 년 동안의 ‘로테이션’을 통해 꾸준히 시음하는 것만 놓고 보더라도-를 볼때 그토록 훌륭하게 잘 다듬은 평범과 무난도 결국 하나의 점이다. 따라서 설사, 마시면서 ‘오오, 이것이 세계 1위 위스키의 맛!’이라며 감복한다고 해도, 그 점 너머에 존재하는 세상의 존재 자체를 인식하지 않는다면 심지어 그렇게 소비하는 위스키와 순간의 의미를 스스로 저버리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과연 ‘세계 1위 위스키’ 소식에 궁금증을 품고 바로 달려갈 위스키 초심자/무경력자가 있을지 모르겠지만(한 명이라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 1등 위스키는 수입이 안 되는 걸로 알고 있다. 되더라도 가격이 만만치는 않을 것), 만약 있다면 그러한 점에 대해 인식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음식을 이해한다는 건 다양성의 존재 가능성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세계 1위’에 이끌려 첫발을 내딛는다면 스스로 납작하게 만든 세계의 올가미에서 헤어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

 

 

 

 

3 Comments

  • 이재칠 says:

    우리나라 참 상받는거 좋아해요…

  • Alix says:

    이거 1위한덕에 이 위스키를 만든 ‘맛상’을 다룬 nhk아침드라마 시청률이 꽤 높다더군요. 저도 몇편 봤는데 별 재미는 없었어요.

    그나저나 술좋아하시는 영감님들(회사…)이 마셔봐야지! 찾으시더라는. 웬지 ‘신의 물방울’때 생각도 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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