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발효종 무용론-가정과 단과자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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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오늘 굽는 빵에 써볼까 통밀 자연발효종이 담긴 밀폐용기를 확인했더니… 윗면이 진창처럼 거무죽죽했다. 오오, 울고 싶은데 뺨을 때려주는구나. 귀찮아서 한참 들여다보지 않았더니 눈치가 빠른지 발효종이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것이었다. 밀폐용기를 싹 씻고 다시는 자연발효종을 키우지 않으리라 마음 먹었다. 애초에 타르틴 베이커리의 빵을 흉내내겠다고 피터 라인하르트의 책을 따라 파인애플즙으로 배양한 자연발효종이었는데, 물 비율이 7,80%의 타르틴 베이커리 빵도 집에서 시도할만한 가치가 없고, 자연발효종도 애물단지일 뿐이었다.

직접 만들어 써보기 전에도, 자연발효종에 대한 나의 입장은 확고했다. 집에서는 필요없고, 빵집에서도 웬만한 경우를 빼놓고는 필요 없다는 것. 여러 번 언급한 것처럼,  자연발효종의 역할은 크게 둘로 나뉜다. 일단 높은 산도로 통밀, 호밀 등 효모를 공격하는 효소를 지닌 곡물의 가루에 방어 체계를 구축하며, 모든 발효식품이 그렇듯 특유의 복잡한 맛을 불어넣는다. 그리고 집에서 1주일에 한 두번 한 두 덩이 정도의 빵을 굽는다면 자연발효종을 관리할 공까지 들일 필요가 전혀 없다. 흰 밀가루 빵이야 물론 아무런 어려움이 없고, 지연 발효와 불린 반죽(soaker) 등으로 통밀 100%, 호밀 50: 통밀 50등의 어려운 빵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원래 자연발효종이라는 게 매일 밀가루를 만지면서 그 참에 일부는 빵에 쓰고 또 일부는 다시 먹여 관리하는 것이니, 자주 빵을 만들 일이 없는 가정 환경이라면 단순히 유지만을 위해 자연발효종과 밀가루 등등을 꺼내 먹이고 절반은 버리는 등등의 절차를 거치는 것 자체가 너무 번거로운 것 또한 문제다. 게다가 맛 또한 관리를 잘 못하면 지나치게 시고, 설사 관리가 잘 되더라도 통밀 등과 궁합이 잘 맞지 않는 경우도 많다. 아, 이것이 “천연”의 제빵을 위한 길이 아니겠느냐고? 인류의 첫 번째 가공식품이라고 할 수 있는 빵, 반드시 곡물의 가루를 내어 반죽을 해야만 만들 수 있는 음식은 빵에서 천연을 찾고 싶다면, 밀도 직접 가꿔 낫으로 수확해 도리깨질해서 맷돌로 갈아 자연발효종을 써 손반죽해서 토굴에 장작불 때어 굽는 길 밖에 없다. 어디 산업혁명 이후 출현한 내연기관 등등을 이용한 믹서로, 그것도 강철 반죽 손으로 두들긴 반죽을? 그러니 천연 찾지 말고, 집에서는 잘 만든 공장효모로 부풀린 빵을 만들어 먹고, 꼭 자연발효종을 써야만 하는 빵은 전문가의 빵집을 찾아가 적합한 가치를 치르고 사먹을 것을 권한다. 된장, 고추장도 공장제품 잘 사먹는 세상에 “천연”발효종 찾는 것도 웃기고, 아마추어가 어떻게 만들었는지 모를 장보다 위생 및 품질 관리 잘 된 공장 된장 사먹는 게 낫다고 보면 빵과 효모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한편 자연발효종은 단과자빵에도 무용하다. 자연발효종의 효율이 떨어지므로 “공장” 효모를 더하는 경우가 많으며, 지방, 설탕 등을 넣는 소위 ‘enriched dough’에는 그러한 재료 때문에 자연발효종의 맛이 묻히고, 그걸 피하더라도 단팥 등등 속재료 때문에 다시 한 번 묻힌다. 따라서 서울연인 같은 단팥빵 전문점이 ‘자연발효종을 쓴다’고 광고하는 건 설사 사실이더라도 빵의 맛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봐도 된다. 건강? 그걸 생각하면 단팥빵 말고 닭가슴살을 먹을 일이다.

그래서 다시 한번 정리하자면, ‘공장 효모는 공장 된장, 자연 발효종은 집된장’ 같은 말도 안되는 논리를 펼치며 토마토 발효종이니, 파인애플 발효종이 하는 온갖 발효종을 키우는 사람을 경계하자. 아마 그 발효종 관리하느라 빵 제대로 구울 시간은 없을 것이다.  팥이 전체 무게의 80%나 차지하는 주제에 ‘천연발효종을 쓴 웰빙 간식’이라고 딱지 붙여 파는 단팥빵이 있다면 그것도 피하자. 어차피 밀가루의 역할이 처음부터 미미하다. 다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들여다보면 거짓말이다.

7 Comments

  • Real_Blue says:

    저도 여태 같은 입장에서 사프사의 드라이 이스트를 써왔는데, 왠지 호기심이 생겨서 사과로 배양한

    액종을 실험하던 찰라 였는데요… 저도 지금 하고 있긴 하지만 천연효모종을 일종의 환타지라고 생각

    합니다. 단지 그 판타지를 체험해 보고 싶었을 뿐.

    인스턴트 타입의 이스트가 아닌 일반 이스트나 드라이 이스트를 쓴다면 이것도 천연 폐당밀 종

    아닌가요? 천연이란 단어가 너무 억지 스러운것 같아서 …

    이탈리아에서 수입한 인스턴트 믹스로 만드는 아이스크림도 천연 아이스크림이라고 적긴 하지요

    제과와 제빵에는 너무 중요한 재료가 많은데 단지 효모에 집착하는것 자체가 넌센스이고

    그보다 중요한 밀가루는 사실 선택의 폭이 더 좁죠…

    저도 아마추어 수준에서 제빵을 하고 있습니다만, 필요한건 사과 딸기 건포도 밀가루로 배양한 천연

    효모종이 아니고 다양한 종류의 밀가루 아닐까 싶습니다. 국내 제분회사 밀가루는 너무 획일적이고

    개성이 없어서 이구요

    제과를 업으로 하고 제빵을 취미로 하는 입장에서 보자면 우리에게 필요한건 새로운 효모가 아니고

    양질의 밀가루, 생크림, 계란 인것 같습니다.

    • bluexmas says:

      시도하시는 것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없죠. 저는 백밀가루는 그럭저럭 문제가 없고요, 통밀가루는 그냥 밥스 레드밀을 씁니다. 밀가루가 나빠서 빵을 못 만드는 건 아닐테고 전반적으로 재료의 다양화가 필요한 시점이죠.

      • Real_Blue says:

        아~ 백밀가루는 문제가 없다고 보실지 모르곘지만 박력분으로 범위를 좁히면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강력분은 수입 강력분도 여러가지 들어 오고 호주산, 캐나다산 밀가루에 유기농 인증이

        붙은 밀가루 등이 들어 오지만 박력분은 정말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프랑스산 밀가루만 해도 T55 T65 등은 들어 오지만 제과용 T45 이하의 밀가루는 들어 오지 않죠

        SPC가 일본산 밀가루로 물의(?)를 일으킨 것도 같은 맥락 입니다. 당시 문제가 되었던 밀가루는

        일본 닛신제분의 슈퍼 바이올렛 이었죠 박력분으로 쇼트케익에 최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밀가루

        인데요… 얼마나 답답하면 유기농도 아닌 밀가루를 일본에서 수입했을까 싶네요… 심지어 우리나라

        4위 제분 회사를 거느리고 있는 SPC인데요 …

        • bluexmas says:

          무슨 말씀하시려는 지 알겠는데요, 지금 우리나라 빵이 맛 없는 이유가 순전히 밀가루 때문인지요? 파리바게트가 제대로 된 밀가루가 없어서 제대로 된 과자를 못 만드는지요? “윈도우 베이커리”에서 프랑스산 밀가루를 못 구해서 맛있는 빵을 못 만드는지요? 좀 다른 문제라고 생각하는데요.

          • Real_Blue says:

            쓰다보니 좀 논점 일탈을 했네요 …

            재료 얘기를 하면 흥분을 해서 사실 더 중요한건 빵에 과자에 접근하는 자세 아닐까 싶긴

            합니다만 만드는 입장에선 재료빨(?) 이라도 세워 보고 싶은게 사실이고,

            그럼에도 따지고 보면 다양한 재료는 시장이 만들어 주는 건데 시장이 먼저 라는 생각도

            들고, 시장이 먼저라면 위에서 얘기한데로 천연발효종이면 건강빵이 되는 비정상적인

            시장이 먼저 고쳐져야 하고. 그냥 아쉬움에 오버 했네요~

  • vanilabean486 says:

    일단 샌프란시스코 효모가 든 공기를 수입해서 발효종을 만들어야!!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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