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 쁘띠첼 스윗 푸딩-The Proof IS in the Pudding
‘The Proof Is in the Pudding’이라는 격언이 있다. 한마디로 ‘먹어봐야 안다’는 뜻. 내가 자리를 비운 동안 고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는 CJ 쁘띠첼 스윗 푸딩 가운데 두 가지 맛(밀크커스터드, 레어치즈)를 먹어보았다. 그야말로 먹어봐야 알테니까.
간단하자면 아주 간단하게, 복잡하자면 아주 복잡하게 생각할 수 있다. 일단 간단하게 생각해보자. 먹을만한가? 그렇다. 푸딩의 생명은 질감이고 그 질감은 훌륭하다. 거기까지만 생각하고 ‘앞으로도 종종 사먹어야지’라고 결론내린다면 그럴 수 있다. 어차피 골치 아픈 삶, 편의점 푸딩 하나 가지고 고민할 필요 없지 않은가.
하지만 생각이 뻗어나가는 대로 놓아두면 또 한없이 복잡하게 생각할 수 있다. 일단 포장지를 보자. 우유 다음으로 오는 재료명이 ‘푸딩프리퍼레이션[(싱가폴산, 설탕, 탈지분유, 식물성유지(대두))]’다. 이게 뭘 의미하는가? 주관식이라면 나는 ‘맛과 질감의 기본적인 틀은 우리나라에서 잡지 않았다’라고 답을 쓰겠다. 물이나 우유만 타서 굳히는 인스턴트 푸딩은 아주 흔하다. 동남아산도 있고, 비싼 물건만 들여놓는 백화점 지하에도 독일산 등등이 있을 것이다. 이 푸딩이 그러한 제품과 과연 얼마나 다른 것일까?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면 내부 포장지의 ’13년이나 걸렸다’는 이야기가 그다지 내세울게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설사 이 제품이 순수 국내 개발제품이라고 쳐도, 여태껏 제대로 된 푸딩하나 만들어내지 못했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일단 옆나라 일본만 가도 편의점에 널린게 이런 푸딩이다. 그 사이에 끼워놓는다면 몇십 종류 가운데 하나 정도 수준일 것이다. 그 질감은 훌륭하지만, 사라지고 나면 긍정적인 맛의 여운은 거의 남지 않는다. 우유, 크림 등등을 넣었다고는 하지만 지방이 매개체 역할을 크게 못한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또한 그건, 이 푸딩의 단가가 그렇게 높이 않음도 의미한다.
그리고 첨가물을 이용한 공업 조리(또는 현대 조리, 분자요리 등등)에서 가장 큰 혜택을 보는 것이 질감이다. 고유의 물성을 강화시키는 것은 물론 고유의 물성을 극복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육회에 계란 노른자를 그대로 얹어 비벼 먹는 게 예전 방식이라면, 이젠 그 노른자를 만두피처럼 만들어 고기를 싸먹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한 현실에서 과연 이 푸딩 하나를 개발하는데 정말 13년이나 써야만 했을까? 믿을 수가 없다.
독과점이나 노동 문제 등, 대기업을 싫어할 이유는 많다. 모두 이유있는 반감일 것이지만 소비자로서, 또 음식에 얽힌 주제로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내가 대기업을 싫어한다면 그 이유는 바로 이런 푸딩 같은 물건을 내는 맥락이다. 쉽게 말해 이제서야 그냥 먹을만한 에일을 내는 국내맥주회사들과도 같다. 수천수백만 가지 제품을, 대자본으로 축적한 과학과 기술과 공업을 바탕으로 내는 대기업이 이렇게 평범한 푸딩 하나를 내는데 13년이 걸릴 이유가 없으며, 그걸 내세워서 엄청난 업적이라도 이루고 있는 양 강조할 이유는 더더욱 없다. 대기업의 돈이라면 사원 몇 명을 일본으로 보내, 아무 동네의 아무 편의점에 들러 진열된 푸딩을 싹쓸이해다가 먹어 진작에 개발했어야만 했다.
그래서 나는 서글프다. 13년이나 걸려서 만들었는데 이게 정말 세계 최고 수준의 편의점 푸딩이고, 그래서 물량이 달리고 난리가 난다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데 우리는 너무 좋아한다. 왜? 여태껏 없었으니까. 물론 그럴 수 있는 상황이지만 그 부재 자체와 부재를 둘러싼 맥락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래서 생각하게 된다. 아, 우리가 이런 부문에서도 대기업에 놀아나고 있구나. 88만원 세대니, 고령화니 가게부채니 해서 나라가 망해가고 있네 어쩌네 말들 많지만, 그래도 이 정도의 푸딩 하나 만드는데 13년씩이나 걸릴 건 아니다. 부재든 존재든, 그 증거가 푸딩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래서 결국은 빼도박도 못하고 ‘The Proof IS in The Pudding’이다.
# by bluexmas | 2013/11/23 14:45 | Taste | 트랙백 | 덧글(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