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틀랜드 5일차- 바리스타, 올림픽 프로비젼스, 비스트

(*여행 사진은 인스타그램-bluexmas-에 먼저 올라오니 관심 있는 분들은 그쪽도 찾아주시길)

5일차

가공육 전문이라는 <올림픽 프로비젼스 Olympic Provisions>에서 점심을 먹었다.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대표 가공육을 만들어 사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판때기(board)’에 담아 낸다. 이날의 선택은 리에트, 테린, 아를르식 소시지 등에 에스펠렛 지방에서 나온다는 쿠쿠루(Kukulu) 치즈 등을 한꺼번에 내는 프렌치 보드와 구운 닭 1/4 마리. 가공육의 맛은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두텁고 매끈하며 부드러운 지방을 뚫고 올라오는 폭발적인 짠맛+향신료다. 대학로에서 열리는 마르쉐 포스팅에서 누군가 ‘담백한 리에트’를 판다는 사진을 보았는데 미안하지만 아예 개념부터 잘못 잡은 것. 하여간 만족스러웠다. 저녁과 메뉴가 겹쳤던 것까지 감안한다면 더더욱.

커피는 <바리스타 Barista>에서. ‘멀티 로스터리’ 콘셉트로 여러 로스터리의 커피를 자주 바꿔가며 쓴다고. 이날도 진열장에서 그 동네 로스터리인 하트나 코아바 커피는 물론 시카고의 인텔리젠시아 또한 볼 수 있었다. 벌써 며칠 지나서 좋았다는 것 말고 에스프레소의 자세한 인상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반면 프렌치로 내린 커피는 가장 싼 선택으로 많이 내기 위해 쓰는 추출 방식이지만 커피를 위해 최선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는 같은 방식으로 내려 보온병에 담아 가장 흔하게 내는 대부분의 커피숍에서 마찬가지. 콩이 좋고 잘 볶아서 그럭저럭 제 표정을 내지만 최선은 아닌 느낌이다. 이런 커피가 2달러, 케멕스로 한 잔씩 내리는 커피가 4달러대라는 걸 감안한다면 싸게 파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제 몫은 다하니 오히려 긍정적인 것으로 봐도 되겠다(우리나라에서 이삼천원 짜리 커피의 맛이 어떤지 생각해보라. 자리 임대 쿠폰 수준 아닌가?)

저녁은 <탑 셰프> 등에 종종 등장했던 나오미 포메로이(Naomi Pomeroy)의 <비스트 Beast>에서 먹었다. 음식이 재미있다고 생각해서 들렀는데 결론을 미리 말하자면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았다. 레스토랑에 다다르니 일단 운영방식부터 애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75달러 가격 고정의 6코스를 내는데, 주중에는 2회전으로 운영한다. 여기까지야 다른 곳과 크게 다를 바 없는데 문제는 식탁이 12인, 8인의 공용 딱 두 종류 밖에 없다는 것. 결국 아주 정확한 시간에만 손님을 받아서 모든 음식을 한꺼번에 내는 방식으로 최대한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셈인데 이게 음식이 좋다면 ‘뭐 그 정도야 감수하지’가 되지만 아니면 ‘부심의 산물 아닌가?’가 될 수 있다. 코스는 첫 주자인 수프에서 정점을 찍고 끝까지 내리막을 걸었다. 조명 때문에 사진이 너무 어두워 양해를 미리 구한다.

첫 번째는 감자-파 벨루테와 가늘게 채썰어 튀긴 감자, 송어알. 이름(Veloute=velvet) 같이 두텁고 부드러운 식감에 튀긴 감자가 질감, 송어알이 질감과 온도, 맛의 대조를 주는 구성이다. 의도는 그러하나 튀긴 감자는 아주 가늘게 채쳤으므로 빵을 깍둑썰기해서 만든 크루통과 비교하자면 수프의 양 때문에라도 그 효과가 다소 빨리 사그러든다. 또한 수프의 온도가 살짝 높았다.

두 번째는 공교롭게도 가공육 모둠. 손이 엄청나게 갔을텐데 그에 비해 별 다른 감흥이 없는 것이 문제였다. 점심에 비슷하나 더 잘만든 것을 먹은 것도 원인이겠지만 소테른 젤리를 얹은 푸아그라 봉봉이랄지, 왠지 너무나도 익숙한 메추리알을 얹은 스테이크 타르타르는 그저 심심했다. 종잇장처럼 얇은 오리 가슴살 프로슈토 또한 사족. 그냥 한 두가지로 줄이고 거기에 좀 더 신경을 썼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입가심인 복숭아와 샴페인 소르베. 코스 중간에 입을 가셔주는 목적이라면 어느 정도로 시고 단게 좋을까?

세 번째는 램 찹. 양이 얌전했다. 그래서 소스와 데미글라스, 바닥에 깔린 채소의 목소리가 좀 크다는 느낌. 게다가 구운 로마네스코의 밑둥이 꽤 단단했다. 굽기만 한다면 분명 그 부위는 나머지와 같은 정도로 익지 않을텐데…

네 번째는 여러모로 최악이었던 샐러드. 간이나 드레싱 등등 조리도 별로였지만 무엇보다 제철인 배가 왜 조연으로 전락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배와 라디키오, 호두의 조합이라면 아예 더 뻔한 길로 가서 블루치즈가 더 나았을텐데 하필 택한게 파르메지아노 레지아노라는 것도 좋지 않았다. 다소 억지로 먹었다. 직접 만들었다는 베이컨은 돌돌 말려 우리나라식으로 쫄깃해서 물어보니 ‘바삭하게 내놓으려는 의도는 아니었다’는 대답을 들었으나 이건 정말 서양 음식으로서는 선을 넘는 수준으로 질겼다.

다섯 번째는 세 가지 치즈. 맛도 질감도 꽤 흡사했다. 이왕이면 둘 가운데 하나라도 앞으로 나아가도록 설정했으면 좋지 않을까? 꽈리(ground cherry)의 역할도 애매모호했다.

마지막으로 디저트. 모과(Quince) 업사이드 다운 케이크와 레몬 버베나 아이스크림. 이 모과는 우리나라의 것과 조금 다른데, 익혔을때의 신맛이 아이스크림과 카라멜의 단맛과 좋은 균형을 이뤘다. 다만 양(potion)이 많아 케이크 부분이 질감 포함 부담스러웠다. 코스 전반에 걸쳐 후한 건 좋으나 양 조절 potion controll이 좀 안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화씨 210도(참고로 212도가 섭씨 100도)로 종일 맞춰놓은 온수로 내린 커피.

여기에 30달러를 내면 짝짓기 와인을 마실 수 있는데, 그 자체로는 좋지만 내는 순서나 음식과 짝짓기 또한 좋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화장실에 가니 와인리스트 때문에 받은 상이 눈에 들어왔다. 아, 그렇구나.

땅콩버터 덕분인지 다소 질깃한 머랭의 ‘mignardise’ 와 함께 코스 마감. 피곤했다. 요리마다 평을 했으니 종합할 필요는 없겠지만 사족으로 한 마디 덧붙이자면 이름에 비해 참 ‘beast’하지 않았다는게 가장 컸다.

어두운 사진 올리다보니 마음 또한 어두워지는 것 같아서 오늘은 여기까지.

 by bluexmas | 2013/10/18 13:21 | Taste | 트랙백 | 덧글(6)

 Commented by 대건 at 2013/10/18 14:06 

인스타그램에서 미리 본 사진들이지만 또 이렇게 묶어서 하나의 포스팅으로 보니 더 좋네요. ^^

 Commented by bluexmas at 2013/10/20 16:44

네 더 자주 올려야 합니다만 ㅠㅠㅠ

 Commented at 2013/10/19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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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ed at 2013/10/20 16:46

비공개 답글입니다.

 Commented at 2013/11/15 04:06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at 2013/11/18 16:16

비공개 답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