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즈 에일- 의미있는 체면치레
“한편 원고를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두 대기업 또한 에일을 생산한다고 밝혔다. 높은 가격대의 ‘프리미엄’ 맥주임을 못 박아 두었으니 과연 오명을 벗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 네 번째의 양조업체 세븐브로이가 이미 IPA 캔을 발매 기대의 하한선은 마련해놓았다. 다른 에일과 비슷한 쓴맛만 감안한다면 3,000원을 살짝 밑도는 수준에서 마실 수 있는 맥주다. 요령마저 부릴 수 있는 수준의 기술력으로 이보다 나은 맥주를 내놓을 것이라 믿는다.”
…라고 책에 썼는데 연휴 직전 하이트 진로의 퀸즈 에일이 발매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예 조금 더 늦게 나왔으면 저대로 두었을텐데, 분명 마실 수 있는 상황이니 그럴 수가 없었다. 그래서 툴툴거리며 동네 이마트에 전화 문의를 하고 찾아가 한 캔씩을 사왔다. 큰 캔인데 약 3,000원 정도 한다.
시음평을 간단히 말하자면, 마실 수 있다. 적어도 나에게는 대기업이 낸 맥주치고 최초다. 지금까지 맥주의 두 배 가격을 받음으로써 세금을 포함한 단가가 표면적인 문제라는 주장의 근거는 내놓은 셈이다. 하지만 국산 맥주의 맥락에서만 따지자면 그렇고, 평가의 기준을 넓히면 이런저런 생각에 골치가 아파진다. 일단 평범무난하다. 마실 수 있게 만들었으되 ‘그러니까 왜 이 맥주, 이 에일을 마셔야만 하는가?’라는 물음에는 선뜻 대답을 내놓기가 어렵다. 마실 수 있는 맥주로서 가격의 부담은 없지만 비슷한 가격에 조금 더 잘 만든 에일은 꽤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결국 관건은 접근성이다. 편의점이나 동네 마트 등에 널리 팔린다면 우르켈이나 선토리 프리미엄을 제쳐놓고 선택할 용의는 있다.
그보다 더 마음에 걸리는 건 ‘왜 하필 에일인가?’라는 점이다. ‘우리도 만들 수 있다’라는 걸 보여주기 위한 움직임이 오히려 맥주로서는 더 오래된 에일이어야만 하는 것일까? 물론 난 에일을 좋아하지만 한식과 어울린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향과 쌉쌀함이 강해서 고춧가루 기반인 음식과 만나면 여운이 충돌한다. 차라리 밀맥주쪽이 낫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어느 술이 음식과 먹을때 더 맛있지 않겠느냐만, 탄산과 상대적으로 낮은 도수로 인해 맥주만큼 반주로서 훌륭한 술이 없다. 개발에 앞서 조금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었다고 본다.
이런저런 것들을 다 덮어두고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그래도 이건 의미 있는 체면치레 정도는 충분히 된다. 적어도 멀쩡한 걸 만들 수 있다는 것은 보여주었으니까. 하지만 외산 맥주가 이렇게나 많이 깔린 현실에서 이 시도가 너무 늦은 것은 아니기만을 바란다. 정말이지 국산 맥주 비판하는 것도 지겹다. 전혀 상관 없는 것조차도 ‘다 MB 탓이다’라는 것처럼 마음대로 까도 되는 거대악 따위를 설정해놓은 기분이라 마음이 편치 않으니까. 생각과 평가에서 무차별적으로 비판할 수 있는 대상처럼 사람을 둔하게 만드는 게 없다.
# by bluexmas | 2013/09/24 10:05 | Taste | 트랙백 | 핑백(1) | 덧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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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거를 제외하면 상면발효에서 나올만한게 에일이였으니 우리나라 음주 문화와는 다르게 최근 수입되고 있는 다양한 에일 맥주들에 뒤지지 않으려는(?)모습이 보인것 같아서 맥주 매니아로선 반갑기는 하네요 (전 세계를 봐도 대기업이 에일을 내는 경우는 드물죠)
맛은 기대보단 나쁘지 않기는 한데 이 가격의 책정은 안타깝습니다
기존의 맥주 매니아들에겐 이정도 에일은 밋밋하고 한국맥주에 길들여진 사람들에겐 이 맥주가 관세를 뚫고 들어오는 다른 수입 맥주에 비해서 선뜻 지갑을 열고 받아들이지는 의문이거든요
시간이 지나봐야 알겠지만 조금더 개선되고 가격이 내려간다면 즐겨마실 맥주가 되지 않을까라고 혼자 생각해봅니다 ^^
나름 재밌는 관전포인트가 될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