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의 이해 (8)-재료론(단백질: 쇠고기와 돼지고기)
삼일절 연휴, 지옥처럼 막히는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강원도에 다녀왔다. 두 달에 한 번쯤 지방으로 떠나는, 일종의 취재 여행이다. 소위 말하는 ‘지방 맛집’이라는 곳에 들러 먹어보는 것은 물론, 휴게소나 시장에서 관심 가는 재료를 사다 직접 만들어도 본다. 여행의 대미는 횡성의 한 한우집에서 장식했다. 웰던을 고집하는 등 고기를 향한 독특한 철학 때문에 유명세를 타, 굳이 이름을 댈 필요도 없는 곳이다. 1년에 한두 번 들러 고기를 먹고 음식 이야기를 나누는데 이번에는 특허 출원을 알리는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고기의 숙성 방식에 얽힌 것인데 김치를 익히듯 변화를 주는 온도가 핵심이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굳이 비유하자면 습식 및 건식 숙성의 장점만을 취한 방식이라고 한다.
음식의 중심을 잡는 단백질에서도 중심이다 보니, 쇠고기에는 늘 많은 화제가 얽혀있다. 논란이라 해도 무방하다. 물론 맛과 얽혀 있다. 당연히 단백질이 중심이지만 제 아무리 ‘고기님’이라 해도 지방의 보좌가 없다면 그 맛은 풍성하지 못하며 단조롭다. 쇠고기에서 가장 비싼 부위인 샤토브리앙, 즉 안심의 맛은 의외로 단순하다. 운동을 안 한 것도 원인이지만 지방의 부재 때문이다. 그래서 마블링이 필요하다. 근섬유 사이사이 지방이 잘 퍼져있어야 조리했을 때 열에 녹아 촉촉함과 맛을 더해준다. 완벽하다고 보기 어렵지만 마블링의 상태로 쇠고기를 평가하는 이유다. 우리가 1++, 1+, 1, 2, 3의 다섯 등급으로 분류하듯, 미국에서도 마블링에 따라 Prime, Choice, Select 등으로 나누고 상위 2%에 속하는 프라임만이 파인 다이닝의 식탁에 오를 자격을 갖춘다.
마블링이 이렇게 중요하다보니 그걸 불어넣는 방식, 즉 사육법이 늘 뜨거운 감자 취급을 받는다. 한마디로 관리의 문제다. 동물의 행복을 좇자며 자연스레 놓아 풀을 먹이면 인간이 불행해진다. 마블링이 제대로 생기지 않아 맛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지방을 늘리는 건 결국 소를 비만으로 만드는 셈이니 이를 비육(肥育)이라 일컫고, 옥수수를 비롯한 곡물사료가 즉효다. 물론 부작용도 따른다. 원래 풀을 먹는 동물이다 보니 곡물을 먹으면 면역력이 떨어져 탈이 나, 이를 다스리기 위해 항생제의 힘을 빌린다. 대안인 풀로 키웠다는 쇠고기(grass fed beef)가 보다 높은 가격대에 팔리지만 이 또한 최후의 나날은 지방을 늘리기 위한 비육으로 보낸다. 또한 ‘동물은 먹은 것의 맛이 난다’라는 통념에 입각해 곡물을 먹은 것보다 맛이 떨어진다는 주장도 무시할 수 없다.
한편 마블링은 또 다른 정통성 논란의 원인이기도 하다. 와규(和牛, 일본소), 특히 ‘고베규’를 둘러싼 시비다. 오메가-3과 5 등 높은 지방산 함유량과 때로 기마저 질려버리는 마블링 덕분에 유명세를 탄 와규는 1990년대 중반 이후 미국과 호주에서 토착종과 교배해 ‘미국/호주 와규’를 낳았다. 비슷하지만 아닌, 즉 ‘사이비(似而非)’라는 딱지까지 붙이는 건 다소 가혹하지만 종의 희귀성과 일본 특유의 집착에 가까운 완벽주의가 결합해 낳은 품질이 재현 가능한 것인지는 의문이다. 보다 정확한 구분을 위해 미국’식’ 와규(American Style Wagyu)’ 등의 딱지를 붙이지만 혼동은 현재진행형이다. 특히 고베규는 일본 바깥에서 파르메지아노 레지아노 치즈처럼 POD(Protected Designation of Origin)로 원산지와 명칭의 관계를 보호받지 못하는 현실이다.
참으로 다양하지만 이렇게 마블링에 얽힌 화제는 어찌 보면 쇠고기를 격하시킨다. 그 대상이 결국 립아이(등심), 스트립(채끝) 등, 구워 먹을 수 있는 스테이크감에만 국한되기 때문이다. 특히 전문 스테이크하우스도 아닌, 일반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의 코스에 등장하는 스테이크는 때로 구색 맞추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생각이다. 양이 적어 동물적인 육식 욕구를 채워준다는 의미도 갖추지 못하고, 셰프의 상상력을 발휘할 기회로써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귀한 동물을 잡았으니 어느 한 부위도 낭비하지 말자는 철학 ‘코부터 꼬리까지(Nose to Tail)’에 충실하자면 사실 다양한 부위의 매력을 그에 맞는 조리법으로 살려 손님에게 내는 게 사실 셰프의 역할 또는 역량이다. 이를테면 뵈프 부르기뇽(프랑스)이나 오소 부코(이탈리아) 등, 운동을 많이 하거나 마블링이 없어 구워 먹기에는 질기지만 쇠고기 특유의 맛이 강한 목심, 정강이 등의 부위를 오래 끓인 요리가 그 예다. 하지만 야심차게 낸 이런 요리에 ‘장조림 (또는 갈비찜) 같은데 이걸 왜 양식 레스토랑에서 먹어야 하나’라고 붙은 인터넷의 평을 보고 있노라면 ‘스테이크 대세론’은 결국 벗을 수 없는 멍에라는 생각도 든다.
회식의 중심 삼겹살로 친숙하지만 사실 그게 돼지의 전부는 아니다. 돼지가 없으면 잔칫상의 감초 머리고기며 시장 최고의 먹거리인 순대와 딸린 내장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코부터 꼬리까지’라는 철학을 언급했는데, 돼지만큼 여기에 잘 들어맞는 동물도 없다. 비단 우리 음식에만 국한된 이야기도 아니다. 영국에는 퍼거스 헨더슨이 있다. 고든 램지나 제이미 올리버만 아는 사람들에게라면 그 또한 2009년과 12년, 미슐랭 별(1개)을 받은 영국 파인 다이닝의 대표임을 강조하겠다. 주로 육류를 거래하는 런던 도심의 스미스필드 재래시장 앞 베이컨 훈제집 자리의 세인트 존(St. John)에서는 주로 돼지 귀, 족, 내장 등의 다양한 부위를 주로 영국 전통 레시피에 기대어 조리한다. 덕분인지 마리오 바탈리같은 스타 셰프들이 극찬하고 요리책 <The Whole Beast-Nose to Tail Eating>의 미국판 서문은 안소니 부어댕이 쓰는 등, ‘셰프의 레스토랑’ 대접을 받는다.
가공성을 비롯, 부위마다 서로 다른 매력 덕분에 돼지는 최근 재조명을 받고 있다. 쇠고기 다음, 즉 ‘단백질의 2인자’라는 오명을 벗겨주겠다는 시도다. 피가 끓는 셰프들은 심지어 문신마저 새겨 각오를 다질 지경이니 요리 프로그램에서 벌써 여러 마리의 돼지를 목격했다. 이러한 시도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첫 번째는 퍼거스 헨더슨처럼 잘 안 쓰던 특수 부위나 내장을 재조명하는 경우다. 연골 덕분에 오돌오돌한 식감이 독특한 돼지 귀는 일단 삶은 다음 바삭하게 튀겨 샐러드의 고명으로 인기를 누린다. 주로 베이컨을 위해 헌신했던 삼겹살도 이젠 저온 조리 등의 도움을 받아 주요리의 접시에 당당히 오른다. 한편 두 번째는 장인정신이 깃든 가공육(charcuterie 또는 salumi)의 부활이다. 프로슈토나 하몽처럼 섬세함이 깃든 시간의 손길로 싸구려 가공식품과 차별되는 소시지, 햄 등을 만들자는 경향이다. 이를 바탕으로 샌프란시스코의 <A16>처럼 직접 통돼지를 들여다 발골 및 정형해 만든 살루미를 내놓은 레스토랑이 느는 한편, 프로슈토나 하몽에 근접한 전통을 세우려는 시도 또한 한창이다. ‘와규=고급 쇠고기’라는 인식처럼 돼지의 경우 버크셔(영국)과 더불어 요즘에는 한때 잊힌 만갈리차(헝가리)가 인기몰이중이다.
-<젠틀맨> 2013년 4월호
# by bluexmas | 2013/09/07 11:38 | Taste | 트랙백 | 핑백(1)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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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그의 음식점 리뷰들에서 참신한 충격을 받고 그의 글들을 주의깊게 읽기 시작했었다. 예리한 통찰력으로 느낌을 써내려간 음식점 포스팅들도 좋았지만, 커피나 단백질 등 구체적 재료에 대한 글들도 매우 자세하게 쓰셔서 참 재미있게 읽었었다. 아, 그리고 솔직함이 묻어나는 요리 포스팅도 이 블로그만이 가지고있는 매력 …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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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역 4번출구 옆골목에 1978년 개업한 ‘금복족발’ 있던데, 카라멜 적고 식혀서 내오는게 괜찮더군요. 소(2만5천원)은 저 혼자 너끈히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적으니, 어지간하면 大(3만원)자 주문하는게 나을 겁니다. 댁 위치 감안하면 포장 가능하겠네요.
비슷한 스타일로 내오는 제 추천집은 압구정 코끼리상가의 ‘대감왕족발’의 특대족발(4만원 초과)이지만 거리도 멀고, 아줌마들이 요새 좀 성의가 떨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이 마포의 족발집도 술안주로 괜찮으니 살짝 권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