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책 없는 ‘노 쇼(No Show)’ 문화
지하철에서 내려 시계를 본다. 예약시간 5분 전이다. 레스토랑까지는 20분 더. 이미 늦었다. 마음이 급해진다. 버스도 오지 않는다. 망설이다 전화를 건다. “여보세요, 예약 시간에 늦을 것 같아서요…” 그래봐야 30분정도 늦을 뿐인데 웬 호들갑이냐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예약(豫約), 미리 한 약속이다. 늦거나 아예 약속 자체를 지킬 수 없다면 알려주는 게 맞다.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드는 일도 아니다. 심지어 선금을 걸지도 않는다. 배려하는 마음만 있으면 충분하다.
바로 그 배려하는 마음이 없어, 뿌리도 못 내린 파인 다이닝이 공멸의 길로 치닫고 있다. 세간의 화제로 떠오른 ‘노 쇼(No Show)’, 즉 통보 없이 예약을 지키지 않는 경우의 이야기다. SNS를 통해 피해를 입은 셰프들의 불만 섞인 목소리가 불거져 나왔고, 레스토랑 오너가 트위터를 통해 신상을 공개해 절정에 이르렀다. 서비스업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주인과 손님 사이의 믿음이 완전히 깨졌다. 그만큼 현실이 ‘개판’이다. 셰프들로부터 늘 듣는 이야기라 새롭지도 않다. 한 번 옮겨 보자. 크리스마스나 밸런타인데이 등, 흔히 말하는 대목의 예약 이행률은 대략 40%다. 나머지는 전부 ‘노 쇼’다. 연락도 없고 나타나지도 않는다. 그 과정조차 나쁘다. 세 시간 전쯤 확인 전화를 걸면 ‘간다’고 확언한다. 하지만 오지 않는다. 나타나지 않아 다시 연락하면 아예 받지 않거나, 받더라도 레스토랑임을 밝히면 끊고 전화기를 꺼버린다. 취소 통보를 안했으니 ‘워크 인(walk-in, 예약 없이 찾아오는 손님)’도 못 받는다. 따라서 레스토랑은 물론, 잠재적인 손님마저도 피해를 입는다. 세상에 이런 악질이 없다.
기대를 품고 찾아간 레스토랑에서 실망을 안고 돌아오는 경우가 사실 참 많다. 예약 이행률 40%? 좋은 음식을 만날 확률은 그보다도 떨어진다. 양식 파인 다이닝의 현주소는 솔직히 암담하다. 경력을 부풀린 자격미달 셰프 등,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지면이 닿을 때마다 지적하는 사안이다. 그래도 찾아갈 때면, 의도적인 워크 인이 아닌 이상 예약은 필수다. 자리가 없을까봐? 아니다. 음식과 파인 다이닝 자체에 대한 예의 때문이다. ‘대접받고 싶으면 먼저 대접하라’는 말도 있지 않던가. 손님의 뚜렷한 존재감이 레스토랑에게는 최고의 대접이다. 그 대가도 맛있는 음식과 훌륭한 서비스로 손님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
예약은 일단 안정적인 재료 수급 계획에 도움을 준다. 수요를 보장해주기 때문이다. 미리 계획하고 더 좋은 재료를 갖출 수 있다. 어차피 당신이 먹을 음식이니 재료가 좋아서 손해 볼게 하나 없다. 뚜렷한 존재감은 또한 조리에도 영향을 미친다. 흔히 사랑과 연결 짓는 것처럼, 조리는 지극히 인간적인 행위다.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시구처럼, 하다못해 이름 석 자라도 알 때 더 맛있는 음식이 나온다. 대다수의 레스토랑에서는 예약 손님을 이름으로 반긴다. 존재를 미리 파악했다는 의사표현이다. 예약을 통해 대접이 아예 달라질 수도 있다. 미국 최고의 레스토랑 프렌치 런드리에서는 혼자 오는 손님을 무조건 VIP로 대접한다. 그곳에서의 저녁은 대장정이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차로 한 시간 달려야 닿고, 식사도 꼬박 세 시간이 걸린다. 당연히 고독하고, 음식이 맛있어도 때로 지루할 수 있다. 필자도 대부분 혼자 먹으러 다녀 잘 안다. 알고도 찾아온다면 그만큼 음식을 사랑한다는 의미다. 따라서 극진히 대접한다.
한편 자리 확보는 예약이 주는 혜택의 지극히 일부다. 큰 그림을 보자. 파인 다이닝 외식은 총체적인 경험이다. 음식은 물론, 서비스까지 당신의 마음에 쏙 들어야만 한다. 예약은 이를 위한 소통의 문을 열어준다. 채식 등으로 인한 식단 조절은 물론, 청혼 등 레스토랑의 분위기를 활용한 이벤트의 가능성 또한 타진 가능하다. 물론 모든 손님의 모든 요구가 수용 가능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접대의 의지에 충분한 시간과 소통의 기회를 더한다면, 경험이 업그레이드 될 가능성은 매우 높다. 물론 그 열쇠도 당신이 쥐고 있다.
이렇게 예약의 의미며 순기능에 대해 이상적인 이야기만 늘어놓는 이유는, 대책 없는 악질 노 쇼를 뿌리 뽑을 방안이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물론 방안 자체가 없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오픈테이블(http://opentable.com)’과 같은, 인터넷 기반 예약 대행 네트워크와 예약금 제도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재작년, 샌프란시스코를 포함한 미 북서부 지역을 여행하며 여러 레스토랑을 돌았다. 그 가운데 하나였던 ‘코이(COI, 미슐랭 별 두 개)’의 예를 들어보자. 고정 코스인 저녁의 가격은 175달러(고정 팁 18% 별도)인데, 오픈 테이블로 예약할 경우 60%에 달하는 100달러를 카드로 건다. 48시간 이전에 취소나 변경할 경우에는 돈을 돌려받고, 그 이후에 통보했는데 자리가 다시 예약되지 않는다면 돌려받지 못한다. 예약에 그만큼 진지하게 임하라는 의미다.
문제는 이렇게 다른 나라에서 잘 자리 잡은 방안조차 현실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일단 양식 파인 다이닝의 수요가 높지 않은 게 문제다. 성격이 너무 다른 한식과 경쟁하기 때문이다. 특정 기간, 특정 레스토랑을 빼놓는다면 자리 확보 자체도 큰 의미가 없다. 앞에서 언급한 프렌치 런드리의 경우 자체 전화로만 예약을 받는데, 언제나 몰리니 아예 통화 자체가 불가능하다. 선금을 거는 것 또한 여러 측면에서 제약이 따른다. 일단 심리적인 거부감이 크다. 작년 크리스마스부터 몇몇 레스토랑에서 시도를 했는데, 부정적인 반응이 많이 나왔다고 들었다. 전혀 이해할 수 없다. 꼭 가고 싶다면 미리 내는 것일 뿐인 비용을 부담 못할 이유가 없다. 신용카드를 통한 전자 결제 시스템의 도입도 비관적이다. 악명 높은 액티브 엑스 때문에 지나치게 번거로울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따져보면 결국 열쇠는 손님이 쥐고 있다. 스스로 바뀌어야 한다. 지킬 수 있는 약속만 맺고, 부득이하게 못 지킬 경우 책임을 져야 한다. 강제적인 제도의 도입은 의미가 없다. 이번 현대카드의 고메 위크 행사에서 도입한 예약금 제도가 보여준다. 회사 차원에서 손님 대신 예약금을 걸어줬더니 불이행율이 100%인 레스토랑이 나왔다. 손님이 이렇게 몰상식하다. 현실이 이런데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은 할인 혜택 등으로 예약 문화를 정착시키자고 주장한다. 절대 동의하지 않는다. 단지 지갑을 연다고 손님이 왕은 아니다. 돈, 즉 권력에 걸맞은 품위가 없는 왕이라면 굳이 대접해줄 필요가 없다. 구슬리는 게 능사가 아니다. 차라리 감성에 호소하겠다. 당신의 참여가 문화를 바꾼다.
100% 손님의 책임이지만, 레스토랑에게도 바라는 바는 있다. 트위터 등을 통한 공개적인 의사 표현이 손님 입장에서는 영 보기 껄끄럽다. ‘블랙리스트’ 운운하는 것도 듣기 싫다. ‘우리도 사람이다’라고들 말한다. 물론 맞는 말이고, 동의한다. 불이익에 억울하고 표출도 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방식은 틀렸다. 이해하는 손님마저 등을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무서워서 어디 가겠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잠깐 속 시원하자고 스스로의 긍지에 먹칠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현대카드 매거진 A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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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bluexmas | 2013/08/24 11:24 | Taste | 트랙백 | 덧글(14)
손님 입장에서 만들어진 ‘예약 불이행’을 표현하는 용어가 있으려나요? 혹시나 여쭤봅니다.^^
이런 새끼들도 있다죠 -_-;
“그래 뭐먹고 싶어?”
“오빠 나 이거~!”
“그래 오빠가 예약해놨다 가자!”
ㅡㅡ;; 뻔하고 뻔한 스토리
예약이라는 것과 업주쪽에서 그 예약을 위해 어떤 준비와 시간, 비용이 들어간다는 것을 알면 최소한 당일 벌어진 사건이라 해도 연락을 해 줘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방법 없습니다. ‘내 돈이 까져야’만 그러겠죠.
그러기에 강제로라도 그렇게 가야 한다 봅니다.
당일 취소일 경우는 대여비 안돌려주고, 1일전 취소는 50% 최소 2일전에 취소하지 않으면 100% 환불 없는 식으로 말이지요.
레스토랑에서 그렇게 하면 정말 손님 안올게 보이는지라 참 그렇습니다만…
예약이 자기 편의를 위한 것이지만 그만큼 상대도 준비하고 있는 이유고 선금을 받는 이유가 그 준비의 원활함을 위해서라는 서로가 서로를 이해만 한다면 그런 일은 없을 텐데 말이지요…
그 약간이 참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