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밥집-춘삼월, 한성별식, 파르크

늘 생각하는 한식의 고질적인 문제:

1. 밑반찬과 ‘질보다 양’의 문화

2. 천편일률적인 양념 위주의 맛

3. 밥에 대한 지나친 애착과 그로 인한 탄수화물와 단백질의 불균형

4. 김치에 대한 강박: 돈 받고 제대로 만들어 팔아야 한다. 손님들도 공짜 김치 좀 그만 바라자.

이 밖에도 얼마든지 나열이 가능하지만, 한식의 현재 문제는 이 네 가지에서 가지를 쳐 나간다. 굳이 이걸 언급하는 이유는, 소위 현대적인 접근을 했다는 한식당 또는 밥집의 시도를 평가하는 기준이기 때문이다.

상수역 네거리의 <춘삼월>은 전반기 언젠가에 갔다. 스스로를 ‘모던 한식’이라 규정했으므로 그 근거가 궁금했다. 결과를 미리 말하자면, 심심하다 못해 밋밋하기 직전까지 간 간맞추기를 빼놓고 딱히 모던한 구석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일단 반찬이 너무 많았다. 물론 ‘한상차림(15,000원)이니 걸맞게 낸다는 생각이었겠지만 표현방식은 역시 양 또는 가짓수였다. 콩나물도 다르지 않지만 특히 숙주나물 같은 건 정말 금방 맛없어지므로 아예 내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이를 바꾸는 노력이 ‘모던 한식’으로 가는 길이라고 본다. 세 가지 나물과 같은 반찬은 무친지 된 듯 맛이 없어 형식적이라는 느낌 밖에 들지 않았다. 나머지 반찬도 썩 맛있거나 열심히, 잘 만든다는 느낌이 안 들었다. 인테리어 등 분위기에 비해 타성적인 맛과 차림새였다. 재방문 의사 없다.

합정역 가는 길에 <greEAT>라는 카페가 있던 걸로 기억하는데(지금 동물병원자리), 이 한성별식의 아랫층에 있는 <cafe EAT>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다. 경희궁의 아침 뒷편에 있는다 저 춘삼월과 자리바꿈을 해도 되겠다 싶을 정도로 홍대 분위기였다. 북어구이 정식(16,000)을 먹었는데 북어구이에 딸려나오는 국이 북엇국이라 조금 중복된다는 느낌이 들었다(대가리나 꼬리, 자투리가 남는다면 국물을 내어 다른 음식의 곁들이로 내고 여기엔 딴 국을 내는 게?). 하지만 적어도 가격에 맞는 양의 단백질은 내는 셈이니, 적어도 성인남자 한 끼 식사에 맞는 적당한 포만감은 선사했다. 단맛이 적당히 두드러지는 북어구이 양념 때문인지 전반적으로 텁텁하다는 느낌이었다. 그 아래에는 표고와 양파 볶음을 깔았는데, 조리 상태는 좋았으나 간을 거의 하지 않아 심심했다. 물론 북어구이와 함께 먹으라는 의도겠지만 그래도 각자 간을 하는게 맞다. 한편 식지 말라고 철판에 담아 내는 건, 의도는 좋아하지만 결과는 좋아하지 않는다. 어차피 완전히 익은 걸 가지고 나오므로 먹다 보면 뻣뻣해지기 때문이다. 그냥 일반 접시를 오븐 등에 데워 내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재방문 의사 있다.

리움미술관 가는 길의 <파르크>는 이야기를 처음 듣고, 이름과 콘셉트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페이스북 등에서 설명은 하고 있지만 여전히 그렇게 생각한다. 물론 대세에는 지장없지만… 단백질에 서너가지의 밑반찬, 밥과 국이 딸려 나오는 한 끼를 9,000원대부터 팔고, 동치미나 젓갈, 잡채, 해파리 냉채 등의 반찬을 2,000~4,000원대에 별도로 판다. 80년대에 시행했다 쫄딱 망한 주문식단제를 나름 변형한 것이라 할 수 있는데,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맛도 볼 겸 동치미와 잡채, 해파리 냉채를 별도로 주문했다. 양은 생각한 것보다 많지 않다.

이곳에서 내세우는 컨셉트는 ‘엄마의 레서피’인데, 솔직히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엄마들마다 추구하는 맛이 다르겠지만 적당히 달고 살짝 텁텁한 <한성별식> 쪽이 오히려 그런 콘셉트에 더 잘 맞는 맛을 낸다. 이곳은 가볍고 산뜻함을 추구하는데, 그걸 살짝 지나치게 해서 가운데가 좀 비고 여운이 없는 음식이 나온다. 좋게 말하면 깔끔하고, 나쁘게 말하면 먹고 난 다음 정확하게 뭘 먹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다. 진짜 우리 음식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양념에 범벅이 된 음식 천지라 그에 대응하는 맛을 내고 싶다는 의도는 이해하고 또 높이 산다. 충분히 긍정적이다. 오늘 글로 묶은 세 군데 가운데서도 음식이 가장 깔끔하고 깨끗하다. 하지만 그걸 이루기 위해 너무 많은 것을 들어내버려 개성이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참기름의 지지자는 절대 아니지만, 정말 참기름 한 방울이 아쉬운 맛이었다.

내가 시킨 끼니의 주 단백질은 조기였는데, ‘버터구이’라는 이름과 달리 버터의 풍부함도, 구운 생선의 맛도 거의 느낄 수 없었다. 물론 “생물”이라니 그런가보네, 할 수는 있고 실제로 신선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살짝 짭짤한 살을 껍질 사이에서 발라 밥에 얹었을 때의 그 맛이 정확하게 나지는 않았다. 나머지 반찬들도 전반적으로 심심한 가운데 기본 반찬인 멸치 아몬드 볶음의 단맛과 해파리 냉채-일부러 시켜보았는데 꼬들꼬들하지 않은 해파리가 나와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그냥 이 정도로 수준이나 의지는 알 수 있다고 생각했다-의 신맛이 상대적으로 두드러졌다. 내가 이 동네에서 일하는 직장인이라면 부담없는 한 끼를 보장해주므로 당연히 재방문할텐데, 만약 부러 가야하는 집이라면 잘 모르겠다. 고급스러운 느낌의 식기와 수저를 내는 건 좋은데 숟가락과 입구가 좁은 국그릇의 조합이 조금 불편했다.

요즘도 영업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왕십리역 가는 길 시장에 밥집 하나가 있었다. 주인 아저씨 따님이 미녀라 인기 있던 집이었는데… 반찬은 거의 기억나지 않는데 따뜻한 밥이랑 주문 받고 바로 부친 계란을 내줬다. 좋은 밥집의 콘셉트는 여기쯤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by bluexmas | 2013/07/29 14:30 | Taste | 트랙백 | 덧글(8)

 Commented at 2013/07/29 14:36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at 2013/07/29 15:09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at 2013/07/29 15:15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몬스터 at 2013/07/29 20:50 

역시 좋은 밥집에는 아리따운 미녀가 있어야하는 법이죠!! (……응? -_-;;;)

 Commented by 달산 at 2013/07/29 21:35 

마지막 말씀에 공감합니다. 몇 년째 자주 가는 밥집 중 한 곳이 그런 곳이에요. 찌개나 반찬 자체는 조미료를 쓰긴 하지만, 그래도 그 계란 부침 때문에라도 꼭 먹으러 갑니다.^^

그나저나 진짜 포인트는 주인 아저씨 따님?!

 Commented by 번사이드 at 2013/07/30 00:05 

‘현실’을 직시하고 나선 일부러는 찾지않는 곳이 한식밥집이죠 ㅠ.ㅠ

지금같은 가격대 책정으론 일반 백반집에서 좋은 반찬 찾기 힘들죠. 올 여름에 먹은 밥집 중에서 밥 그나마 나은 곳이 태국식당 창수린… 현실입니다..

 Commented at 2013/08/23 23:50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위장효과 at 2013/08/26 20:22 

음…왕십리역가는길 시장의 밥집…중에 주인아저씨 따님이 미녀인 집이 있었던가…(계속 이 집 저 집 떠올려보지만 기억이 안나는…하나같이 푸짐한 사장 아주머니들이 진치고 있었더랬죠) 대신 말씀대로 주문하면 따뜻한 밥에 바로 부친 계란 “후라이”를 내주던 집이 하나 있었죠. 이집 백반은 매일 국이 바뀌는데 그중에서도 청국장찌게 나오는 날은 정말 땡잡은 날이었더라는…대신 그거 먹고 들어가면 학우들 원성을 들을 각오좀 해야…근데, 니들은 거기 단골아니냐???????

간만에 왕십리 앞에 가보니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더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