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랫층 난닝구님께
안녕하세요, 아랫층 난닝구님. 윗층 난닝굽니다. 그 하얀 난닝구 좋아 보이던데 어디에서 사셨는지요? 저는 요즘 이마트의 회색 난닝구에 푹 빠졌습니다. 완전히 늘어지고 보풀이 일기 전-바로 요즘-까지는 겉옷 같아보여서 집에서 뒹굴다가 밖에 나갈 때에도 스리슬쩍 그 차림을 고수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물론 그것도 배가 (그것도 바로 요즘 처럼) 너무 나오면 곤란합니다만…
방금 담배 피우시지 말라고 소리를 질러 대단히 죄송합니다. 그러나 이사온지 한달 하고도 며칠, 저도 많이 참았습니다. 같은 남자로서 동병상련이랄까, 뭐 그런 삶의 애환 같은 것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담배 안 피워본 것도 아니고, 거 한 대 빨고 싶은데 문을 열고 밖을 나가 계단을 내려가… 이 새벽에는 좀 귀찮지요. 압니다.
하지만 아랫층 난닝구님, 그것도 작작 좀 하셔야지요. 고등학교 과학시간에 배운 콜로이드 현상이 맞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방금은 냄새는 물론이거니와 책상에 켜놓은 등에서 연기가 넘실넘실 춤추는 걸 보았습니다. 이게 뭐 하룻밤에 한 번이면 그런가보다 하는데, 워낙 잠이 불규칙한 제가 깨어있는 거의 모든 시간에 어떨때는 두 번 이상도 담배를 피우시더군요. 그래서 어디 제가 견디겠습니까?
가족과 함께 사신다는 전제하게, 아랫층 난닝구님의 건강에 대한 염려는 그분들의 몫이니 제가 오지랖 넓게 말을 보태지는 않겠습니다. 어쩌다 한 번 피우시는 것, 아니 적어도 하룻밤에 한 번이라면 그것도 이해하겠습니다. 하지만 그 이상이라면 결자해지의 심정으로 문을 닫고 피우시거나, 아니면 조금 번거로우시더라도 밖에 나가서 피우시기를 권합니다. 다행스럽게도 요즘 이 시간대의 기온이 정말 좋습니다. 바람이 살랑살랑 부는게, 지금 입고 계신 그 난닝구만으로도 충분할 것입니다. 혹 동무 필요하시면 불러주시고요. 회색 난닝구 입고 달려나가겠습니다. 나란히 서서 한 대씩 빠세요. 짝다리는 ‘옵션’입니다.
– 윗층 (회색) 난닝구 올림.
# by bluexmas | 2013/05/21 01:35 | Life | 트랙백 | 덧글(7)
비공개 덧글입니다.
베란다에서 피워서 냄새 올라오는건 그냥 참겠던데, 화장실에서 그러니까 아주 미치겠더군요.
엘리베이터에 그러지 마시라고 종이에 프린트해서 붙여놨더니 요즘은 좀 덜하더군요.
자기집 화장실에서 피우고 환풍기돌리면 그 연기가 다른 집으로 간다는걸 모르는 모양이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