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없댔니? 고소한다
요즘 시간 및 마음의 여유가 너무 없어 블로그에 글을 잘 못 올리는데, 어제 우연히 밸리에 올라온 글을 보고 깜짝 놀라 그 글쓴이를 걱정하는 마음에 황급히 글을 올린다. 그 매장은 부정적인 평가를 담은 글을 올리면 “영업방해 및 허위사실 유포”로 고소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 때문이다.
언제라고 정확하게 밝히지 않겠지만 나는 올해 그 집의 음식에 대한 평가글을 올렸다. 그리고 며칠 지나지 않아 글의 블라인드 처리와 동시에 이글루스 운영진의 메일을 받았다. 백문이 불여일견, 아래 그 내용을 공개한다. 또 고소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으므로 중요 부분은 “블라인드” 처리하겠다.
음식에 대한 글을 각 매체에 써온지 4년이 넘었지만 그 평가 대상으로부터 부정이든 긍정이든 연락 자체를 거의 받아본 적이 없는지라 고소 운운은 좀 황당했지만, 언제나 이런 일이 생기면 원칙대로 처리한다는 원칙(표현이 좀 이상한가-_-;;)이 있으므로 이글루스 측에서 밝히는 절차대로 권리소명서를 보냈다. 가리자니 내용이 너무 전달 안되는 것 같은 느낌이 있지만 개인정보 또한 너무 많이 들어가 있으므로 일단 가리겠다. 어쨌든 권리소명서를 다음과 같이 보냈다.
그리고 한 달 이내에 방송통신위원회인가를 통해 명예훼손(명의회손? 경영수업받는 재벌 2세, 20대 상무는 이렇게 쓴다던데;;;)을 입증하지 못하면 글이 다시 공개처리가 된다던데, 정확히 한 달이 지나도록 아무 연락이 없어 메일을 보내보니 그 뒤로 아무런 연락과 조치가 없었으므로 글의 블라인드 처리를 풀어준다는 답을 받았다.
그래서 부정적인 평가를 담은 나의 글은 다시 공개를 할 수 있게 되었지만, 기분 나쁘기도 하고 바쁜데 처리에 대해서 생각해보기도 싫어서 일단 처박아두었다. 속된 말로 내 새끼가 밖에 나갔다가 얻어맞고 돌아온 기분이랄까…? 하여간, 핵심은 그렇다. 나는 정확하게 내 글의 어느 부분이 “허위 사실”인지 잘 모른다. 그리고 진짜 중요한 건 맛이 있느냐, 없느냐의 유무다. 아주 간단하다. 맛이 없었다. 그리고 ‘맛이 없다’라고 평가한 근거는 특정한 재료의 사용, 소금이나 설탕의 양, 뭐 이런 진짜 취향이나 입맛의 문제가 아니다. 한마디로 ‘샐러드를 맛있게 만들려면 일단 채소 잘 씻어서 물기부터 잘 제거하자’와 같은, 가장 기본이 되는 기술적 측면이다. 우리나라에서 음식의 맛이 없는 이유는, 거의 대부분 이 영역에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 지점을 무사히 넘어서야 각자의 취향과 평가 기준에 따라 진짜 “맛”이 있는지 없는지를 따지고 토론할 수 있는데, 그게 불가능한 팔자인 음식이 너무나도 많다. 또한, 만약 맛의 평가가 주관적이므로 공개적으로 말할 수 없는 것이라면 세상 그 어느 것에 대한 평가도 불가능하다. 또한 주관적이므로 업체에서 스스로 ‘우리 음식이 맛있어요’라고 주장하는 것 또한 절대 믿을 수 없는 것 아닌가?
그리고, 이런 부분도 말하고 싶다. 나는 돈을 내는 손님이지만 무조건 옳지 않다.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고 ‘손님이니까 무조건 죄송합니다. 앞으로 잘하겠습니다’와 같은 이야기를 들으려고 글을 쓰지 않는다. 혹시라도 평가에 잘못 반영한 부분이 있다면 블로그 상단의 연락처를 통해 얼마든지 의견을 밝힐 수 있다고 생각한다.물론 그런 절차는 당연히 없었다. 어느날 글이 블라인드 처리되었고, 그와 동시에 고소 운운하는 이메일을 받았을 뿐이다. 진짜 궁금한데, 영화나 음악, 책 재미없다고 말하면 작가나 출판사, 영화 제작사 등이 고소하냐? 정말 말도 안되는 이유 들어서 내 책 재미없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고소할 생각 해 본적 없다.
하여간 내 얘기는 그렇고, 길게 늘어놓자면 한도 끝도 없으니 이쯤에서 접으면서 다시 한 번, 글쓴이의 안녕을 걱정하겠다. ‘조심하세요, 맛없다고 말하면 고소 의사를 밝히는 이 무서운 세상…저는 늘 맛없다는 평가글을 너무 많이 써서 정말 밤길이 두렵사옵니다ㅠㅠ 말도 안되는 빠와블로거들은 영업에 동원한답시고 돈 줘가면서 부른다던데 나는 내 돈 써서 먹고 맛없는 거 맛없다고 말하면 고소한다니 이거 뭐 일 하겠습니까?ㅠㅠㅠ’
# by bluexmas | 2013/05/11 15:32 | Taste | 트랙백 | 핑백(1) | 덧글(18)
Linked at The Note of Thir.. at 2014/02/21 16:52
… 작년 5월 이런 글을 썼다. 부정적인 평가글의 대상인 업체에서 고소하겠다며 글의 블라인드 처리를 요청했던 것. 그곳은 이태원의 ‘타르틴’이었다. 왜 이제와서 이런 글을 … more
그러니 맛없다는 사실을 알리셔서 그렇게된듯합니다. ㅠㅠ
정말 세상은 넓고 황당한 사람 많군요.
예를 들어 범죄자가 죄를 지어 징역을 살고 나온 뒤 이사가서 새 인생을 사는데 누가 가는 곳마다 쫓아다니면서 동네사람들 이새끼 전과자래요~하고 떠벌리고 다닌다면? 성폭행 피해자의 신상과 피해사실이 인터넷이나 주거지 인근에 알려진다면? 거짓이 아니니 명예훼손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요?
물론, 사실을 공연히 적시한 행위의 목적이 공익을 위해서라거나 하는 경우에는 당연히 명예훼손죄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또한 죽은 사람의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허위사실일 경우에만 명예훼손이 인정됩니다. 사회적 명예를 유지할 주체가 죽고 없으니까요.
이 경우는 서비스 저공자인 이글루스가 괜히 같이 덤터기 쓰기 싫으니까, 항의가 들어오면 일단 블라인드 처리부터 해서 책임을 최소화하는 기계적인 조치를 취한 것 뿐입니다. 실제 명예훼손이 인정되고 말고와는 관계가 없이 대부분의 포털 등이 비슷한 식으로 대응하죠.
블루마스님의 글에 관해 문제 업체가 명예 훼손으로 고소 운운한 것도 그런 점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비롯된 듯하고요.. 만약에 그게 다 명예 훼손에 해당하면 세상에 ‘평론’이란 분야가 존재할 수 없을 텐데 말예요.;;
왠지 이 케이스 같은 느낌이네요.
bluexmas님은 해당 게시물을 복원하셔도 하등 문제가 없을 뿐만 아니라, 사실 신고자의 명의를 굳이 숨기실 이유도 없다고 봅니다.
정보통신망법의 저 조항이 사실상 임시조치를 남발하게 하여 개인이 누리는 표현의 자유를 자주 침해하고 있는데, 그야말로 법조 냄새 약간 뿌려서 개인을 겁박하는 치졸한 수법입니다. 저런 수법에 자기검열하고 쉽게 양보하게 된다면 그것이야 말로 불의가 들불처럼 번지는 사태가 되겠지요.
서비스제공자도 소명에 대한 판단이 귀찮아서 법적 분쟁을 떠넘기는 경향이 있는데 이글루스는 그렇지 않아도 우수한 컨텐츠 생산자들을 많이 놓친 상황에서 태평하게 그런 경향에 응해버리면 되는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명의회손, 아니 명예훼손 관련 법은 잘 모르지만 이런 식이라면 모든 리뷰나 평론에 다 적용될 여지가 있는 거 아닙니까…
http://blog.naver.com/paperchan/60191937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