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원동]쌩뽈(St. Paul)-가격만 프로, 음식은 아마추어
음식을 한 번 먹으면 꽤 한참동안 복기한다. 아주 오래전에 먹었던 음식의 기억이 불현듯 떠오르는 경우도 종종 있다. 곱씹을수록 기분 좋은 음식이 있고, 그 반대인 음식도 있다. 망원동의 ‘프랑스 요릿집 & 카페’라는 <쌩뽈>의 음식은 후자다.
아마추어의 ‘언젠가 작은 음식점을 내서…’라는 발언을 우스운 것으로 치부한다. 물정을 모르고 하는 이야기라는 의미다. 집과 식당 주방의 음식 환경은 완전히 다르다. 같은 음식을 정해진 시간 내에 계속 만들면서도 수준은 일정해야 한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건, 의외로 ‘생각하기’다. 최대한 미리 준비하고, 서로 다른 손님의 주문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순서를 계산해야만 한다. 다섯 테이블에 스무점의 요리가 나간다면, 그 모두의 순서를 머릿속으로 재빨리 정하고 멀티태스킹을 해야 한다. 안 그러면 주문이 밀리고 손님은 짜증을 낸다. 이런 능력은 훈련을 통해 경험을 쌓아야 기를 수 있는 능력이다. 반드시 식당 주방일 필요는 없지만, 아무래도 그 정도 환경은 되어야 돈을 받고 음식을 팔만큼의 숙련도를 쌓을 수 있다.
우연히 이야기를 들어 미리 예약을 하고 구정 연휴에 점심 첫 손님으로 들렀다. 테이블이 두 개에 최대 열 명 정도 받을 수 있는 규모였다. 요리를 세 가지 시키고 화이트 와인을 한 병 시켰는데 잘 어울릴거라며 흰살생선 요리를 권하길래 그것까지 먹었다. 반 이상 먹었을때 손님이 한 팀 더 들어왔는데 이 모든 걸 다 먹는데 두 시간이 걸렸다.
맨 먼저 빵과 수프가 나왔다. 빵이 질겼다. 이음매를 뜯어내자 한 자락을 쫙 펼쳐졌는데, 보통 1차 발효한 반죽을 편 다음 말거나 해서 원하는 모양을 잡아도 구우면 그 흔적이 완전히 없어져야 맞기 때문에 이 빵은 어딘가 이상했다. 한편 수프는 심심했다. 그냥 주는 것이었는데, 파는 것이라면 사실 한 번 정도는 체에 멍울을 걸러주는게 맞다. 이런 걸 소위 말하는 ‘가정식’과 ‘레스토랑 음식’의 차이라고 좋게 말해줄 수는 있겠지만 그 차이점 자체를 알고 있는데 안하는 상황과 아예 몰라서 안하는 상황에는 차이가 있다. 한편 좋은 버터를 내왔지만 냉장고에서 바로 꺼내 잘랐는지 빵이 아주 뜨거웠지만 바로 발라 먹을 수 없는 상태였다. 예약까지 하고 간 손님이 있다면 버터 같은 것도 적어도 30분 전에 일정량을 꺼내 놓아야 한다.
종이에 넣어 구운 도미(Dorade en papillote). 가져오더니 ‘조개가 해감이 덜 된 것 같으니 먹지 말라’라는 이야기를 전했다. 조개를 반드시 넣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만약 그런 상태라면 손님에게 내기 전에 들어내는 것이 맞다. 올리브와 케이퍼를 푸짐하게 넣었지만 정작 생선 자체는 싱거웠다.
라타투이. 굳이 가르자면 두 가지 종류의 맛이 있다. 이것저것 넣어서 만든 맛과 그 반대로 빼서 만든 맛. ‘업장’의 레시피에는 꼼수가 많다. 이 글에서 언급한 혼다시 등이 좋은 예다. 이곳 음식의 맛은 후자로, 그런 꼼수를 아예 몰라서 안 쓰는 것 같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기는 하지만 너무 반대쪽으로 가서 지나치게 심심했다. 소금간도 너무 약한 편이었는데 대기 시간이 길어지니까 내온 새우구이 같은 건 꽤 짰던 것으로 짐작하건대 짜지 않은 걸 추구하기도 하지만 조리, 특히 업장을 위한 조리의 경험 부족이 낳은 결과인듯 보였다.
생선 테린. 튜브 주둥이 모양으로 짜놓은 마요네즈에서 기가 막혔다. 각각의 가격은 잘 기억나지 않는데 2만원대 중반 이하가 거의 없었다. 그 정도 가격의 음식을 낸다면 그게 뭐든 소스 또한 직접 만들어야만 한다. 게다가 프랑스 음식의 핵심은 소스 아닌가? 마요네즈 또는 아이올리는 계란 노른자와 식용유 등, 최소한의 재료로 금방 만들어 쓸 수 있고 그 맛 또한 시판용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월등하다. 이 정도 규모의 업장이라면 계란 두 개 정도로 하루분을 만들어 쓰고, 남은 건 버리고 다음 날 다시 만들어 쓰면 된다. 테린 이전에 저 마요네즈가 수준을 말해주고 있었다. 초점 때문에 잘 보이지 않지만 뒤의, 소금 후추와 기름도 없이 발사믹 졸인 걸 끼얹은 곁들이 샐러드도 기가 막혔다. 프랑스에 안가본지 오래라 잘 모르겠는데, 샐러드 드레싱이 발사믹 하나 밖에 없을까? 백번 양보해서 그렇다치더라도 이 음식에는 절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다. 음식을 빨리 못내니 중간에 샐러드를 약간 내왔는데 그것 또한 그냥 간하지 않은 채소에 발사믹을 슬슬 뿌린 것이었다.
마지막의 뵈프 부르기뇽, 또는 그렇다고 믿고 싶은 무엇인가. 늘 말하지만 조림에서는 조림의 맛이 나야 한다. 구워 먹기 어려운 고기를 여러 재료와 함께 푹 오래 오븐에 넣고 끓여 부드럽고 푸근한 음식이 서양식의 스튜 또는 조림이다. 마침 이번 시즌의 <탑 셰프>에서도 누군가가 뵈프 부르기뇽을 만들었다가 ‘소스가 부족하다’라는 이유로 나쁜 평가를 받고 탈락했다. 오소부코도 그렇고 서양식의 조림은 보통 전체를 끓인 뒤 건더기와 분리한 국물을 졸여 진득한 소스를 만들어 다시 섞는다. 고기는 오래 조리한 느낌이 있었지만 나머지 채소와 같이 익힌 것이라는 인상을 주지 않았다. 얄팍하고 심심했다.
일부러 먹어본 디저트. 크림 브륄레. 핵심인 설탕 껍데기도 얇고 서걱서걱한 산딸기를 굳이 올릴 이유도 없다.
진짜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다. 음식은 물론이거니와, 전체적인 레스토랑 경험 자체를 어떻게 구축하는지 모르는 상황이라면 업장을 열고 이 정도 가격에 음식을 팔면 안된다. 아예 음식을 빼놓고서라도 이 곳에서는 준비가 안 된 느낌을 너무 진하게 풍겼다. 일단 가장 기본적인 디테일의 중요성 자체를 인식하지 못했다. 예를 들어 빵의 경우, 처음에는 아주 뜨겁게 데운 것이었고 추가분은 아예 데우지 않아 차가왔다. 열렸다고 말할 필요도 없이 아예 뻥 뚫려 다 보이는 주방을 흘끗 보니 온갖 재료가 어지럽게 널려 있고 어려움을 겪는 모습이 선했다. 보통 레스토랑 주방에서는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관리 또는 정리를 강조한다. 그래야 끊임없이 밀려오는 주문에 가장 효율적으로 음식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재료를 가장 쓰기 편한 상태로 준비해 위치시키는 ‘미장 플라스(Mise en place,’everything in place’)’를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점심 시간 내내 여섯 명도 감당 못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10만원 넘는 코스까지 메뉴에 올리는 건 실로 배짱이라고 치부하기조차 내키지 않는다. 아이패드에 담은 메뉴는 몇 페이지에 달했으며 실로 많은 음식들이 올라있는데 정말 이걸 소화할 수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웠다.
한편 와인 리스트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화이트 와인을 주문하려 보니 가장 싼게 41,000원이고 만원대 중반이 없었으며 그 뒤로는 여섯자리가 대부분이었다. 이유를 물어보니 ‘프랑스에서 즐겨 먹었던 것 위주’로 일단 준비했기 때문이란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준비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지만 자체 평가하는 음식의 수준이나 업장의 콘셉트, 기타 여러 가지 요인 즉 현실을 반영해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스스로 정해놓은 선이 확실히 있고 손님이 그걸 완전히 따라주기를 원한다면 불만이나 의심을 품지 않도록 모든 것을 가능한 완벽하게 갖춰놓아야 한다. 그냥 까놓고 말하겠다. 이 정도의 음식이라면 술이 아깝다.
먹은지 열흘이 넘었는데, 나는 아직도 이 음식에 화가 나있다. 두 사람이 먹었는데 41,000원짜리 와인 한 병 포함 15만원 가까이 나왔다. 술이야 레스토랑에서 만든 것이 아니니 감수하겠지만 솔직히 음식 값은 아주 정중하게 환불을 요구하고 싶을 정도다. 백번 양보해 ‘우리가 이런 이상을 실현하고 싶은데 아직 연습이 덜되어 이 정도 가격에 음식을 내고 손님을 대상으로 연습을 하겠습니다’라며 조금 낮은 가격을 매긴다면 혹시 모르겠다. 한 군데 미장원을 오래 다니면 ‘스탭’이 오랜 시간을 거쳐 ‘디자이너’가 되는 걸 종종 본다. 이야기를 해보면 미용학원 등에 다닐때 돈을 안받고 손님 머리를 만져준다고 한다. 그런 걸 바라지 않고 모두가 일한 대가를 받아야만 하지만, 이 가격에 이 수준의 음식이라면 요즘 유행하는 말로 ‘프랑스 부심 쩌네’라는 반응이 조건반사로 나온다. 정확하게 어떤 생각으로 가게를 열고 음식을 파는지 모르겠지만 이건 곤란하다. 그냥 만들 수 있다고 다가 아니다.
# by bluexmas | 2013/02/21 12:24 | Taste | 트랙백 | 덧글(16)
조개 해감이 덜되있다고 먹지 말라는 부분이 가장 어이가 없네요
그래도 그 조개 때문에 털려있을 주방 막둥이에게 심심한 애도를 (…)
st.paul인가 보군요.
5년간 단 한번도 모래가 씹힌 적이 없어요…….. 모래 씹히는 조개에서 애도를..ㅠ
그리고 마요네즈 짠 모양이 아주 오뚜기 스럽네요.
요즘 가정집에서도 마요네즈 정도는 요리 좀 좋아하는 주부들은 직접 만들어먹던데 말이죠 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