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와 시장, 동네 수퍼
작년 초,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반 년 이상 경동시장에서 장을 보았다. 차를 가져가서 근처 홈플러스에 대고 채소와 과일 위주로 장을 본 뒤 마트에서 살 수 있는 것들은 홈플러스에서 마저 사 돌아오는, 적어도 세 시간 정도는 걸리는 일이었다. 나름 재미도 있고 많이 배우기도 했지만 직업적인 이유를 빼놓는다면 그리 경제적인 방식은 아닌 것 같아 그만두었다.
마트와 시장에 대해서 이야기가 많은데 나는 의외로 이 문제를 간단하게 생각한다. 마트와 시장은 서로 대체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좋건 나쁘건 마트는 일종의 문화공간, 아니면 ‘놀이터’로 발전했다. 주말에 가족끼리 차를 끌고 가서 푸드코트에서 짜장면이든 돈까스든 한 그릇씩 먹고 사람이 많거나 적거나 느긋하게 돌아다니며 1주일 단위의 식료품을 산다. 말하자면 단순한 장보기, 또는 쇼핑 이외의 기능을 무시할 수 없거나, 또는 그 기능이 훨씬 크다는 의미다. 물론 이러한 기능을 제공하는 것이 반드시 긍정적이라는 말을 하고 싶은 건 아니다. 그냥 현실이 그렇다는 의미다.
반면 시장은 이러한 기능보다는 원래의 목적, 즉 빠른 장보기에 더 적합한 공간이다. 최소한의 동선과 많은 사람 때문에 카트를 끌고 느긋하게 움직이면서 이것저것 들여다보고 물건을 사는 건 불가능하다. 빨리 생각하고 결정해서 물건을 집고 돈을 치르고 빠져나와야 한다.
마트와 시장이 기본적으로 이런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면, 마트와 경쟁하기 위해 시장은 자신의 장점을 최대한 살릴 수 있어야 한다. 그 장점이 무엇일까? 나는 빠르게 회전되는 물건의 싱싱함과 사람들이 말하는 소위 ‘사람냄새’를 꼽겠다. 하지만 나의 경험을 놓고 보았을때 요즘 시장에서 그 두 가지를 찾는 건 생각보다 어렵다. 인터넷 쇼핑몰 등이 발달해서 거의 직거래에 가까운 형태로 산지 물건을, 그것도 택배로 하루만에 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보니 시장에서는 내가 만족하는 품질을 물건을 사기가 쉽지 않다. 물론 경동시장이라는 곳의 특성도 감안해야 되겠지만 시장 물건의 품질은 박리다매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편 ‘사람 냄새’ 또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맡기가 쉽지 않다. 언급한 것처럼 시장에서는 모든 구매가 빨리 이루어진다. 같은 시간에 하나라도 더 팔아야 이익이 나는 상황이라면 마음이 있더라도 그만큼 손님에게 응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물건을 사면서 그에 얽힌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큼 즐거운 것도 없고, 그건 마트에서 절대 제공할 수 없는 기능이지만 다녀보면 의외로 그럴 기회가 많이 생기지 않는다. 물론 아예 마음이 없는 경우도 많이 접한다. 그냥 자리에 앉아서 ‘물건 집어와서 돈 내라’라는 식으로 뻗대고 있거나 거의 강매에 가깝게 물건을 사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여기에 시장에서 모든 물건을 살 수 없는 것 또한 감안해야 한다. 단지 식료품만 놓고 생각해보아도, 시장에서 거의 대부분을 사더라도 반드시 마트에 들러 자질구레한 것들을 사야 하는 상황을 피할 수 없는데 그건 시장에 찾는 물건 자체가 없기도 하지만 품질과 관련해서 선택의 폭이 넓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시장과 마트의 갈등은 서로의 특성 또는 장점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상보적으로 그 장점을 극대화시켜야만 해결 가능하다. 마트의 영업을 강제적으로 막는다고 그 흐름이 시장으로 자연스레 흘러갈리가 없다. 나의 경우 요즘은 마트도 시장도 가지 않고 거의 대부분의 식료품을 인터넷으로 산다. 물론 선택의 폭이 너무 좁은데다가 장을 보는 재미가 전혀 없으므로 좋지 않지만 노력대비 월등히 좋은 품질의 물건을 살 수 있다는 장점 하나는 뚜렷하다. 마트는 좋으나 싫으나 사람들이 갈테니(이것 또한 슬픈 현실이다), 시장은 자신이 정확하게 어느 위치에서 무엇을 제공할 수 있는지 정확하게 분석하고 그걸 살려 손님 끌어안기에 나서야 한다. 물론 여기에는 사람들이 언제나 지적하는 원산지 표기나 서비스 문제가 당연히 포함된다.
여기까지 펼쳐놓고 나면 그 ‘상보적’이라는 측면에서 골목 상권, 즉 동네 수퍼마켓의 역할 또한 짚고 넘어가야할 필요가 있다. 동네 장사의 문제는 위기를 걸지 않는다는 것이다. 동네 장사가 위기를 걸다니 무슨 터무니 없는 이야기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지금 사는 동네 반경 1km미터 내의 동네 마트를 다녀보면 파는 물건이 다 똑같고, 신선 식품의 부재가 무엇보다 두드러진다. 육류를 취급하는 곳은 꽤 많지만, 언제부터 냉동시켜놓았는지 알 수 없는 생선 정도를 구색 갖추는 수준 이상으로 들여놓은 곳은 없다. 그나마 모든사람들이 싫어하지만 또 손님이 없는 적은 절대 없는 롯데 수퍼나 기업형 농수산물 마트 정도에서 선도가 의심스럽고 원래 맛도 없는 이면수 등을 파는 수준이다.
저장 및 운송 수단이 발전했어도 모든 식품을 1주일 단위로 사서 냉동, 냉장시켜놓고 먹는 건 불가능하다. 특히 미국처럼 운전을 안하면 아예 장보기 자체가 불가능한 환경이라면 모를까, 대중교통이 속속들이 발달되어 있는 땅덩이 좁은 나라에서 살고, 게다가 삼면이 바다라 해산물이 풍부한 우리나라에서 마트나 시장에 마음 먹고 가지 않으면 생선 먹기가 힘든 상황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생선 한 가지의 예를 들었지만 동네 수퍼 또한 시장과 마트 싸움에서 등터지는 새우꼴이 나지 않으려면 지금보다는 노력을 해야 된다는 의미다. 뭔가 급하게 사러 갔는데 물건도 없고 가게 보는 사람은 인사도 없이 이불 뒤집어쓰고 앉아서 무한도전 같은 거나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걸 보면 저런 사람들 돈 벌어줘서 뭐하나 싶은 생각이 든다.
# by bluexmas | 2013/01/29 13:53 | Taste | 트랙백 | 덧글(8)
그나마 젊은 사람들이 시장에서 물건을 파는 경우는 다른데 나이가 드신 분들은 답이 없네요
가뜩이나 아파트에서 생선 구워먹기 힘든데ㅠㅠ 뻔히 보이는 바가지야 그렇다쳐도 안 좋은 물건 주는데…..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전형적인 현상같습니다. 시장에서 대형 마트처럼 고객님 찾는 서비스 바라는 사람 없잖아요. 내가 내는 돈만큼의 재화만을 바라는데도, 그게 참 힘듭니다.
해물은 정말 백화점과 생협 아니면 답이 없습니다..
잘 모르니까 썩은 것을 주거나 원산지를 속인다거나, 가격 물어보고 안사면 욕을 퍼붓는 등;
그래서 저는 그냥 마트와 지마켓을 이용합니다.
요즘 생선도 인터넷에서는 1회분량으로 소포장해서 아주 이쁘게 오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