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담동]미 피아체-손님이 키운 독버섯
좁아 터진 2인용 식탁에 앉았는데 눈길이 닿은 왼쪽 옆자리의 식탁보에 꽤 큰 구멍이 나 있었다. 뭔가 결함을 찾으려고 뚫어지게 쳐다본 것도 아니었다.
저만큼 큰 구멍이라면 그냥 눈에 들어온다. 이걸 보고 ‘그래도 혹시…?’라는 기대는 접었다. 그리고 음식은 그 접은 기대에게도 미안할 정도로 형편없었다.
궁금했다. 빠와블로거들이 하몽 썰어 먹는 포스팅 등등을 보면서 이 레스토랑의 무엇이 그들을 즐겁게 하는지 좀 이해하고 싶었다. 파스타와 스테이크 코스를 하나씩, 그리고 싸구려 와인을 한 병 시켰다.
빵. 먼 옛날 대학 시절 소개팅에서 만난 여학생과 갔던 파스타집 마늘빵과 같은 추억의 맛이… 그래도 이후에 나온 음식에 비하면 멀쩡했다.
전채. 양 옆의 샐러드와 튀김은 그렇다 쳐도(사실 튀김에 얹은 양파는 어이없었다. 볶음도 아니고 피클도 아니고?), 가운데에 있는 “바게트 그라탕”은 황당했다. 그냥 바게트 덩어리에 치즈를 얹어 녹인 것일 뿐. 재료에 치즈를 얹어 녹였다고 다 그라탕이 아니다.
리조토? 아니다, 케첩맛 죽이다. 토마토를 끓여서는 이런 맛이 나지 않는다. 한편 파스타 코스의 수프는 뻑뻑했다.
파스타. 면은 그대로 조리를 잘 한 편이었다. 문제는 맛. 이 들척지근함은 파스타를 소금물에 삶고 올리브 기름 등으로 맛을 냈을때 나는 게 아니었다. 이탈리아 음식에서 많이 쓴다는 치즈, 토마토 등등은 소위 말하는 ‘우마미’ 지수(glutamate)가 높다. 그래서 이런 재료를 써서 파스타를 만들면 소위 말하는 감칠맛이 많이 난다. 그러나 이런 재료들이 비싸므로 프랜차이즈 레스토랑 등에서는 혼다시를 쓴다. 내가 주방 구경을 못했으니 혼다시를 썼는지 뭘 썼는지 알 수 없지만 어쨌거나 이 맛은 그냥 단순한 재료로 만든 파스타의 맛이 아니었다.
대망의 메인, 농어구이. 너무 익어서 못먹었다. 반면 채소는 거의 날것이라 못먹었다. 다시 내올지 물어보는 건 긍정적이었지만 그럴 거였으면 진작 요청했다.
디저트. 이날 먹었던 것 전체를 통틀어 파나코타가 가장 훌륭했다(물론 그보다는 싸구려 와인이 더 훌륭했다. 원래 코스트코에서 23,000원인가에 파는 것). 젤라틴을 넣는 디저트라고 뻣뻣하게 내오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부드러운게 맞다. 하지만 아무 생각없이 곁들인 과일 가운데 씨가 떡허니 들어있는 반건시를 보고 그냥 할 말을 잃었다.
음식보다 경악을 즐기고 있는 가운데 레스토랑엔 계속해서 차가 들어왔다. 아무래도 동네가 동네이니만큼 꽤 좋은 차들이 속속들이 들어오는데 심경이 복잡해졌다. 이 음식이 말도 안되게 형편없는 건 맞는데, 만약 이 동네가 아닌, 왕십리 같은 대학가에서 학생들 소개팅, 미팅 전용 분위기 잡는 레스토랑이었다면 사실 그런가보다, 라고 이해도 할 수 있었을 것 같다. 근데 여기는 서울에서 가장 부자라는 동네, 조금 과장을 보태 레스토랑에 들어오는 차가 거의 대부분 고급 수입차인 그런 동네다. 이런 음식을 내는 레스토랑이 자가트 레이팅 24/30(구글 검색 참조)에 칭찬 일색인 블로그 포스팅으로 넘쳐난다는 것은 결국 이 동네 사람들의 안목이나 취향이 딱 이 정도 수준이라는 것 아닐까? 그리고 그건 그 훌륭한 차를 타는 경제력과 안목과 비교할때 너무나도 처진다. 이 동네 레스토랑에서 말도 안되는 음식을 먹을때마다 ‘아니, 이 동네 사람들은 외국에 정말 자주 나갈텐데 간 곳의 좋은 음식은 안 먹어보나? 먹어본다면 이런 음식에 만족을 못할텐데…’라고 생각하는데 이날 먹은 건 정말 그 가운데에서도 밑으로 최정상급이었다. 좋은 문화의 발전에는 돈 많은 사람들의 취향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이래서는 미래가 없다.
좋은 콘셉트고 뭐고 사실 다 필요 없다. 좋은 재료를 가지고 상식적으로 음식을 만들면 웬만한 건 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먹을 수 있다. 입버릇처럼 ‘라면 하나도 신경 써서 끓이면 다르다’고 말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이런 음식도 얼마든지 멀쩡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종종 글을 통해 분노-물론 이 글에서는 아니다. 그럴 가치도 없다-를 터뜨리는 이유는, 의외로 아주 낮고 상식적인 기준, 즉 정직함도 채워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겠다. 이날 먹은 음식은 ‘입맛은 주관적이다’라는 말로 정당화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일단 조리 execution의 문제만이라고 볼 수 없는건, 씨 박힌 반건시를 그냥 내는 무신경함만 놓고 보아도 확실하다).
이런 음식점들 많은데, 전부 손님이 키운 독버섯이다. 모르는 건 문제가 안된다. 알고 싶어하지 않고 ‘나의 선택’이라는 이유로 정당화하는게 진짜 문제다. 물론 따지고 보면 그 주인이 그 손님일테니 딱히 주인과 손님을 구분하는 것도 의미는 없겠다. 어쨌든 이런 레스토랑을 놓고 음식을 만드는 사람은 셰프놀이를, 먹는 사람은 맛집놀이, 파인다이닝 놀이, 빠와블로거 놀이 등을 한다. 그 비용이 와인 안 시키고 4만원이라면 이 동네 사람들의 경제력으로는 괜찮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찾아보면 온갖 와인 시음회 등등을 했다는 포스팅도 많던데 그 술들 참 아깝다. 이런 음식에 “이탈리안”이라는 딱지를 붙일 수 있는지, 메인 요리가 파스타인 코스의 의미는 뭔지 등등, 의문이야 차고 넘치지만 시간과 노력이 아까우므로 이만 줄이겠다.
*음식 먹는데 딱히 참고 안하지만 이런 평가를 내린다면 자가트 걱정된다. 아무리 암울하다고 해도 이보다 좋은 레스토랑들 꽤 많다.
# by bluexmas | 2013/01/25 12:33 | Taste | 트랙백 | 덧글(20)
가끔 한국이나 미국에 사는 교포 동료들이 그 젊은 사람들이 대만에 와서나 같이 유럽가서 한국 음식 찾는 것 보면 좀 허—해지더란 말이죠.
니들은 지금 얼마나 소중한 기회를 놓치고 있는지 아냐고 잔소리하긴 싫고…
(안그래도 나이가 있어서 영감님 대접을 받아서리… 잔소리하고 꼰대로 취급받기는 싫거든요.)
제가 이곳을 다녀오고 나서 그래도 꽤 좋아하던 블루리본 서베이를 의심하기 시작했지요. 블루리본 3개가 만점이고, 만점받는 레스토랑들은 별로 없는데 과연 미피아체가 세개를 받을 자격이 있나 싶어서요. 작년에 이어서 올해도 3개 받았더라구요.. 거참; 레스쁘아, 스시조, 팔선 이런데와 같이 3개를 받을만한 레스토랑이 절대 아닌데..
부유층의 안목이라도 맛 없고 비싼 맛집 놀이로 외식을 즐겨왔다면 그런 수준의 식당이 승승장구해도 이상할 게 없어요. 맛없는 음식을 가려내며 미식을 즐길만한 안목을 부유층에게 기대하기에는 이미 대중 식문화의 평균이 이미 바닥을 치는 수준이니까요.
맛집블로거도 그런 식당을 매일 다니며 돈 쓰는(혹은 돈 받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가 여길 언제 다시 오랴, 싶은 마음으로 그릇 하나마다 사진 찍고 셀카까지 알뜰히 뽑아내는 사람도 많잖아요. 비싼 것을 자주 먹어 눈이 높아진 부유층만이 칭찬 일색의 포스팅을 하진 않을거예요. 유명하다는 식당에 와서 기분 내며 사진 찍어 맛집 포스팅까지 하려는 사람에게는 뭐가 나와도 차이가 있지는 않을 겁니다.
몇년전에 어린 맘에 놀랐던 기억이 있는데, 프렌치 식당에서 토요일 저녁에 옆자리 커플이 인상깊었어요. 둘이서 와인도 없이 샐러드 하나에 송아지 스테이크를 각각 하나씩 주문해서 먹다가 고기가 너무 느끼해 못 먹겠다며 피클을 달라고 했는데 그 식당에는 피클이 없었거든요…….먹는 내내 투덜거리다 결국 남기고 가는데, 그 식당은 원래 디저트와 그날의 코스로 유명한 곳이었습니다-_-;;그 커플은 돈 쓰고 기분 버리고 입맛 버렸겠지만 식당이 잘못한 게 있을까요.
리플이 너무 길어졌네요^^ 여하튼그런 독버섯이 자라는 토양에서 지조있는 식당이 망하기도 하고 쓰레기 같은 식당이 목 좋은 곳에서 돈을 끌어모으기도 하겠죠.
정말 참… 거시기… 할말이 엄떠요…
아무리 크림에 젤라틴 넣고 만들지만 푸딩보다 조금 더 하드한 느낌일 뿐인데 저 판나 코타는 아이스 하키에서 퍽 대신 써도 될 듯한 단단한 풍채를 보이네요.
여기 이렇게나 망가졌나요 …
라는 말은 제가 다녔을 때는 좋았었는데
이렇게나 형편없어졌다는 거에 대해 놀랐다는 표현이었고
포스팅만 보고는 확신할 수 없다는 말은
당연히 개인의 입맛은 주관적일수 밖에 없으니까
확신할 수 없다는 말이었는데
제 의사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을리는 없고
이렇게 삐딱하게 받아들이시는 걸 보니
제가 제대로 의사소통도 되지 않는 사람에게
괜한 리플을 달았나봅니다.
제가 bluexmas님 글에 반론을 단 것도 아니고
실망스럽다는 의견까지 덧붙였는데
처음 보는 사람에게 참 덧글이 공격적이시네요.